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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모(58)씨가 지난 8일 어버이날에 아들과 함께 작성한 '효도 계약서'의 모습. 김씨는 ″이렇게라도 해야 아들이 부모를 생각하지 않을까 싶었다″고 계약서를 쓴 이유를 설명했다. 사진 독자제공

〈효도 계약서〉 증여 조건
1. 을(아들)은 매달 1회 이상 갑(아버지)에게 방문한다.
2. 갑의 병원 치료비는 을이 전액 부담한다.
3. 을이 부동산을 매매 또는 담보로 제공하는 경우에는 사전에 갑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김모(58)씨는 지난 8일 어버이날을 맞아 아들과 함께 ‘효도 계약서’를 작성했다. 김씨가 아들에게 아파트와 현금 1억원을 증여하는 대신 아들은 매달 1회 이상 김씨를 방문하고, 김씨의 병원 치료비를 전액 부담하는 것이 조건이었다. 김씨는 “아들이 독립하면서 얼굴 한 번 보기 어려워졌는데, 이렇게라도 조건을 걸어야 부모를 생각할 것 같았다”며 “나중에 부모가 아프고 병들었을 때 아들이 모르는 척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다”고 말했다.

효도 계약서란 부모가 생전에 자녀에게 재산을 증여할 때 효도와 부양 등을 조건으로 작성하는 일종의 ‘부담부증여(負擔附贈與)’ 계약을 말한다. 부담부증여란 수증자가 증여를 받는 동시에 일정한 채무를 부담할 것을 조건으로 하는 증여 계약으로, 쉽게 말해 재산과 그에 따른 부담을 함께 주는 것을 의미한다. 즉 자녀가 계약서의 내용대로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다면 약속했던 증여가 그대로 취소될 수 있다. 2015년 12월 대법원이 노부모를 봉양하겠다는 조건을 이행하지 않은 아들에게 20억원 상당 건물 소유권을 반환하라고 판결한 게 대표적이다.(‘효도 각서’ 판례)

효도 계약서는 매해 상속 재산 총 규모가 커지면서 가족 간 상속 관련 법적 다툼 또한 늘면서 주목을 끌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총 상속재산가액 신고액은 2018년 20조5726억원에서 2023년 39조549억원으로 규모가 크게 늘었다. 상속세 과세자 비율 또한 2018년 2.25%에서 2023년 6.82%로 올랐다. 상속 관련 소송도 크게 늘었는데, 법원행정처 사법연감을 보면 상속 재판은 2016년 3만9125건에서 2022년 5만1626건으로 매해 증가 추세다.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앞에서 원각사 무료급식소 자원봉사자들이 어르신들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부모·자식 관계에서 재산 상속(증여)과 효도를 교환할 수 있는 것이냐는 점은 국회 입법 논란으로도 이어졌다. 2020년 제21대 국회에서 박완주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른바 ‘불효자 먹튀 방지법’을 대표 발의했다. 부모의 재산을 이미 증여받은 자녀가 부양 의무를 다하지 않거나 부모를 학대하는 등의 행위를 한다면 증여를 무효로 하는 게 골자다. 이런 ‘불효자 방지법’은 2015년과 2018년에도 각각 발의됐다. 그러나 ‘효를 강제한다’는 반대 의견에 부딪혀 불효자 방지법은 매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효도가 도덕과 윤리를 넘어 법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데 대한 반감도 있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효도라고 하는 건 가족 간의 사랑이자 미덕의 영역”이라며 “효도를 계약서로 써 가면서까지 해야 한다는 건 슬픈 일”이라고 짚었다. 문용필 광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노인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만큼 효도에 대한 여러 논의가 나오고 있다고 본다”라면서도 “효를 법적 테두리로 묶기보다는 사회적 합의나 공감대를 형성하는 방식으로 노력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효도 계약서 자체를 부정적으로만 보기엔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이인철 법무법인 리 변호사는 “효도 계약서는 부모의 증여 과정을 법적으로 보호할 수 있고, 향후 일어날 수 있는 분쟁 가능성을 예방하는 수단도 될 수 있다”며 “부모와 자녀 간 신뢰를 더 두텁게 할 방안의 하나로 볼 필요도 있다”고 설명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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