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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컬처 탐구생활]
<42> 'SNL 코리아' 정치 풍자

편집자주

K컬처의 현안을 들여다봅니다. 김윤하, 복길 두 대중문화 평론가가 콘텐츠와 산업을 가로질러 격주로 살펴봅니다.

지난달 26일 공개된 'SNL 코리아'의 코너 '지점장이 간다'에 출연한 한동훈(오른쪽)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와 그를 흉내 내는 개그맨 정성호. 'SNL 코리아' 유튜브 캡처지난달 26일 공개된 'SNL 코리아'의 코너 '지점장이 간다'에 출연한 한동훈(오른쪽)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와 그를 흉내 내는 개그맨 정성호. 'SNL 코리아' 유튜브 캡처


지난달 26일 방영된 'SNL 코리아'의 '맥도날드 트럼프 쇼'에서 정이랑과 정성호는 홍준표와 한동훈으로 분장해 키높이 구두, 가발, 눈썹 문신이 거론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경선 토론을 재연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들의 쇼는 당혹스러웠다. ‘거물’을 자처하는 정치인들이 생방송에서 상대의 외모를 거론하며 싸우는 모습은 분명 웃음거리다. 하지만 그것을 그대로 흉내 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그 사건이 만든 웃음에는 탄핵 정국을 통과한 시민들의 씁쓸함과 반성 없는 정치인들에 대한 분노가 서려 있는데, 이들의 코미디는 그 맥락을 담지 않고 후보들의 외모와 말투만 따라 하다 허무하게 끝을 맺었다.

사적 스캔들·갈등 구조만 부각

3일 방영된 'SNL 코리아'의 '지점장이 간다' 코너에 출연한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 SNL 코리아 유튜브 캡처


'SNL 코리아'가 정치를 다뤄온 방식은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맥도날드 트럼프 쇼'처럼 배우들의 분장을 통해 정치인을 모사하는 콩트, 다른 하나는 '지점장이 간다'처럼 정치인을 직접 섭외해 날 선 질문을 던지는 페이크 다큐멘터리다. 서로 다른 접근이지만, 두 방식 모두 정치인의 정책과 가치관을 해석하기보다는 인터넷에 유포된 사적 스캔들이나 타 정치인과의 갈등 구도를 과장해 재생산하는 공통점을 지녔는데, 바로 이 ‘해석의 부재’가 이 쇼의 치명적 결함이다. 중립을 자처하지만, 그들이 끌어오는 소재는 이미 왜곡된 인터넷 밈과 오염된 루머다. 중립을 지킨다는 이유로 그런 소재만 다루는 순간, 코미디는 적극적으로 편견과 혐오를 생산하는 도구가 된다.

지난 3일 방영된 '지점장이 간다'에서 편의점 아르바이트 지원자로 출연한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는 “동덕여대 학생들과 학식”과 “명태균씨와 명태탕” 중 어떤 식사를 고르겠냐는 질문에 “명태균씨와는 이미 밥을 많이 먹어 재미 없고, 동덕여대 학생들은 제 앞에선 안 사나울 것 같다”며 동덕여대 학생들과의 식사를 선택했다. 그는 동덕여대 학생들이 남녀공학 전환 논의와 학교의 비민주적 운영에 항의해 시위했을 때, 그것을 “비문명”이라 규정하고 ‘서울서부지법 폭동’에 비유하며 학생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배척하는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이 장면에서 조롱당하는 대상은 누구인가? 동덕여대 학생들은 학교의 비민주적 운영에 문제를 제기하고 저항하는 청년들이다. 또한 그들의 시위는 남녀공학 전환을 둘러싼 문제만이 아니라 학교의 일방적 결정 구조에 대한 민주적 항의다. 그러나 방송은 한 정치인을 위해 그 맥락을 지우고 그들을 하나의 소재로 호명해 혐오 정치의 도구로 적극 사용했다.

깊이 없는 풍자, 혐오 은폐, 무관심 불러

한동훈(오른쪽) 전 국민의힘 대표와 그를 흉내 낸 개그맨 정성호. 한동훈 페이스북


깊이 없는 풍자의 양상은 '지점장이 간다' 한동훈 편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편의점에서 자신의 ‘심문형’ 말투를 따라 하는 ‘한동안(정성호)’이라는 캐릭터를 마주하고 ‘내가 진짜 이러나?’며 멋쩍게 웃는다. 이때 ‘한동안’은 한동훈 특유의 반복적이고 폐쇄적인 화법을 흉내 내지만, 콩트는 그 화법이 가진 소통 불능의 본질을 드러내지 못하고, 그의 말투를 사소한 버릇으로 치환해 한동훈에게 비판의 통제권을 일임한다. 유머가 정치인의 권위를 보전하게 된 것이다.

테리 이글턴은 '유머란 무엇인가'에서 유머는 규범을 이완시키면서 동시에 그 규범을 더 견고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방송에 등장하는 정치인들은 코미디의 형식을 빌려 스스로의 텍스트를 ‘인간적인 면모’로 가공하고, 방송은 그들이 이용할 수 있게 템플릿을 제공한다. 그리고 이는 관객과 시청자가 가진 정치적 관심을 분산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정치적 무관심까지 유도한다. 많은 정치인들이 이 무대에 거리낌 없이 오르는 이유도 결국 쇼의 이러한 특성이 그들의 이미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 것이다.

'SNL 코리아'의 정치 풍자가 지키는 선은 지나치게 안전해서 혐오를 은폐하고 무관심을 불러오기도 한다. 그러나 풍자는 대상에 균열을 내는 장르이며, 권력을 가지지 못한 자들의 수단이자 무기다. 따라서 좋은 풍자를 위해서는 권력을 불쾌하게 만들고, 권력이 무엇을 비호하고 무엇을 소외시키는지를 파악하며, 권력의 반대편에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포집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권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웬만한 코미디보다 웃기지만,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웃음이 가린 고통을 들춰내는 ‘진짜’ 정치 코미디다.

복길 대중문화평론가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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