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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담팀 세분화 등 중견기업급 체계
정식업체 등록 수사기관 감시 피해
기업형 사기 검거, 3년새 두배로
광주 남부경찰서가 제작한 예방 영상 캡처

[서울경제]

깔끔한 남색 정장 차림에 목에는 사원증을 건 채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각종 정보기술(IT) 업체들이 밀집돼 있는 건물의 사무실로 들어간다. 오전 10시 알람이 울리자 직원들은 일제히 고객들에게 전화를 건다. “안녕하세요, OOO 사무관입니다.” 서울 여의도 증권가나 성남 판교 IT 기업 직원의 일상이 아니다. 중국의 한 대도시에 위치한 대규모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모습이다. 비슷한 시기 정보통신업 정식 업체로 등록된 수도권의 한 로또 당첨 번호 사기 업체는 신입 직원들에게 4대 보험 가입을 진행했다.

사기의 기업화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16일 경찰청에 따르면 형법 제114조 ‘범죄 단체 등의 조직’ 혐의 검거 건수는 2021년 76건에서 지난해에는 154건으로 3년 만에 2배 이상의 증가세를 보이며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경찰 관계자는 “2013년 이후 발생한 범죄 단체의 조직적 범죄 대부분은 보이스피싱 등 사기”라고 설명했다. 지금은 사기 조직이 인공지능(AI) 기술을 갖춘 첨단 기업 형태로까지 진화하고 있다는 게 경찰의 전언이다.

2025년 현재 활동하고 있는 사기 조직들은 기업적 외형은 물론 보이스피싱·로맨스스캠·리딩방 등 각 분야 전담 팀 세분화 등 내부적인 체계도 갖추고 있다. 성과급이나 휴가비, 각종 수당 등 임금체계가 마련된 것은 물론 내부 성 비위 사건 방지를 위한 성인지 감수성 교육까지 진행하는 등 중견급 이상의 기업에서나 볼 수 있는 형태를 띠고 있다. 일부 국내 대형 조직은 아예 정식 업체로 등록하고 직원들을 4대 보험에 가입시키며 수사기관의 감시를 피한다.

조직이 체계성을 갖춘 만큼 이른바 최고경영자(CEO)급인 총책에 대한 검거 난도도 나날이 올라가고 있다. 역할별 검거 인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보이스피싱 범죄 수뇌부 검거 건수는 420건으로 2023년 886건의 절반 수준까지 떨어졌다. 올해 들어 3월까지 검거된 수뇌부는 70명에 불과했다.

2025년 5월 16일(금) 1면 언박싱 [ON AIR 서울경제]


"대도시 IT건물에 사원증까지…스타트업 다니는 느낌이었다"

“자동차 회사가 주력 모델에 마케팅을 집중하는 것처럼 사기 조직도 같은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보이스피싱·로맨스스캠·리딩방 중 성공률이 높은 팀에 유동적으로 인원을 배치하며 수익을 극대화하는 셈입니다.”

중국 랴오닝성의 한 도시에 거점을 두고 있는 대규모 보이스피싱 조직에서 피해자 모집책으로 활동했던 30대 김승주(가명) 씨는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범행에 가담했을 당시 자신이 일반적인 회사원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조직이 내·외형적으로 완벽한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고 밝혔다. 흰색 형광등 아래 깔끔하게 정리된 김 씨의 책상 위에는 고성능 컴퓨터가, 그 옆에는 가족사진이 들어 있는 액자와 각종 기념일이 표시된 달력까지 놓여 있었다. 김 씨는 성공한 스타트업에 다닌다는 생각이 들어 활동 당시에는 죄책감조차 느끼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김 씨는 “조직 사무실은 정보기술(IT) 업체들이 밀집된 지역에 있는 큰 건물에 있었고 출입을 위한 사원증 등 일반적인 회사에서 볼 수 있는 외형적인 체계는 다 갖추고 있었다”며 “같은 건물에 있는 실제 IT 업체 사원과 대화를 하던 중 ‘같은 업종 종사자의 의견을 듣고 싶다’는 질문을 들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융화돼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김 씨의 조직은 보이스피싱·리딩방·로맨스스캠 분야에서 각 2개 팀씩 총 6개의 팀으로 나뉘어 운영됐다. 각 팀은 팀장 1명에 피해자들을 끌어들이는 1차 직원 4~5명과 확보된 피해자들을 상대로 위해 또는 협박을 통해 금원을 편취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2차 직원 2~3명으로 구성돼 있었다. 임금체계는 100% 성과제로 운영됐으며 편취 금액이 높을수록 조직원이 가져가는 몫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일정 금액이 넘어가면 인센티브도 부여된다. 휴가를 사용하지 않고 30일 이상 근무할 시 만근수당까지 지급된다.

