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착취의 지옥도, 그 후]
<68> 국회서 기자회견 전하는 수어 통역사
38년 경력 한은희 통역사, 즉각 해고 경험
해고 뒤 아픈 부모님 모시며 생활고 시달려
"저 좀 봐주세요" 해고 통보에 눈물 읍소도
'국회-용역업체-통역사' 간접고용 구조 탓
매년 업체만 바뀌면서 16~27% 중간착취
업체들은 최단기간 수익 높이려 착취 늘려
전혀 전문성 없는 건설사 등에 소속 되기도
중간착취방지법 입법되면 임금 보호 가능
"상시 인력 국회에서 직고용해야" 목소리
<68> 국회서 기자회견 전하는 수어 통역사
38년 경력 한은희 통역사, 즉각 해고 경험
해고 뒤 아픈 부모님 모시며 생활고 시달려
"저 좀 봐주세요" 해고 통보에 눈물 읍소도
'국회-용역업체-통역사' 간접고용 구조 탓
매년 업체만 바뀌면서 16~27% 중간착취
업체들은 최단기간 수익 높이려 착취 늘려
전혀 전문성 없는 건설사 등에 소속 되기도
중간착취방지법 입법되면 임금 보호 가능
"상시 인력 국회에서 직고용해야" 목소리
편집자주
간접고용 노동자는 346만 명(2019년). 계속 늘어나고 있죠. 중간업체에 떼이는 수수료 상한이 없는데다 원청이 정한 직접노무비를 용역업체나 파견업체가 노동자에게 다 주지 않고 착복해도 제재할 수 없어서, 이들은 노동시장에서 가장 낮은 임금을 받습니다. 21대 국회에서 발의됐던 ‘중간착취 방지 법안들’은 한 번도 논의되지 못한 채 폐기됐고, 22대 국회에서도 답보 상황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중간착취 문제를 꾸준히 고발합니다.38년 경력의 한은희 국회 수어 통역사가 지난달 17일 국회 소통관에서 '국회 수어 통역'을 수어로 표현하는 모습. 여러 장을 찍어 이어붙였다. 그는 국회에서 수어 통역이 상시화된 2020년 8월부터 이곳에서 일했다. 그러나 간접고용 구조 탓에 매년 연말이면 해고 위기에 놓인다. 정다빈 기자
"유선으로 '다음 주부터 안 나오셔도 됩니다' 그 한마디로 끝이었어요.
그 순간 하늘이 진짜 무너지는 느낌이었어요. 직장을 잃는 문제도 있지만, 국회 통역 일을 정말 좋아했는데 '국회를 다시는 올 수 없는 건가' 하는 충격
이 있었죠."38년 경력의 한은희(58) 수어 통역사는 지난해 3월 갑작스러운 해고 소식을 들었을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이제 당연해진 풍경이지만, 국회 기자회견에 수어 통역이 상시 제공되기 시작한 게 불과 2020년 8월부터다. 베테랑인 한 통역사는 그 시작부터 함께했지만, 업무 능력과 무관하게 하루아침에 실직했다.
이유는 '간접고용' 때문이었다.
국회 사무처는 '상시·지속 업무'를 하는 수어 통역사를 직고용하는 대신, 매년 초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 수어 통역' 용역 입찰 공고를 내서 1년 동안 외주 맡길 업체
를 찾는다. 선정된 용역업체가 수어 통역사와 프리랜서 계약을 맺는 구조라서, 수어 통역사의 고용(계약) 기간도 1년에 불과하다. 그 동안 선정 업체는 대부분 작은 건설사, 청소업체 등 수어 전문성을 전혀 확인할 수 없는 업체들이었다. 1년쯤 국회를 떠났던 그는, 운 좋게 올해 초 다시 계약에 성공했지만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가 없다.
