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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대통령선거에 나섰던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선거사무소에서 후보 사퇴의 입장을 밝힌 뒤 퇴장하고 있다. 오른쪽은 손영택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 김성룡 기자
김문수만 바라보고, 김문수만 비난하다가 끝이 난 찰나 같은 정치 여정이었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11일 “모든 것을 겸허하게 수용하고 승복하겠다. 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간다”며 고개를 숙였다. 한 전 총리는 이날 오전 여의도 선거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승리하기를 기원한다. 제가 할 수 있는 일로 돕겠다”고 말했다. 기자회견 직후엔 국민의힘 당사를 찾아 김 후보를 끌어안고 “이번 선거에서 이기려면 김 후보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지난 10일 새벽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기습 등록, 같은 날 전 당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대선 후보 변경(김문수→한덕수) 찬반조사가 부결된 뒤 후보직을 내려놓았던 ‘정치인 한덕수’의 마지막 인사에 가까웠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 등극이 유력했던 10일 당사 기자회견에서 국민의힘의 상징색인 빨강색 넥타이를 매고 “김덕수·홍덕수·안덕수·나덕수 되겠다”고 했던 한 전 총리는 이날 승복 기자회견에선 관료 시절 즐겨 착용한 보라색 넥타이를 다시 매고 연단에 섰다. 김 후보가 제안한 선거대책위원장직에 대해서도 “실무적으로 협의하자”고 거리를 뒀다. 사실상 거절이었다.

지난 2일 출마부터 10일 낙마까지 한 전 총리의 지난 8일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했다. 모든 일정이 김 후보와의 단일화에 점철되며 공약 발표는 단 1회에 그쳤다. 자신의 강점인 통상과 경제를 내세우지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제대로 된 각도 한번 세워보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구(舊) 여권 관계자들은 ▶국민의힘 대선 경선 불참 ▶김문수에 대한 과도한 확신 ▶폐쇄적인 대선 캠프 운영을 한 전 총리의 실패 원인으로 꼽았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가 8일 국회 강변서재 앞뜰에서 만나 단일화와 관련된 대화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한 전 총리는 지난 8일간 무임승차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 후보와 두 차례 담판을 벌였던 김 후보는 한 전 총리를 만날 때마다 “그렇게 나라가 걱정됐으면 (기탁금)3억원을 내고 국민의힘 경선에 참여했어야 한다”며 몰아세웠다. 권영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등 국민의힘 지도부도 지난 달 한 전 총리에게 “대선에 출마할 거면 경선에 나오시라”는 요청을 수차례 했다고 한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경선 참여 없이 한 전 총리 지지율 유지는 어렵다고 봤다”고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한 전 총리는 “정치 생각이 없다”며 거절했다. 한 전 총리의 측근 참모들도 “총리님을 경선판에 던져 놓을 순 없다”며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한덕수 카드’를 배제한 채 흥행에 초점을 두고 경선 일정을 빡빡하게 짰다. 후보 선출일은 대선 후보 최종 등록일 불과 8일 전이었다. 뒤늦게 대선 출마를 선언한 한 전 총리에게는 결과적으로 너무 촉박한 일정이었다.

경선 참여를 거부했던 한 전 총리는 왜 출마를 결심했을까. 먼저 ‘한덕수 추대론’을 내세우는 국민의힘 의원들의 설득에 마음이 조금씩 움직였다고 한다. 4월 말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세 협상이 ‘7월 패키지’로 일단락되며 급한 고비를 넘기고 추가경정예산안도 국회에서 통과되며 국정 운영의 부담을 덜어낸 것도 컸다. 특히 총리와 장관으로 내각에서 함께 일하며 대선 경선 기간 자신을 ‘김덕수’라 지칭했던 김 후보가 신속히 단일화에 나설 것이라 확신했다고 한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대리인인 김재원 비서실장(왼쪽)과 한덕수 무소속 대선 예비후보 대리인인 손영택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이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단일화 협상 관련 회동을 마치고 각각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날 단일화 협상은 결렬됐다. 뉴스1
하지만 ‘장관 김문수’와 ‘정치인 김문수’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걸 정치 경험이 적었던 한 전 총리는 꿰뚫어 보지 못했다.

한 전 총리 측 관계자는 “김 후보가 단일화를 두고 딴소리를 할 줄은 몰랐다. 설령 다른 마음을 먹어도 여론을 못 버텨낼 것이라 생각했는데 안일했다”고 후회했다.

한 전 총리는 출마 후 8일간 이재명 후보가 아닌 사실상 김 후보와만 싸웠다. 경선에서 탈락한 홍준표 전 대구시장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도 한 전 총리와 각을 세웠다. 평소 절제된 언어를 썼던 것과 달리 “저와 단일화하겠다고 22번이나 약속하셨던 분이 하루아침에 거짓말을 한다. 그런 정치인은 나라를 망칠 가능성이 많다(9일 KBS 사사건건)”며 한 전 총리는 감정적 발언을 쏟아냈다.

비밀스럽고 폐쇄적인 대선 캠프 운영도 실패의 단초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는 손영택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과 김수혜 전 총리실 공보실장을 중심으로 꾸려졌다. 두 사람 모두 지난 3년간 매주 한 전 총리에게 독대를 하며 신뢰를 쌓아온 참모들이다. 하지만 대선 준비 경험이 부족했고, 캠프 구성도 손 전 실장과 가까운 인사들로 채워지며 이정현 전 국민의힘 의원을 제외하고는 중량감 있는 인사들이 합류하지 못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국민의힘 당 차원의 지원만 믿고 제대로 된 캠프 운영을 소홀히 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 7일 한 전 총리가 “11일까지 단일화가 안 되면 대선 출마를 포기하겠다”고 밝힌 것 역시 극소수 참모에게만 공유됐다고 한다.
구 여권 관계자는 “지난 8일간 관료로서 강점을 지닌 ‘한덕수다움’은 단 한 번도 드러나지 못했다”며 “참모들도 경험이 없으니 다선 의원이 포진한 김 의원 측 참모들에게 단일화 협상 때마다 말려버렸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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