수익금이 발생하면 절반은 한국에 있는 자금세탁 조직의 몫이 된다. 나머지 절반은 조직원의 성과도에 따라 분배된다. 3분의 1은 금원 편취에 직접적인 역할을 한 조직원들이, 3분의 1은 조직원이 소속된 팀이, 나머지 3분의 1은 총책이 가져간다. 그렇기 때문에 총책은 금원 편취액이 낮은 팀장에게 실적 압박을 가하고 팀장은 팀원들을 닦달하는 상황도 연출된다.

보이스피싱을 주력으로 하다 실적 부진에 최근 신사업 개념으로 로맨스스캠 팀을 신설한 캄보디아의 한 조직에서 제안을 받고 근무한 이영혁(가명) 씨에게서도 조직의 체계성에 관한 증언이 나왔다. 그는 “연봉제를 적용하는 조직이라 성과를 바탕으로 연봉 테이블을 마련해 협상을 하기도 했다”며 “정장 혹은 깔끔한 캐주얼 정장 차림을 해야 한다는 복장 규정은 물론 담배를 피우는 시간이나 장소가 따로 정해져 있었고 업무 중에 휴대폰을 사용하거나 지각을 하면 일정 금액의 벌금을 내야 하는 규칙이 있을 정도로 회사 내규가 철저했다”고 밝혔다.

태국 방콕에서 한국인들을 상대로 투자 리딩방을 빙자한 사기 범행 도중 태국 경찰청 이민국에 의해 현장에서 검거된 한국인 조직원 8명이 지난해 8월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강제송환되고 있다. 사진 제공=경찰청


조직의 총책은 직원 복지 개념으로 숙식을 제공했다. 특히 한국인 직원들에게는 한식을 배달시켜 주기도 했으며 여성 직원 숙소에는 퀸사이즈 침대까지 설치했다. 사무실 청소를 담당하는 인원도 고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사기 조직도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 20대 박민지(가명) 씨가 근무하던 인천 구월동의 한 로또 당첨 번호 제공 사기 업체는 한술 더 떠 정보통신업 정식 업체로 등록하고 직원들을 상대로 4대 보험 가입까지 진행했다. 해당 업체는 본사 1개에 산하 지사 10여 개로 구성돼 있었으며 직원은 지사를 포함하면 100여 명에 달했다. 본사는 소형 빌라 3~7층을 임대해 대표실, 식당, 업무 공간 등으로 분리돼 운영됐다. 본사 영업팀은 5개였으며 행정 업무를 하는 사무팀과 환불을 요구하는 피해자들을 설득하거나 협박하는 것을 전문적으로 하는 고객 대응팀도 있었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보이스피싱 조직 검거 이력이 있는 안정엽 충남경찰청 형사기동대 팀장은 “정산을 확실히 하기 위해 주급 명세서를 발행하고 직원과 조직이 모두 급여 계산을 크로스체크하는 등 최근 보이스피싱 조직들의 운영 방식이 과거에 비해 상당히 세련돼졌다”며 “내부 체계뿐 아니라 인력 충원을 위해 팀을 따로 두고 중국으로 수급된 인원을 초대해 각종 유흥과 관광을 제공하며 자연스럽게 조직에 대한 충성심을 높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경찰이 베트남에서 사무실을 차려 국내 조직원들과 함께 모바일 스미싱 범행을 해온 해외 조직원 7명을 검거, 총책 등 3명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강제송환하고 있다. 사진 제공=경찰청


