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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분양 떠넘기기 다시 수면위로
자금 어려움 겪은 건설사가
직원 명의로 수억 대출 실행
법원 "서명했으니 본인 책임"
정부 대책은 가이드라인 뿐

[서울경제]

중견기업 ‘다인건설’에 다니던 유 모 씨는 수년 전 회사 지시에 따라 대구의 한 모델하우스로 향했다. 수십 명의 동료들과 관광버스로 이동한 현장에서 ‘다인로얄팰리스’를 분양받기로 하고 새마을금고 직원 앞에 놓인 중도금대출 서류에 사인했다. 그룹 임원은 회사가 어렵다며 서명을 독촉했다. 건물만 잘 준공되면 대출은 물론 이자까지 부담하겠다는 회유도 들었다. 대출금은 신탁사를 거쳐 직원 계좌가 아닌 시행사로 곧바로 입금됐다. 그러나 준공 지연과 분양 부진 등으로 시행사 자금 사정이 악화되며 상황이 달라졌다. 새마을금고로부터 이자 독촉장과 함께 신용불량자 등록 통지서가 날아들었다. 유 씨는 “가압류에 시달리며 가정까지 해체된 직원들이 상당수”라고 말했다.

직원에게 분양 계약 체결을 강요하고 그 이름으로 수억 원의 대출을 실행하는 이른바 ‘자서분양’ 관행이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20일 서울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이달 1일 대구지방법원은 유 씨를 포함한 전·현직 다인건설 직원 16인이 제기한 도합 79억 원 규모의 채무부존재확인소송에서 회사 측과 새마을금고의 손을 들어줬다. 직원들이 대출 계약서에 직접 서명했고 이자 납부 확약서도 제출한 이상 채무자로서 책임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체결 과정에서 오동석 다인건설 회장 등의 권유와 독려가 있었다는 점은 인정했으나 이를 조직적 강압이라고 보지는 않았다. 새마을금고가 대출의 실행 과정에서 다인건설과 공모했다는 주장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자서분양은 겉으로는 정당한 거래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회사가 자금난을 돌파하기 위해 직원 명의를 악용하는 편법 구조다. 사업이 무너지면 책임은 직원에게 전가되고 결국 신용불량 등록이나 억대 채무로 이어지는 식이다. 2010년대 자사 임직원들에게 미분양 아파트를 떠넘겨 강매 논란이 제기된 후 한동안 수면 아래 있다가 최근 건설 경기 악화와 함께 이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직원들은 항소장을 제출한 상태다. 패소가 확정될 경우 개인이 많게는 10억 원 이상 대출 원리금을 상환해야 한다. 유 씨는 “직원 수 50명도 안 되던 작은 건설사가 몇 년 새 시행사 여러 곳을 거느릴 만큼 급성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본금 없이 외형만 키워 하청 업체에 공사 대금 지급이 중단될 정도로 자금난에 빠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분양 상가를 하도급 업체에 떠넘기고 회사 직원들에게는 강제로 자서를 받기 위해 강요나 회유가 이뤄졌다”고 덧붙였다. 반면 회사 측은 직원들의 자발적인 대출이었다는 취지로 맞서고 있다. 새마을금고는 단순한 상가 분양 중도금대출로 알았을 뿐 시행사의 자금 조달 목적이라는 점은 몰랐다는 입장이다. 오 회장은 분양 사기, 횡령, 배임 등으로 징역 6년형이 확정돼 현재 수감 중이다.

이처럼 직원들의 자서를 동원한 대출은 건설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 흔히 나타난다. 신용도와 담보력 부족으로 금융기관 대출을 받기 어려워진 업체가 직원의 명의를 빌리는 방식으로 택하는 편법이다. 분양률을 높이거나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반복돼왔다.

문제는 이 같은 위험 구조를 감독할 수단이 마땅찮다는 점이다. 실제 직원들은 앞서 금융 당국과 새마을금고중앙회·경찰청 등에 수차례 진정을 넣었지만 대부분 “관할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이첩되거나 종결됐다. 정부가 이미 2013년 건설사 임직원을 통한 ‘명의 차용 대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내놓은 대책도 구속력 없는 가이드라인에 머물렀다. 당시 국토교통부·공정거래위원회·금융감독원 등은 이 같은 대출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금융기관이 차주의 실제 신분을 확인하도록 했지만 실효성은 없었던 셈이다.

자서분양 문제는 사실상 후속 지침 없이 사각지대에 방치된 상태다. 직원들의 변호를 맡은 박휘영 법무법인 휘명 변호사는 “직원이 아닌 회사가 사업 자금 명목으로 대출받았고 새마을금고와 사전 협의가 있었던 정황이 보이지만 입증이 어렵다는 이유로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항소심에서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다룰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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