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농담처럼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마 한국 남성들이 역사 이래 가장 손을 열심히 씻은 시절일 거야.” 마스크 착용, 단체모임 중단과 함께 손씻기는 당시 3대 생활수칙이었습니다.

사소한 손씻기가 과거 수많은 사람을 살린, 의학계에서는 위대한 혁신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1840년대 후반 헝가리 출신 의사 이그나즈 제멜바이스는 오스트리아 빈 종합병원 산부인과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산모들이 시도 때도 없이 죽어나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산파들이 돌보는 병실보다 의대생이 산모를 돌보는 병실에서 훨씬 많은 사망자가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의사들의 동선을 살폈습니다. 상당수가 해부학 실습을 하다 산모를 돌보고 있었습니다. 의사가 균을 옮긴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소독 처리한 물통을 설치했습니다. 의대생들이 산모를 돌보기 전 손을 씻도록 했습니다. 18%가 넘던 사망률은 수개월 만에 2%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그는 이를 정리해 책을 냈습니다. 하지만 의료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당시 의료계 정설은 공기를 통한 감염이었습니다. 논란이 되자 빈 종합병원은 그를 해고했습니다. 제멜바이스의 주장이 나오고 수십 년이 흐른 후에야 산부인과에서 소독과 손씻기가 일반화됐습니다.

이 스토리를 떠올린 것은 사회를 오염시키는 권력자들의 손 때문입니다. 우리는 얼마 안 되는 시간에 너무 많은 이상한 손을 목격했습니다. 수백만원대 명품 가방을 아무렇지 않게 받는 대통령 부인의 손, 누군가에게 이권을 주기 위해 서류에 서명하는 손,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라면 새벽 3시에 대통령 후보를 등록하게 하는 공고를 올리는 정당 관계자의 손 등이 그렇습니다. 또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며 탄핵의 버튼을 눌러대는 손도 시시때때로 목격했습니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 끝까지 최고 권력을 쥐고 있다가 비단길이 깔린 줄 알고 사직서를 써내고 스스로 사인한 대통령 권한대행의 손도 봐야 했습니다. 이외에 자신의 편에는 관대하고 상대방에게는 가혹한 이중잣대를 들고 있는 손은 너무 흔하게 마주칩니다.

검사들은 더 이상 언급할 필요조차 못 느낍니다. 무슨 짓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집단이 돼 버린 게 기소장을 쓰는 그들의 손이기 때문입니다. 올 들어서는 재판정에서 망치를 두드리는 손의 실체도 봤습니다. 14세 소녀를 임신시킨 40대 성폭행범을 무죄로 봐야 한다며 파기환송한 대법관, 커피를 마시기 위해 800원을 횡령한 버스기사를 해고한 것이 정당하다고 판결한 판사, 대법원의 내규고 규칙이고 다 무시하고 정치무대 한가운데로 뛰어든 대법원장까지. ‘법원은 사회 정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는 인식까지 무너뜨린 일부 판사들의 손입니다.

그래서 엉뚱하게 법원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이 논란의 대상이 됐습니다.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 대법원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은 눈을 가리지 않고 있습니다. 의미는 비슷합니다. 눈을 가린 것은 권력과 편견을 배제하라는 뜻입니다. 눈을 뜨고 있는 것은 모든 면을 자세히 살피라는 취지입니다. 손에 칼 대신 책이 들려 있는 것은 눈을 크게 뜨고 법전을 열심히 보고 법에 따라 판결하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최근 법원에서 벌어진 여러 가지 사건들을 둘러싸고 일각에서는 “봐줄 사람과 벌 줘야 할 사람을 자의적으로 구별하기 위해 정의의 여신이 눈을 뜨고 있다”는 조롱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법치(法治)란 단어는 우리 사회에서 수시로 튀어나옵니다. 논리가 궁색하면 권력자들이 내세우는 게 법치입니다. “법을 따르라.” 하지만 이 말은 번지수를 잘못 찾았습니다. 권력자들이 권력을 남용하지 말고 법에 따라 통치하라는 의미입니다. 법치는 법 잘 지키고 사는 일반 국민들에게 법을 지키라고 강요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 아닙니다.