대학 교수 출신이 성인지 교육…'베스트 드레서' 뽑아 상여금 주기도

보이스피싱 조직들은 조직 운영 체계 마련뿐 아니라 내부 직원들의 사기 대본 숙달과 시나리오 내 신기술 도입을 위해 이론 및 실습 등 철저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조직원의 배신을 방지하고 충성심 고취를 위해 ‘베스트 드레서’ 선정 등 각종 복지 제도까지 도입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2021년부터 2년가량 우리나라의 한 복권 번호 추천 사기 조직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는 박민지(가명) 씨는 15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입사 당시 회사 내 교육 담당 부서에 파견돼 수 주간 교육을 받았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여느 업체와 같이 설립부터 최근 확장된 사업까지의 회사 역사에 대한 교육으로 시작된 일정은 업무 목적에 대한 이해, 목적 달성을 위한 수법 이론, 이를 실제로 시행하기 위한 대본과 시나리오 숙지 등으로 이어졌다. 박 씨는 콜센터처럼 피해자들에게 전화해 사기 사이트 가입이나 상품 추천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심리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어떤 문장을 강조해야 하는지 등 대본 흐름에 대한 전반적인 교육을 마치고 교육 담당 직원과 실제 상황을 가정하고 실습을 진행한 뒤 현장에 투입됐다.

교육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신기술이 도입될 때마다 시나리오가 구체적으로 수정돼 대본도 바뀌었기 때문이다. 일례로 ‘모두의 사인’이라는 전자결재 시스템이 출시되자 총책은 해당 기술이 피해자들에게 더욱 신뢰감을 심어줄 수 있다고 판단해 이를 사기 시나리오에 녹일 것을 지시했다. 상담원 역할을 하는 조직원들은 실제 피해자들에게 전자결재를 통한 회원 가입을 권유하기 전 시스템을 활용해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다.

해외에 거점을 두고 우리나라 국민을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이고 있는 대규모 사기 조직의 경우 한국어에 능숙하지 못한 직원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중국의 한 조직은 매주 조직원들에게 주급을 정산해주기 전 1시간 반에서 2시간가량 그 주에 금원 편취에 성공한 사례와 실패한 사례의 녹취본을 번갈아 들려주는 시간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은 피해자의 반응을 틀어주고 해당 상황에서 조직원이 어떤 멘트를 해야 하는지 문답식으로 진행됐다.

2023년부터 지난해 사이 우리나라 경찰에 순차적으로 검거된 한 보이스피싱 사기 조직은 내부에 여성 조직원들이 다수 있다는 이유로 조직원 간 성비위를 막기 위해 성인지 감수성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경찰 수사 결과 교육을 진행한 담당자는 우리나라 지방 소재의 한 대학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는 대학교수로 은퇴 후 권유를 받고 해당 조직에 합류한 것으로 나타났다.

배신한 조직원이 수사기관에 조직과 관련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복지 제도를 마련하기도 했다. 중국 베이징에 거점을 둔 한 보이스피싱 조직은 매주 옷을 가장 세련되게 입은 직원을 ‘베스트 드레서’로 선정해 상여금을 지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반대로 가장 옷을 갖춰 입지 못한 직원을 ‘워스트 드레서’로 선정하지만 이 경우에도 일정 금액을 쥐어주며 새 옷을 구매하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보이스피싱 조직의 경우 과거 성매매 업소가 랜덤 채팅 앱으로 변신한 것처럼 불법 테두리 내에 있던 사업을 양지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해외 조직은 조직원의 도주 우려나 밀고와 같은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일종의 배분 차원에서 철저한 교육과 조직원 복지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경제신문 취재진이 딥시크에 ‘사기 문구를 작성해달라’고 한 뒤 한국어 번역을 요청한 결과. 딥시크는 별도의 현지화 요청이 없었는데도 원문의 ‘소우(小雨)’를 한국식 이름인 ‘소율이’로 바꿔 답변을 내놓았다. 딥시크 캡처


딥시크로 시나리오 짜고 번역… '로맨스 스캠' 그놈 중국인이었다

‘[쿠팡 연말 이벤트] 축하합니다! iPhone 14 당첨되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소율이에요. 친구가 추천해준 번호를 잘못 저장했나 봐요. 이건 인연인가요?’

