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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사니즘 넘어 잘사니즘…민주화 ‘다음 30년’
[커버스토리 : 정책은 안녕하십니까]



이번 대선은 역대급이다. 여러가지 의미로.
우선 치열한 유세전이 사라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만 유세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국민의힘은 초유의 후보교체 사건이 무산되고, 김문수 후보가 자격을 되찾았다.

국민의힘 내홍, 대법원의 개입 등으로 별로 없던 정책에 대한 관심마저 사라졌다. 과거 언론들은 입버릇처럼 떠들어댔다. "정책을 비교하고 투표하라."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말 조차 나오지 않는다. 이번 대통령 선거가 한국사회의 문제를 진단하고, 해법을 찾는 공론장이 되는 것을 기대하는 불가능해 보인다.

그럼에도 후보들의 경제정책을 짚어보는 이유는 차기 지도자가 이끌 한국 경제의 상황이 엄중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올해 1분기 성장률을 0.2%로 제시하며 소폭의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여기에 미국과의 관세·환율 갈등이 본격화되면 상황은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문제가 쌓이고 쌓여 터지기 직전이라는 경고는 이어진다. 이를 타개할 대책이 후보들에게 있을까. 대선주자별 경제공약을 해부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8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진짜 대한민국 선거대책위원회' 직능본부 민생정책 협약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경제 청사진은 ‘회복’과 ‘성장’을 통해 ‘보편적 기본사회’로 나아가는 3단계 구조다. 계엄령 이후 훼손된 경제 기반을 복구하고, 산업 구조 전환과 법 제도 개편을 통해 성장동력을 회복한 이후 사회 전체가 국민의 기본적 삶을 함께 책임지는 체제로 나아가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우(右)클릭’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가 내세운 건 실용주의다. 이 후보는 “민생 살리는 데 색깔이 무슨 의미냐”며 “‘어떤 게 더 유용하고 필요한가’가 최고의 기준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회복 → 성장 → 기본사회
이재명식 경제 개혁 3단계
회복을 위한 첫 단계는 ‘추가경정예산(추경)’이다. 이 후보는 민생경제를 살릴 응급처방이 추경이라고 했다. 첫 주사는 놨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지난 5월 1일 13조8000억원 규모의 2025년 추가경정예산안 처리에 합의했다. 양당이 합의안 규모는 정부안 12조2000억원보다 1조6000억원 증액됐다.

단, 이 후보가 제안한 ‘최소 30조원 규모의 추경’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그가 정권을 잡는다면 추경의 규모와 성격 모두 다시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추경은 대부분의 대선후보들이 ‘성장 촉진’을 전제로 제시하는 공통된 카드다. 그가 집중할 가능성이 높은 부문은 지역화폐 지원과 같은 내수 기반 회복 수단이다. 지역경제와 골목상권을 살리는 방식의 선순환 구조를 추구하는 것이 이 후보의 차별점으로 꼽힌다.

성장은 이번 대선 공약에서 이 후보가 가장 공들인 부문이다. 그는 대한민국의 산업을 다시 뛰게 만들 ‘6대 성장 엔진’을 제시하며 각 산업에 특화된 공공 투자와 제도 개편을 약속했다. 특히 AI, 바이오 등 고도화된 기술은 개별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한 만큼 국가가 나서서 대규모 R&D와 창업 지원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1번 타자는 단연 AI다. 박정희의 고속도로, 김대중의 인터넷망에 이어 이재명의 AI 인프라를 육성하겠다는 의지다. 수단은 ‘국가AI데이터센터’ 조성, 거점은 광주광역시다. 그는 최소 5만 장 이상의 최신형 AI 반도체(GPU)를 탑재한 초대형 센터를 만들어 AI 연구자·개발자·스타트업 누구나 쉽게 접근 가능한 인프라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윤석열 정부가 2030년까지 추진하기로 한 ‘국가 AI 컴퓨팅 센터’의 5배 규모에 해당한다.

앞서 최상목 전 권한대행은 H100급 GPU 1만 장을 올해 말까지 확보하겠다고 밝혔는데 이재명 후보는 그 5배 수준의 AI 역량을 국가가 직접 육성하겠다는 입장이다.

H100 GPU는 장당 7500만원에 달한다. 이재명 후보의 AI 공약을 비용으로 셈하면 100조원 규모의 투자다. 여기엔 “국민 모두가 선진국 수준의 AI를 무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이른바 ‘한국형 챗GPT’ 공약도 포함된다.

‘주 4일제 전환’과 ‘정년 연장’ 등 핵심 노동 공약도 AI에서 출발했다. 단순한 복지정책이 아니라 기술 변화에 따른 노동시장 구조 개편의 신호탄이란 생각이다.

