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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I 이슈|원세훈·이재명 선거법 상고심 비교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2015년 2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대선 개입 혐의로 2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자, 박근혜 정부의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은 대법원을 향해 노골적인 불만을 표출했다. 2012년 대선 때 국가정보원이 댓글부대를 동원한 것과 관련해 원세훈 전 원장이 기소됐는데(원세훈 사건), 1심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지만, 2심은 유죄로 뒤집었다.

당시 청와대는 2심 선고 전부터 대법원 법원행정처에 ‘항소 기각을 기대한다’며 재판 전망을 문의했고, 2심에서 유죄 판결이 나오자 상고심(3심)을 신속하게 진행하라고 압박했다. 우병우 민정수석은 “상고심 절차를 조속히 진행하고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줄 것”을 요구했다. 박근혜 정부의 정당성을 위협할 수 있는 2심 판결 결과를 대법원에서 서둘러 뒤집어달라는 주문으로 해석됐다.

실제로 원세훈 사건은 소부(대법관 4명으로 구성)를 거쳐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로 전원합의체(대법관 13명이 참여해 합의·표결)에 넘겨졌다. 2015년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심 유죄 판단의 핵심 증거였던 국정원 직원 전자우편 파일 2건(‘425지논’, ‘시큐리티 파일’)의 증거 능력을 부정하며, 13 대 0 만장일치로 2심을 뒤집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당시 법원 안팎에서는 소수의견조차 없는 만장일치 전원합의체 판결이 왜 나왔는지, 소부에서 충분히 다를 수 있는 쟁점을 왜 굳이 전원합의체로 올린 배경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왔다.

의문의 대법 판결…‘배후’는 청와대

의문점은 3년 뒤 2018년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 농단 사건’을 조사하던 대법원 조사위원회에서 풀렸다. 대법원이 원세훈 사건 재판 동향을 청와대에 보고하고 우병우 민정수석이 전원합의체와 신속한 판결을 요구했다는 내용이 담긴 법원행정처의 문건(‘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 선고 관련 각계동향’)이 나왔다. 문건에는 원세훈 사건은 “기록 접수 전이라도 특히 법률상 오류 여부 면밀히 검토 → 공직선거법 제270조의 재판 기간에 관한 강행규정(3개월) 최대한 준수하여 신속 처리”하겠다고 적혀 있었다.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재명 사건)을 둘러싼 ‘이례적 전원합의체’와 ‘속도전’ 논란이 불거지면서 10년 전 원세훈 사건과 닮았다는 목소리가 법조계에서 나온다. 박근혜 정부 시절 우병우 민정수석의 요구대로 유죄를 선고한 2심을 파기해 사법부의 신뢰를 스스로 훼손한 원세훈 사건의 ‘데자뷔’라는 지적이다.

두 사건에 모두 조희대 대법원장이 등장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조 대법원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3월 대법관으로 임명돼 2020년까지 6년간 재임하면서 원세훈 전원합의체 판결에 두 차례 참여했다. 이후 2023년 12월 윤석열 정부에서 대법원장으로 취임해 이재명 사건 전원합의체 판결을 이끌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2015년 11월27일 ‘국정원 댓글 사건’ 파기환송심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김명진 기자 [email protected]

통상적인 전원합의체는

상고사건이 접수되면 대법원은 대법관 4명으로 구성한 소부에 배당하고 주심 대법관을 정한다. 당사자가 제출한 상고이유서와 답변서는 대법원 재판연구관에게 배정돼 1차 검토를 거친다. 1차 검토보고서를 받은 주심 대법관은 △심리불속행이나 △상고기각 여부를 결정하거나, △전속 또는 공동 연구관에게 기록을 넘겨 추가 검토 의견을 받는다. 그리고 매달 두 차례 열리는 소부 합의에 들어가 다른 대법관들이 동의하면 소부 판결을 선고한다.

소부 합의에서 대법관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거나 종전 판례를 바꾸는 등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로 넘어간다. 전원합의체는 매달 열린다. 주심 대법관이 사건의 내용과 쟁점, 검토 내용을 설명한 뒤 대법관들의 토론이 이어진다. 한 번에 종결짓는 경우는 많지 않고, 대부분 3, 4회 정도 합의를 속행한다.

전원합의체에서 논의된 사건 중 3분의 2가량은 다시 소부로 돌아가 소부 판결로 마무리된다. 토론이나 판결문 작성 때 대법관들이 의견을 바꾸거나 정치적 오해를 받을 수 있는 경우에 주로 그렇다. 전원합의체 판결은 연간 20~30건 정도다. (논문 ‘대법원 상고사건 처리의 실제 모습과 문제점’ 2016, 저서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2017)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 조합원 등이 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들머리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은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위반과 사법부 신뢰 훼손의 책임을 지고 즉각 사퇴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이례적인 전원합의체 회부

이재명 사건과 원세훈 사건은 몇 가지 중요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첫 번째, 두 사건 모두 대통령 선거와 관련한 ‘정치적 판결’이라는 점이다. 원세훈 사건은 2012년 대선과 직접 연결돼 있었으며, 이재명 사건은 대선을 한 달 앞둔 시점에서 나왔다. 사법부가 선거의 공정성, 정치적 중립성,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는지 보여주는 판례라는 점에서 두 사건은 닮았다.