서울경제신문이 ‘사이버 사기에 활용할 문구를 작성해달라’고 하자 ‘중국판 챗GPT’ 딥시크는 불과 몇 초 만에 이 같은 답변을 생성해냈다. 취재진은 최근 중국 현지 사기 조직이 딥시크를 활용하는 상황을 최대한 재연하기 위해 먼저 중국어로 질문한 뒤 답변을 한국어로 바꿔달라고 했는데 문법 오류 하나 없는 깔끔한 번역을 받아볼 수 있었다. 더 놀라운 진가는 원문과 번역본을 비교해봤을 때 드러났다. 원문 메시지의 ‘타오바오’를 ‘쿠팡’으로, 중국식 이름인 ‘소우(小雨)’는 ‘소율이’로 바뀌어 있었다. 별도 주문이 없었는데도 사소한 부분까지 고려해 알아서 현지화를 해준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최근 1~2년 새 챗GPT, 딥보이스·딥페이크를 비롯한 인공지능(AI) 기술이 보편화되면서 사기 범죄가 유례없는 속도로 첨단화하고 있다. 기존에도 무작정 전화를 돌리는 보이스피싱부터 시작해 로맨스스캠·투자리딩방 등으로 꾸준히 진화해왔지만 AI 등장 이후에는 아예 대대적인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진단이다.



가장 큰 변화는 주요 총책 자리를 중국인이 꿰차게 됐다는 점이다. 다짜고짜 피해자에게 전화해 사기를 쳐야 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대부분 메신저를 통해 사기를 치기 때문에 한국어 능통자를 크게 필요로 하지 않는다. 최근 들어서는 AI가 번역은 물론 사기 시나리오까지 다 짜줄 정도로 고도화됐기 때문에 한국인이 총책을 맡을 이유가 더욱더 없어졌다. 안정엽 충남경찰청 형사기동대 팀장은 “과거에는 한국인들이 총책을 도맡았다면 이제는 검수 역할만 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환경 등 정보기술(IT) 인프라가 중요해지면서 근무지 역시 대도시로 바뀌었다. 과거에는 수사기관의 단속을 피해 시골에서 주로 활동을 했다면 이제는 중국의 2선급 도시인 칭다오·쑤저우 등에 사무실을 두고 일반 직장인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여 근무하는 추세다. 규모가 큰 일부 조직들은 베이징·상하이까지 진출한 경우도 있다.

최근 캄보디아의 대도시들이 ‘사기 성지’로 급부상 중인 것도 최첨단 IT 인프라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수도 프놈펜에서 25㎞가량 떨어진 곳에는 아예 ‘망고단지’라고 불리는 범죄 단지가 조성돼 있다. 대규모 오피스텔에 층층마다 조직들이 입주해 있는데, 각 조직마다 상대하는 국가와 전문 사기 분야가 세분화돼 있다. 이들은 같은 생활권 안에서 이웃처럼 지내면서 유기적으로 협업해 사기를 친다.

안 팀장은 “과거 중국에서 프놈펜·시아누크빌 등을 카지노 도시로 만들겠다고 하자 다수의 중국인들이 몰려가 IT 인프라를 조성해놓았다”며 “하지만 중국이 말을 바꿔 해외 도박까지 금지하며 사업이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이주자들이 궁여지책으로 보이스피싱 등 사기 조직 결성을 선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기꾼들은 AI 활용 능력은 기본으로 깔고 각종 IT 신기술을 개발·활용하며 더욱 치밀하게 사기를 벌이고 있다. 2023년부터 지난해까지 조직원들이 순차 검거됐던 ‘김군일파’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조직은 의사 피해자 한 명에게만 무려 41억 원을 편취한 것으로 유명해졌는데 각종 창의적인 기술과 시나리오를 선보여 ‘보이스피싱계의 삼성’으로 불릴 정도였다.

예컨대 조직은 피해자 휴대폰에 좀비 프로그램을 심어 피해자가 아무리 다른 곳으로 전화를 해도 조직이 당겨서 받는 기술을 최초로 개발했다. 자체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고 당직 시스템을 도입해 심야에도 피해자와 연락이 끊기지 않도록 하기도 했다.

