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후보 "해수부, 세종서 부산으로 옮기겠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4일 부산 부산진구 서면거리에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부산=오승현 기자
[서울경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공약에 세종 관가가 발칵 뒤집어졌다. 2013년 부처 신설과 함께 ‘세종 시대’가 개막한 지 엊그제 같은데 대선 결과에 따라 또다시 봇짐을 꾸려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써 가꾸어 놓은 삶의 터전을 옮겨야 할 공무원들과 그 가족들로서는 황망하다는 반응이다. 세종과 부산의 거리 만큼 다른 경제 부처와 따로 노는 정책적 괴리도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0일 관련 부처 등에 따르면 현재의 해수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 취임 첫해인 2013년 농림수산부와 국토해양부 등의 수산과 해양 기능을 한 데 모아 만들어졌다. 5년 만에 부활한 해수부의 본부를 두고 당시에도 세종과 부산, 인천 등 여러 지역이 자천타천으로 입길에 오르내렸다. 해수부 정원 3790명 중 본부의 몫은 13.4%인 508명이었다.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다고 볼 수 있는 규모인 데다 본부라는 상징성까지 있어서다. 하태경 전 새누리당 의원(현 보험연수원장) 등 지역구 의원들까지 참전하는 논란 끝에 결국 업무의 효율성 등을 이유로 세종시가 최종 낙점됐다.
당시 안전행정부는 가뜩이나 청와대·국회와 정부세종청사가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어 업무 비효율과 행정 공백이 심각한 데 해수부를 부산으로 보낼 경우 부작용이 더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했었다. 윤진숙 해수부 장관 역시 “(해수부는) 중앙 부처이기 때문에 중앙 부처가 위치한 곳(세종시)에 있어야 한다”며 “삼면이 바다인데 어느 한 쪽으로 간다는 것도 사실은 조금 어려운 일”이라고 밝힌 바 있다. 윤 전 장관의 고향은 부산이다.
이후 해수부 이전은 대선·총선 등 대형 선거 때마다 부산 등 지역 정가의 단골 요구 사항이었지만 ‘찻잔 속 태풍’에 그치다가 이 후보가 공개적으로 해수부의 부산행을 공약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 후보는 14일 부산 유세에서 “국가 기관은 협의를 해야 하기 때문에 원래 여기저기 찢어놓으면 안 되지만, 딱 1개 예외로 해수부만큼은 부산에다 옮기겠다”며 “업무 거의 대부분이 해양수산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노조 등의 반대로 산업은행 이전이 무산된 것을 꼬집으면서 해수부 이전을 약속했다. 부산상의 등은 이에 환영하면서 정책 공약집에 반드시 담아 못을 박아야 한다며 재차 압박하고 있다.
중앙 부처의 한 공무원은 “산업은행과 해수부 간 파워 게임에서 산업은행이 이긴 셈”이라며 “국책은행 임직원들보다도 만만한 게 공무원들”이라고 토로했다. 표심을 노린 유력 정치인의 한 마디에 10여년 전 서울에서 세종으로 이사했던 해양수산 가족들은 사실상 강제 이주설에 동요하고 있다. 또 다른 공무원은 “어렵사리 정착한 세종에서 떠나야 하는데 준비 기간을 얼마나 줄 지 모르겠다”며 “서울-세종-부산 세 집 살림을 차려야 하느냐는 볼멘소리도 있다”고 했다.
다른 부처들도 남 일 같지 않다는 반응이다. 해수부를 시작으로 중앙 부처가 뿔뿔이 흩어지는 일이 반복될 수 있다고 염려했다. 이 후보가 해수부에 한해 예외를 두겠다고 했지만 향후 선거에서 또 다른 예외를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나타날 수 밖에 없다는 논리다. 익명을 요청한 한 중앙 부처의 과장은 “해양 수도인 부산에 해수부가 입지해야 한다면 문화 수도인 경주에 문화체육관광부가, 제조산업 수도인 울산에 산업통상자원부가 위치해야 한다는 식으로 무한 확장할 수 있는 게 아니냐”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