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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19일 부산 남구 한 도로변에서 유권자들이 각 당의 대선 후보자를 알리는 현수막을 살펴보고 있다. 송봉근 기자

“우리가 한쪽만 주구장창 밀어준다꼬예? 마 투표장 가기 싫다는 사람이 태반입니더.”

18일 오후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열린 모래축제에서 만난 양병진(45)씨는 6·3 대선 전망을 묻자 손사래를 치며 이렇게 대답했다. 딸과 함께 나들이 나온 양씨는 대선 얘기에 “이렇게 좋은 날 정치 얘기를 만다꼬 하느냐”며 “국민의힘 꼬라지는 대체 와 그라노”라고 한숨을 쉬었다.

‘보수의 아성’ 영남이 심상치 않다. 3년 전 대선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이 57.7%를 득표하고, 지난해 4·10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전체 40석 중 34석을 석권했던 부산·울산·경남(PK)에선 최근 ‘디비졌다’는 말이 나온다. 엠브레인퍼블릭 등 4개사의 전국지표조사(전화면접방식·12~14일)에서 PK 지지도는 ‘이재명 민주당 후보 40%,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34%,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 7%’였다. 한국갤럽 전화면접조사(13~15일)에서도 ‘이재명 41%, 김문수 39%, 이준석 6%’로 나타났다.

18일 부산 해운대구 해수욕장에서 시민들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6·3 대선 홍보물을 촬영하고 있다. 김정재 기자

윤 전 대통령 대선 득표율이 73.9%에 달하고, 지역구 의석 25석을 국민의힘이 싹쓸이한 대구·경북 민심도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화면접조사에선 ‘김문수 54%, 이재명 29%’(전국지표조사, 12~14일), ‘김문수 48%, 이재명 34%’(한국갤럽, 13~15일)로 여전히 보수 우위였지만, 리얼미터 무선자동응답 조사(14~16일)에선 ‘김문수 44.9%, 이재명 43.5%’로 박빙이었다. (※기사에 나온 여론조사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18~19일 만난 부산 시민 상당수는 “12·3 비상계엄 이후로 마음이 갈팡질팡한다”는 속내를 밝혔다. 부산 동래구에서 주류 수출업을 하는 김인석(53)씨는 윤 전 대통령에 대해 “탈당 갖고 면피가 되겠나, 완전 절연을 해야 한다”며 “저번에도 그렇게 (국민의힘을) 밀어줬는데 이게 무슨 창피입니꺼”라고 했다. 동래구는 윤 전 대통령이 지난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두 차례 방문한 곳이다.

부산 남구에 거주하는 60대 택시기사 황모씨. 김정재 기자

이재명 민주당 후보에 대해선 애증이 교차했다. 남구에 거주하는 60대 택시기사 황모씨는 “해수부부터 옮긴다는 이재맹이가 현실적인 것 같다. 지자체장을 역임해 일머리는 학실하데이”라며 “극우 보수를 표방하는 김문수는 도저히 찍을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망미중앙시장에서 반찬가게를 하는 김옥희(57)씨는 “아무리 그래도 범죄를 질렀던 이재맹이한텐 손이 안 간다”며 “골프 치고 사우나까지 간 사람을 모른다고 해 대법원에서 파기환송 된 사람을 어떻게 뽑겠느냐”고 말했다.

국민의힘에 대한 성토도 거셌다. 진구에서 인테리어업을 하는 김병수(49)씨는 “아직도 제 살 뜯어 먹기만 하고 있으니, 3년 준비한 이재명을 어떻게 이기느냐”며 “각자 따로 놀면서 단합도 안 되니, 대법원을 향한 민주당 겁박도 못 막아내는 것”이라고 했다. 연수동에서 숙박업을 하는 박성준(52)씨도 “한덕수와 한동훈은 선거 안 돕고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느냐”며 역정을 냈다.

흔들리는 영남 바닥 민심을 정치권도 간파한 것일까. 예년 선거와 달리 각 캠프의 화력은 초반부터 영남권에 집중됐다. 이재명 후보는 공식선거운동 둘째 날부터 대구·경북(13일)을 거쳐 부산·경남(14일)을 찾았고, 김문수 후보는 12일부터 대구에서 1박 2일 유세를 벌인 뒤, 13~14일은 부산·경남 일대를 훑었다. 이준석 후보는 대구(13일)와 부산(14일)에 각각 하루씩 머물며 청년층을 공략했다.

공식 선거운동 이틀째인 13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사진 왼쪽부터)가 대구광역시 동성로 거리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가 울산 남구 신정시장에서,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 후보가 대구 경북대학교에서 집중 유세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 후보가 첫 지역 유세를 벌인 대구 민심도 술렁거렸다. 칠성시장에서 생선 가게를 운영하는 김병철(54)씨는 “이재명이는 본인 잘못은 아무것도 아닌 척 선동하면서, 이상한 경제 관념을 심으려 카지 않느냐”며 “이준석이 말처럼 사람들이 어려울 때 다가오는 사이비 종교 같아 찍을 수 없제”라고 말했다. 반면에 취업 준비생 이모(33·대구 북구)씨는 “바보 같은 윤석열을 밀어준 대구 사람들이 이번엔 단디 고생해봐야 정신 차린다”고 밝혔다.

김상욱 의원이나 김용남 전 새누리당 의원 등 보수 정당 출신 인사들이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는 모습엔 반감이 강했다. 칠성시장에 장을 보러 온 50대 이정미씨는 “박쥐 아이가”라면서 “선거 전에 뻐뜩하면 손드는 야비한 배신자로밖에 안 보인다. 좀 있으면 홍(준표 전) 시장도 철새처럼 민주당으로 옮기게 생겼다”고 말했다. 부산 해운대구에서 등산용품 판매점을 운영하는 40대 김동은씨도 “간신들이 보수 진영을 다 배신하는 데 우리라도 국힘을 안 챙기면 우짜겠노”라고 말했다.

청년층은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에 대해 호감을 보이면서, 이재명 후보의 ‘커피 원가 120원’ 발언에 대해 날을 세웠다. 부산 소재 대학교에 재학 중인 우영욱(28)씨는 “이 후보가 자판기 커피 얘기를 하는 줄 알았다”며 “이재명의 ‘호텔 경제학’ 영상이 유튜브에 뜨면 마음이 가다가도 사라진다. 차라리 이준석이 나은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만난 30대 남성은 “이준석이 마음에 들지만, 세력이 너무 없어 사(死)표가 되는지라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부산 수영 팔도시장에서 과일을 판매하는 한미현씨. 김정재 기자
주말에도 문이 닫혀 있는 부산 광안시장의 모습. 김정재 기자

‘경제 살리기’는 영남에서도 최대 이슈였다. 부산 수영구 팔도시장에서 과일을 판매하는 60대 한미현씨는 “윤석열 정부 3년 동안 경기가 더 안 좋아졌다”며 “부산 엑스포 때문에 돈 날린 것 말고 기억 남는 게 없다”고 했다. 부산 해운대 시장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40대 김모씨도 “산업은행 이전이랑 가덕도 신공항은 대체 언제 완성하느냐”며 “할 수 있는 게 천지 삐까리인데 다들 일을 안 하는 것 같다”고 했다. 대구에서 만난 70대 양승철씨는 “요즘 정치 행태를 보면 마음을 확 정해지진 않는다”면서도 “미래 세대를 위하고 정책을 잘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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