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직접 대화’ 운 띄운 푸틴, 불참 공식화
러, 체급 낮춘 대표단 파견…“쇼에 그칠 것”
젤렌스키, 일단 튀르키예로…기싸움 속 변수는
러, 체급 낮춘 대표단 파견…“쇼에 그칠 것”
젤렌스키, 일단 튀르키예로…기싸움 속 변수는
(왼쪽부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AF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열리는 우크라이나와의 평화 협상에 직접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불참 방침을 밝히면서 기대를 모았던 미·러·우크라이나 3국 간 정상회담은 불발됐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는 건 3년여 만이지만, 종전으로 나아가기 위한 실질적 진전을 기대하긴 어려워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러시아 크렘린궁은 14일 푸틴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메딘스키 대통령 보좌관을 단장으로 하는 러시아 대표단을 이스탄불 협상에 파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미하일 갈루진 외교차관, 이고리 코스튜코프 러시아군 총정찰국(GRU) 국장, 알렉산드르 포민 국방차관 등도 협상에 참석한다.
푸틴 대통령은 협상 대표단 명단에서 빠졌다. 크렘린궁은 푸틴 대통령의 이스탄불 방문 여부를 따로 밝히지 않았지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역제안한 정상회담을 사실상 거절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도 크렘린궁 발표 이후 이스탄불에 가지 않기로 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미 당국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미국에선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 특사, 키스 켈로그 러·우크라이나 특사 등이 이스탄불에서 협상 중재에 나선다.
결국 이스탄불 협상이 실무회담 성격에 머무를 것으로 전망되면서, 지지부진한 종전 협상의 돌파구가 마련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은 낮아졌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기대에 못 미치는 체급의 관리들로 대표단을 꾸려 협상 전망은 더 어두워졌다고 외신들은 평가했다. 최소한 지난 3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대미 고위급 회담에 참석했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 유리 우샤코프 외교정책 보좌관 등은 참석할 것으로 기대됐으나 이번 대표단 명단에서 빠졌다.
11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크렘린궁에서 성명을 발표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EPA연합뉴스
특히 ‘강경파’로 분류되는 메딘스키가 대표단 단장으로 임명된 것을 두고 러시아가 이번 협상에서 양보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뜻을 드러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분석했다. 메딘스키는 전쟁 초기인 2022년 이스탄불 협상에서 러시아 측 대표단을 이끌었던 인물인데, 그를 다시 내세움으로써 이번 협상이 3년 전 결렬된 협상의 ‘재개’라는 푸틴 대통령의 입장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2022년 러·우 협상은 우크라이나가 영구 중립국으로 남고 군사력을 대폭 줄이는 내용 등이 담긴 종전 협정문 초안이 다뤄졌으나 결국 결렬됐다. 당시보다 러시아군이 점령한 영토가 적어진 데다, 서방의 지원을 받게 된 우크라이나가 한 번 거부했던 협정을 지금 받아들일 가능성은 없다고 WSJ는 전했다. 이런 상황들을 종합하면 푸틴 대통령이 운을 띄운 ‘직접 대화’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 협상에 응하는 척하되 시간 끌기용 전략에 불과하다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러시아유라시아센터 타티아나 스타노바야 선임연구원은 뉴욕타임스에 “현실적으로 휴전이나 평화에 대해 진지한 논의를 할 만한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다”며 15일 회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든 “쇼”에 불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키이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젤렌스키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의 전략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앞서 “푸틴이 직접 회담에 오지 않는다면 전쟁을 끝낼 의지가 없다는 걸 의미한다”고 강조해온 그는 이날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로 출발했다. 푸틴 대통령 불참에도 튀르키예를 찾음으로써 국제사회에 ‘휴전 협상에 성의를 보이지 않는 쪽은 러시아’라는 메시지를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낙관하기 어려운 15일 회담을 앞두고 변수로는 미국의 태도가 거론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들어 러시아를 향한 경고성 발언 수위를 높이며 과거와는 사뭇 달라진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의 직접 대화 제안을 덥석 받아들면서 유럽 국가들이 ‘30일 휴전’을 압박하기 위해 공들여온 대러시아 제재 판을 깨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유럽 국가들은 회담 결과를 지켜보되 진전이 없으면 대러 제재 강화에 즉각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럽연합(EU)은 이날 러시아의 편법 원유 수출을 봉쇄하기 위해 ‘그림자 선박’에 속하는 유조선 약 200척을 제재 목록에 올리는 제17차 대러시아 제재에 합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