20세기 이전에 오염된 의사들의 손이 산모를 죽음으로 몰고 갔듯이 권력자들의 오염된 손은 사회를 병들게 한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는 시절입니다.

다시 제멜바이스 얘기입니다. 그는 빈 종합병원에서 해고된 후 고향 헝가리로 돌아갑니다. 그곳에서도 “산모를 죽이는 것은 의사들”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논란이 일었습니다. 계속된 논란에 그는 정신적으로 피폐해졌고 정신병원에서 47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습니다.

깨끗한 손을 원하는 목소리가 더러운 손을 감싸는 목소리에 의해 파묻히지 않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궁금해집니다.

한경비즈니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49936 “3년치 건강보험 뒤졌더니” 위장전입으로 청약 ‘싹쓸이’ 랭크뉴스 2025.05.19
49935 ‘82세’ 바이든, 뼈로 번질 때까지 몰랐다…전립선암 의심증상은[헬시타임] 랭크뉴스 2025.05.19
49934 "밟아서 껐다" 주장에도…재판부 '식품 창고 불 흡연자 탓' 왜? 랭크뉴스 2025.05.19
49933 [Why] ‘부채 시한폭탄’ 터진 美…무디스가 쏘아올린 경고탄 랭크뉴스 2025.05.19
49932 민주당 “지귀연 판사 유흥주점 접대 사진 공개···거짓말에 책임져야” 랭크뉴스 2025.05.19
49931 민주·국민의힘, 첫 TV 토론 결과 두고 '아전인수' 비난 랭크뉴스 2025.05.19
49930 "난 계몽됐다"던 김계리, 국민의힘 입당 신청…"지금은 김문수의 시간" 랭크뉴스 2025.05.19
49929 5000명 몰린 젠슨 황 컴퓨텍스 기조연설… “1조 파라미터 모델, 개인용 AI 기기로 작업한다” 랭크뉴스 2025.05.19
49928 특전사 참모장 “곽종근, 통화로 ‘문 부수고라도 들어가겠다’ 복창” 랭크뉴스 2025.05.19
49927 질문 계속되자 입 연 尹, 한마디 하고 차에 타더니‥ [현장영상] 랭크뉴스 2025.05.19
49926 [단독] 시흥시 편의점서 흉기 휘두른 남성‥인근 탁구장서도 흉기 휘두르고 도주 랭크뉴스 2025.05.19
49925 민주당, 지귀연 판사 ‘유흥업소 접대 의혹’ 사진 공개 랭크뉴스 2025.05.19
49924 [속보] 민주당, 지귀연 룸살롱 사진 공개…“뻔뻔한 거짓말” 랭크뉴스 2025.05.19
49923 TV토론 팩트체크, 민주당 17건 쏟아낼 동안 국힘은 달랑 2건 랭크뉴스 2025.05.19
49922 이준석 지지층, 단일화 원치 않고 효과도 없다 [한국일보 여론조사] 랭크뉴스 2025.05.19
49921 ‘홍준표’ 이제 ‘청준표’ 됐나…SNS 프로필 ‘파란색 사진’으로 바꿔 랭크뉴스 2025.05.19
49920 윤석열, 탈당·비상계엄 물음에 “윤갑근 변호사가 얘기하시죠” 랭크뉴스 2025.05.19
49919 국힘, ‘커피 원가 120원’ 발언 이재명 고발…허위사실 유포·명예훼손 혐의 랭크뉴스 2025.05.19
49918 국힘 “김문수 펀드 19분 만에 목표액 250억원 채워” 랭크뉴스 2025.05.19
49917 일본도 1분기 성장률 -0.2%...한·미·일 동반 역성장 이유는 랭크뉴스 2025.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