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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21년 10월 강원도 김화군 수해 복구 현장을 방문해 벼 낟알을 살펴보는 모습. 조선중앙TV 캡처, 연합뉴스
북한에서 지난해 말부터 환율이 급격하게 치솟고 물가도 크게 오른 가운데 장마당 물가의 핵심 지표인 쌀값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만성적인 경제난을 극복하고 통치력을 강화하기 위해 당국이 직접 시장 통제에 나서 '보이는 손'(visible hand)을 움직인 게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역풍으로 돌아왔다는 분석이다.

14일 일본의 북한 전문매체인 아시아프레스에 따르면 북한 장마당에서 2021년 3~5월 1㎏당 4000~5000원이었던 쌀값은 올해 3월부터 현재 8800~9500원으로 두 배 가까이 폭등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국경 봉쇄 기간에도 안정적으로 관리되던 쌀값이 급격하게 오르는 이상 징후가 포착되는 셈이다.

일반적으로 시장에서의 가격 상승은 수요의 증가나 공급량 감소에 따른 결과로 나타난다. 그런데 북한에선 식량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만한 특별한 요인이 없다. 지난해 작황도 폭우와 해충 피해로 소폭 줄어들었으나, 예년과 비교할 때 전반적인 생산량에 큰 영향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농촌진흥청은 지난해 북한의 쌀·옥수수 등 식량 작물 생산량은 2023년보다 소폭(4만t) 줄어든 478만t으로 추정된다고 지난해 12월 밝혔다.

노동신문은 지난해 10월 15일 볏단을 제때에 실어나르고 있는 평안남도 농촌경리위원회 안북농장의 기계화초병들을 조명했다. 뉴스1
전문가들은 북한의 쌀값 폭등에는 기본적으로 북한이 양곡 및 소비재 유통에 '국가판매' 원칙을 적용한 게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북한은 지난 2022년 양곡의 수매 관리 등에 관한 규율을 담은 법률인 양정법, 사회주의 상업법, 가격법 등을 개정해 쌀의 판로를 국가가 운영하는 양곡판매소로 제한했다. 또 가격까지 인위적으로 장마당에 근접하게 올렸다. 당국이 그간 암묵적으로 허용했던 장마당에서의 쌀 유통을 본격적으로 통제하고 재정을 확보하려는 의도다. 이런 여파로 장마당에서 쌀 유통량이 급격하게 줄어들자 장마당 쌀 가격이 크게 올랐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북한 경제 전문가인 최지영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북한의 국가 유통 강화 정책과 시장지표의 변동'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12월 기준 북한 신의주 지역의 쌀값은 1㎏당 기존 식량공급소(옛 배급소) 기준 판매 가격이 2000원이다. 그런데 당국이 도입한 양곡판매소는 가격을 3700원까지 올려 책정했다. 장마당의 시장 매대 판매가(4800원)에 근접하는 수준이다.

여기에 북한이 2023년 말부터 국영기업소 등을 시작으로 주민 임금(생활비)를 10~20배 가량 인상한 것도 일정 부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주민 생활 개선을 위해 임금을 인상했으나, 오히려 인플레이션을 촉발하는 역효과를 가져온 것이다. 이런 현상은 임금과 국정환율 인상 등을 골자로 한 2002년 7·1 경제관리 개선 조치 당시에도 유사하게 나타났다.

2020년 9월 북한 양강도 혜산시 장마당의 모습. 중국 지린(吉林)성 창바이(長白)조선족자치현에서 촬영. 연합뉴스
특히 이런 북한 당국의 시장 통제 조치는 장마당에서 각종 경제 활동을 통해 소득을 창출해온 주민들에게 직격타를 입혔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특히 북한에서 쌀은 주식일 뿐만 아니라 언제든 시장에서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으로서 가치를 지니는 상징적인 식량 작물이다. 이 때문에 북한에선 '쌀값이 미국의 전략자산보다 무섭다'는 말도 공공연히 나온다.

통치력 강화를 위한 방안으로 장마당의 핵심 품목에 손을 댄 김정은이 오히려 쌀값을 올려 민심이반을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한 셈이다. 당국의 통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한 옥수수 등 다른 대체 작물의 가격은 안정적인데 쌀값만 폭등한 게 이를 방증한다.

국가정보원도 지난달 30일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에서 무리한 지방건설, 러시아 지원을 위한 군수생산 강행으로 원자재, 자금 부족이 심각하기 때문에 민생과 직결된 환율, 물가 불안이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제2경제위원회 산하 중요군수기업소들을 현지지도했다고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7일 보도했다. 신문은 포탄생산기업소가 단계별 현대화 과업을 완벽하게 집행해 포탄생산실적을 평년 수준의 4배, 최고 생산 연도 수준의 근 2배로 끌어올렸다고 강조했다. 뉴스1
오경섭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쌀값 폭등은 간부나 돈주 같은 특권층보다 취약한 일반 주민들의 생계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며 "김정은 입장에선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보다 민심을 직접 위협하는 쌀값 폭등이 정권 안정에 더 큰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일각에선 장마당 쌀값이 앞으로도 하락하지 않고 현 상태로 고착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금의 1㎏당 9000원 전후에서 나름 안정세를 찾을 것이란 뜻이다.

탈북민 출신인 김영희 동국대 북한학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은 "2002년 '7·1조치'를 통해 임금과 환율, 국정가격을 크게 인상했던 상황과 비슷하다"며 "임금과 국정가격이 인상되면 시장가격은 당연히 상승하지만, 당장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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