"나의 유통기한은 2025년 12월 31일까지"
라고 이야기하는 한 수어 통역사를 한국일보가 지난달 17일 그의 일터인 국회 소통관에서 만났다. 그는 "이 문제(간접고용으로 인한 중간착취 및 고용불안)는 원청인 국회가 움직여야 할 문제"
라고 강조했다.5년 일했는데 돌연 해고 "너무 막막했다"
한은희 국회 수어 통역사가 지난달 17일 국회 소통관에서 다음 기자회견 수어 통역 준비를 하고 있다. 정다빈 기자
사회복지사이기도 한 한 통역사는
국회에서 수많은 정책, 사회 이슈를 다루고 관련 정보를 얻어, 이를 바탕으로
청각 장애인 내담자에게 복지 제도를 안내
할 때 뿌듯함과 행복함
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국회 통역을 하며 얻는 경험치가 사회복지 현장에서 즉시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됐다"면서 "이런저런 다른 통역 의뢰가 들어와도 국회 일을 주업으로 생각하고 웬만하면 거절했기 때문에 해고된 이후에는 일이 뚝 끊겼었다"고 했다.눈빛을 반짝이면서 국회 통역 업무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드러내던 그는, 해고(계약 종료) 통보 당시와 이후 생활고를 겪던 시기를 떠올리면서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 그 전에는 관리 업체는 바뀌어도 고용승계가 이뤄졌기에, 지난해 3월 한 통역사 본인은 물론 국회 공보처에서도 고용승계가 되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러나 새 업체인 S사는 아무 고지가 없다가, 한 통역사가 먼저 전화하자 "안 오셔도 됩니다"라고 했다. 부모님을 부양하던 한 통역사는 막다른 곳에 몰린 심정이었다. "제가 평생 살면서
'저 좀 봐주세요' 하소연
하고, 읍소한 적이 없었는데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그 전화 끊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부모님은 편찮으신데 병원비는 계속 나가고, '막막하다'라는 딱 그 심정
이었어요. 2023년 벌었던 돈이 100이면, 2024년에는 20 정도밖에 못 벌었죠. 프리랜서이기는 해도, 그동안 고사했던 통역 일이 바로 다시 구해지는 것도 아니니까요." 프리랜서라 4대 보험도 안 되기 때문에, 실업급여도 받을 수 없었다.
해마다 용역업체가 가져가는 몫 늘어나
한은희 국회 수어 통역사가 지난달 17일 국회 소통관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정다빈 기자
한 통역사가 국회 소통관에서 일한 2020년 8월부터 2024년 3월까지, 그리고 다시 올해 초에도 매년 업체는 바뀌었다.
실제로 일하는 일터도, 일의 내용도, 일하는 사람도 그대로인데 중간에서 용역 입찰을 받아 간 업체만 계속 바뀐 것
이다. 2020년에는 J사, 2021년에는 K사, 2022년에는 다시 J사, 2023년에는 C사, 2024년에는 S사, 올해는 H사다. 수어 통역사 급여는 '분급'으로 계산된다. 국회에 머무는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인데, 급여는 대기 시간을 뺀 실제 통역 시간에 대해서만 분·초를 기록해 지급한다.
그마저도 올해 바뀐 업체와 새로 계약하면서 한 통역사의 분급은 깎였다
. 첫해인 2020년에는 4,000원에서 시작해 2023년 4,100원까지 인상됐는데, 올해 분급은 3,650원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물가는 고공행진했지만, 중간에 업체가 바뀌고 고용단절이 되면서 임금은 도리어 떨어진 것이다.원청인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국회가 용역업체에 지급하는 분당 단가는 현재 5,000원 안팎이다. 이 중
27%
를 중간업체가 가져가고, 나머지 73%가 통역사 급여로 지급되고 있는 셈이다.국회 사무처 자료를 봐도,
2020년부터 2023년 5월까지 매해 용역업체가 가져가는 '중간착취' 비율은 늘었다
. 2020년에는 총집행액 중 83.8%가 수어 통역사 3인의 몫이고, 16.2%를 관리 회사가 가져갔다. 그런데 업체 몫이 점점 늘어나더니, 2023년 5월 기준으로는 관리 회사가 22.1
%를 떼갔다
. 국회사무처는 "용역업체와 수어 통역사간 지급 단가는 양자의 계약 체결 과정에서 결정된다"고 밝혔다. 즉, 국회는 총액만 내려주고 통역사 임금은 업체가 정하는 것이다.연간 1억 원(2025년 기준) 상당의 전체 예산 중 25% 안팎을 떼가는 '관리 회사'들은 어떤 일을 했는지 한 통역사에게 물었다.