두 번째, 이례적인 전원합의체 회부다. 이재명 사건은 소부 배당 당일(4월22일) 대법원장 직권으로 곧바로 전원합의체로 넘겨졌다. 원세훈 사건 역시 만장일치라서 소부 판결로 나오는 게 통상적인데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선거법 내세워 속전속결

세 번째, 공직선거법상 ‘신속 처리’를 내세우며 숙의 없이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이재명 사건은 전원합의체 회부가 결정된 날(4월22일), 첫 합의기일이 열렸다. 불과 이틀 만(4월24일)에 두 번째이자 마지막 합의기일이 잡혔고 판결 선고(5월1일)까지 9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1심은 2년 2개월, 2심은 4개월이 걸렸던 이 사건이, 대법원에서는 36일 만에 결론이 났다.

다수의견은 공직선거법 제270조가 정한 신속 강행 규정인 ‘6·3·3(1심 6개월, 2심과 상고심은 각 3개월 내 종료)’을 준수했다고 했지만, 소수의견은 “대법관들 상호 간의 설득과 숙고의 성숙 기간을 거치지 않은 결론은 외관상의 공정성에 대한 시비도 문제이지만 결론에서도 당사자들과 국민을 설득시키는 데 실패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원세훈 사건도 ‘신속 처리’됐는데 대선 개입 유·무죄 자체에 관해선 판단하지 않고, 2심에서 유죄의 근거로 삼았던 증거(‘425지논’, ‘시큐리티 파일’)의 증거능력만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법원행정처의 문건이 공개되면서 대법원이 청와대의 입김에 휘둘렸다는 치명적 오점이 드러났다.

오선희 변호사는 “법원의 판결에 동의하지 않아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정한 규칙대로 진행되고 적용된다는 신뢰 때문”이라며 “대법원이 특정 사건을 특별하게 진행함으로써 국민이 법원의 결정을 신뢰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참여연대와 민변 긴급좌담회 ‘대법원의 대선개입 사태의 의미와 시민사회 대응’)

7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 법원 앞에 시민들이 조희대 대법원장과 대법원을 규탄하는 손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신소영 기자 [email protected]

마지막 퍼즐은 ‘조희대’

두 사건의 또 다른 공통점은 조희대 대법원장이다. 이재명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이끌었던 조희대 대법원장은, 원세훈 사건에도 대법관으로 두 차례 참여했다. 원세훈 사건은 ‘1심→2심→상고심(2015년)→파기환송심→재상고심(2018년)’ 등 다섯 번의 재판을 거쳤는데, 조 대법원장은 2015년과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상고심과 재상고심)에 관여했다.

대법원의 파기환송 이후 서울고법 형사7부는 결론을 내지 않고 재판을 끌었고, 2017년 3월 박근혜 대통령 파면 뒤에야 파기환송심 결론이 나왔다. ‘425지논’ ‘시큐리티 파일’의 증거능력은 부인했지만, 검찰이 재판 막바지에 제출한 ‘전 부서장 회의 녹취록’ 등을 새로운 증거로 채택해 공직선거법 위반까지 유죄로 인정해 징역 4년을 선고했다.

2018년 4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형을 그대로 확정했다. 다만 조희대 당시 대법관은 김창석 대법관과 함께 소수의견을 내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무죄라고 판단했다. “사이버 활동의 규모가 국정원의 조직적 개입이라고 보기에는 미미하고 선거일에 가까워질수록 발생 빈도가 줄어든다”는 이유를 들었다. 원세훈 전 원장의 대선 개입에 두 차례나 ‘면죄부’를 준 것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무죄 의견을 낸 이유에 대해 “권력을 잃은 사회적 약자 입장에 서서 판결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유죄 취지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파기환송 판결한 지난 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조희대 대법원장이 판결하는 모습을 생중계 방송으로 지켜보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결국 이재명·원세훈 사건 모두 대선이라는 국가적 중대사와 직결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었고, 대법원 판결이 선거와 정치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도 이례적 전원합의체 회부와 충분한 숙의 없는 ‘속도전’으로 법원 안팎에서 강한 비판을 받았다. 특히 대법원이 최고법원의 권위를 스스로 훼손하며,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 재판의 독립이라는 사법의 기본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두 사건은 닮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두 사건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조희대 대법원장이 있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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