시나리오 역시 기발했다. 이들은 콜센터 사무실 안에 가짜 검사실을 차려놓고 영상통화를 통해 피해자들을 속였다. 또 단순히 예치금을 편취하는 과거 방식과 달리 대출을 실행시켜 돈을 추가로 뜯어내는 시나리오까지 개발했다. 해당 시나리오를 도입한 후 피해 건수는 줄었지만 금액은 천문학적으로 늘었다. 안 팀장은 “1인당 편취 금액 기록을 이 조직이 모두 경신했다”고 설명했다.

"보이스피싱은 푼돈장사"…기업형 사기 목표는 온라인 도박장
전북 전주에서 조폭으로 활동하던 오상철(47·가명) 씨는 2014년 돌연 중국 산둥성으로 넘어가 폐공장에 콜센터를 차렸다. 보이스피싱 범죄에 활용할 대포통장을 수집해 조직에 팔아넘기는 이른바 ‘장집(통장 관리하는 집)’으로 돈을 벌겠다는 발상이었다. 실제 그는 이후 4년간 대포통장 1만 4400개를 팔아넘겨 144억 원을 벌어들였고 개인적으로도 최소 21억여 원을 챙겼다.

떼돈을 번 오 씨는 이내 불법 파워볼 도박장 운영에 손을 뻗었다. 조직원 수십 명과 함께 콜센터를 풀가동하며 돈을 벌어야 했던 장집 시절과 비교하면 워라밸이 차원이 달랐다. 단순히 도박금을 대리 충전해주거나 베팅해주는 방식으로 판돈을 불과 10개월 만에 31억 원까지 불렸다. 또 떼돈을 긁어모은 그는 유흥과 도박에 탐닉하다가 지난해 결국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보이스피싱에 이어 리딩방·로맨스스캠까지 사기 범죄가 나날이 발전하고 있지만 이들의 야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사기는 그저 관문일 뿐 최종적으로는 도박장을 개설해 수수료 장사로 떼돈을 버는 게 사기꾼들의 최종 목표다. 직장인들이 평사원에서 시작해 사장직까지 꿰차는 ‘샐러리맨 신화’를 꿈꾼다면 사기꾼들에게는 ‘도박장 신화’가 있는 셈이다.

백의형 경찰청 피싱수사계장은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보이스피싱·로맨스스캠 등은 사기꾼들 사이에서 푼돈 만지는 일로 인식된다”면서 “이들의 최종 목표는 사기 범죄로 ‘초기 자금’을 모은 뒤 도박장을 개설해 편하게 돈을 버는 것”이라며 이같이 진단했다.

실제 도박장은 사기꾼들 사이에서 ‘황금 알을 낳는 거위’로 불린다. 한 번 개설하면 손을 거의 대지 않고도 수수료 장사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도박 사이트의 경우 실물 도박장이 존재하지 않는 데다 대부분 해외에 근거지를 두고 있기 때문에 검거 가능성도 낮다. 2023년 압구정역 인근에서 약물 운전을 하다 행인을 치어 죽인 ‘롤스로이스남’ 신 모(30) 씨가 몸담았던 불법 도박 조직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조직은 2020년 6월부터 2021년 3월까지 캄보디아에서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며 불과 7개월 만에 판돈 규모를 8600억 원까지 불렸다. 조직원들은 이후 3년간 호화 생활을 하다가 경찰이 사고를 계기로 신 씨의 자금 출처를 1년 가까이 캐고 난 후에야 덜미를 잡혔다.

백 계장은 “도박 사이트는 초반에 피해자에게 수익금을 지급해 신뢰를 쌓아야 하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높다”며 “다만 초기 투자에만 좀 공을 들이면 이후 자동으로 돈이 벌리는 만큼 도박장 개설은 모든 사기꾼들의 꿈”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들어서는 마약 사업에 손을 뻗는 사기 범죄 조직들 또한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기에서 시작해 도박·마약까지 이어지는 악순환을 뿌리 뽑기 위해 범죄 조직들을 척결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 마련이 시급하다고 진단한다. 모성준 사법연수원 교수는 “사기 범죄 조직이 ‘범죄 기업’으로 진화하면서 사기·도박·마약 등 여러 범죄를 동시에 저지르고 있다”며 “범죄 근절을 위해서는 잠입 수사와 통신 감청, 플리바게닝(사법 협조자 형량 감면 제도)을 도입하고 증인 보호를 위한 예산도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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