지난 업체 면면을 보면 소규모 건설사, 용역업체, 청소업체
등 수어 통역 관련 전문성은 확인할 수 없었다. '업무 관련 어떤 지원을 받아왔느냐'는 질문에 한 통역사는 "급여 정산을 위한 실적 관리(근무시간 정산)를 할 때를 빼고는 전혀 연락할 일이 없다"고 했다.연관기사
• “천도인륜(天道人倫)으로 해야 할 일” 다시 발의된 중간착취방지법(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73013560005668)
지난해 6월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중간착취 방지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이처럼 높은 비율의 중간착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해당 법안은
공공 도급(용역·위탁) 시 원청이 하청노동자 인건비를 사업비(용역업체 몫)와 별도로 구분해 지급
하도록 해 임금 체불 및 중간착취를 방지하는 내용이다. 이 의원실 관계자는 "인건비 구분 지급이 핵심이라 근로자, 프리랜서 등 하청노동자는 계약 형태와 무관하게 보호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은 제21대 대선에서 '중간착취 방지법'을 공약에 포함시킨다고 밝혔다. 국회 직고용 검토했지만 예산 확보 못해
한은희(오른쪽) 국회 수어 통역사가 지난달 17일 국회 소통관에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연 기자회견에서 수어 통역을 하고 있다. 정다빈 기자
간접고용으로 인한 고용불안 문제는 국회에서도 이미 인지하고 있는 문제다. 국회운영위원회 '2022 회계연도 결산 검토보고'를 보면
"관리 회사가 매년 변경돼 수어 통역사의 고용 안정성이 보장된다고 보기 어려워, 사무처는 안정적인 서비스 제공 등을 위해 고용방식 변경 등 개선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고 돼 있다. 실제 2022, 2023년 직고용 방안에 대한 검토가 이뤄지기도 했지만, 예산 확보 및 타 직군과의 형평성 문제 등을 이유로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국회 사무처는 "2022년도 결산심사 시 '안정적 수어 통역서비스 제공 및 휴게권 보장 등을 위한 고용방식 변경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있어서, 당시 예산증액을 통해 근무여건 개선을 추진하려고 했으나
예산안 심사 결과 관련 예산 확보가 이뤄지지 않았다
"고 밝혔다. 국회 직고용 인력에 대한 최종적인 예산 결정권은 기획재정부에 있다. 이어 "국회는 수어 통역사의 고용안정성 제고 및 양질의 수어 통역서비스 제공을 위한 다각적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정혜경 진보당 의원실이 지난달 24일 개최한 '국회 내 비정규직(프리랜서) 고용현황 및 개선과제 토론회'에 따르면, 국회방송 소속 수어 통역사들 상황은 더 열악하다. 박지연 통역사는 "2016년 이후 입찰 방식으로 바뀌면서
1년짜리 입찰에 최대한 돈을 벌고 나가려는 업체들의 득세 속에서 통역사 임금 단가(분급)는 2,500원까지 떨어지게 됐다
"고 호소했다. 한 통역사는
원청인 국회가 문제를 방치하는 사이 업체와 통역사 간, 통역사와 통역사 간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고 지적
했다. 지난해 3월 한 통역사가 갑자기 해고된 것과 마찬가지로, 올해 초에도 1년간 일한 통역사들이 무더기 해고돼 고용승계 요구 움직임이 있었다. 한 통역사는 "이 문제는 결국 국회가 나서야 바뀔 수 있는 문제"라며 "수어 통역사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업체 위탁이 아닌 다른 형태의 국회 직고용이 이뤄지기를 바란다"
고 강조했다."어차피 저는 정년까지 2, 3년밖에 안 남았지만 후배 통역사들이 국회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되기를 바라요. 국회에서 다루는 정책, 경제, 사회, 복지, 외교 등 광범위한 의제들을 제대로 통역하려면 계속 탐구하고 숙지해서, 함축적으로 전달해야 하거든요. 1, 2년 이상 일해야 통역사도 맥락이 담긴 충실한 통역으로 청각 장애인에게 알 권리와 정치적 선택권을 제대로 보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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