이 후보는 “AI와 신기술로 생산성이 높아지는 대신 노동의 역할과 몫의 축소는 필연”이라며 “창의와 자율의 첨단기술사회로 가려면 노동시간을 줄이고 ‘주 4.5일제’를 거쳐 ‘주 4일 근무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AI 시대를 대비한 노동시간 단축, 저출생과 고령화, 생산가능인구 감소에 대비하려면 ‘정년 연장’도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8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대선후보 초청 경제5단체장 간담회에서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강은구 기자

바이오 산업은 제2의 반도체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이 후보는 “국내 10대 기업 중 이미 2곳이 바이오 기업”이라며 글로벌 상위 5대 바이오 국가 진입을 목표로 국가 차원의 투자를 예고했다. 특히 바이오의약품 선두 기업인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의 본사가 위치한 인천, 충청권 등을 지역거점 바이오벨트로 낙점했다.

AI·바이오가 후발주자의 입장에서 추격해야 할 첨단기술 산업이라면 문화콘텐츠와 방위산업은 한국이 이미 글로벌 선두를 점한 전략 산업이다. 이 후보는 선도산업에서 더 큰 기회를 발굴한다는 계획이다.

그는 “K콘텐츠 수출이 전기차를 넘었다”며 문화가 미래 먹거리 산업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문화예술 예산을 대폭 확대해 수출 경쟁력을 높이는 한편, 문화관광을 통해 내수 증진도 꾀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한국 관광의 약점으로 지적되는 브랜드·디자인 경쟁력을 강화해 관광업의 새 활로를 찾고 방한 관광객 수를 5000만 명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야심을 밝혔다. 지난해 기준 방한 관광객 수는 1637만 명, 역대 최고치였던 2019년에도 1750만 명 수준이었다.

방위산업도 마찬가지다. 이 후보는 방산 수출 컨트롤타워를 신설하고 대통령 주재 방산 수출 진흥전략회의를 정례화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방산 수출 기업의 R&D 세액 감면, 병역특례 확대를 통한 인재 양성 등도 주요 공약에 포함됐다. 또 방산 수출은 정부의 외교 역량이 직결되는 분야인 만큼 협력국 확대를 통해 수출 기반을 꾸준히 넓히겠다는 입장이다. 이 후보의 실질적인 외교 네트워크와 전략 능력이 관건이 될 수 있다.

이 후보의 ‘우클릭’이 드러나는 공약은 에너지 부문이다. 이 후보는 과거 ‘신규 원전은 건설하지 않고 가동 중 원전은 유지하되 수명 연장은 하지 않는다’는 구체적인 감원전 방침을 밝혔다.

이번 대선에서는 “원자력발전소 문제는 전기 공급의 필요성과 위험성이 동시에 존재해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선택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상황에 따라서 필요한 만큼 안정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말했다. AI 중심 사회에서 에너지 사용량이 크게 늘어난 만큼 신규 건설과 수명 연장에 대한 명확한 제한은 빠졌고, 필요시 활용 가능성을 열어둔 절충적 태도로 변화했다. 기존 탈원전 기조에서 벗어난 절충형 노선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자신이 과거 제시했던 ‘감원전’, 윤석열 정부의 ‘친원전’과도 구별된다. 단, 원전 정책의 구체성 부족은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 우려를 사고 있다.

성장의 마지막 카드는 제조업 기반 재건이다. 그는 “수출과 내수 고리가 끊긴 지 오래”라는 인식 아래 국내 투자·고용·임금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 복원이 필요하다고 본다. 과거 한국 경제는 원화 약세를 발판 삼아 수출 회복→내수 확장으로 불황을 돌파했지만 최근에는 수출 호조에도 국내 재투자는 줄고 해외 공장 이전만 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해법으로는 ‘한국형 마더팩토리’ 전략과 산업의 재구조화를 동시에 제시했다. 철강은 포항, 자동차는 울산처럼 지역 거점 중심의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되, 신산업 또는 첨단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재구조화를 꾀한다는 계획이다.

대표적 지역 특화 공약이 광주광역시의 AI 프로젝트, 부울경(부산·울산·경남) 메가시티의 해양 수도 프로젝트다. 그는 해양수산부를 부산으로 이전해 부울경을 대한민국 해양 수도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부산은 최근 ‘노인과 바다’라는 오명이 붙을 만큼 성장엔진이 꺼져가는 지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해운·물류 관련 공공기관 이전을 추진하고 해사 전문법원도 신설해 해양강국의 기반을 탄탄히 다지겠다”고 했다. 신성장으로는 북극항로를 제시했다. 이 후보는 “동남권 발전의 발판이 될 북극항로도 면밀히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먹사니즘 → 잘사니즘
저성장·경쟁 사회의 NEXT
이 후보가 지난 제20대 대선에서 전면에 내세웠던 기본소득은 이번 대선 국면에서 다소 후퇴한 듯 보인다. 그러나 그의 철학은 변하지 않았다. 세수 펑크 등 재정 여건 악화에 따라 정책 추진의 우선순위가 조정됐을 뿐이다. 회복과 성장이란 선결 조건이 해결되면 그의 최종 과제는 보편적 기본사회다.

AI와 같은 신문명이 초래할 사회적 위기에 대비하기 위하여 주거·금융·교육·의료 등 기본적 삶의 영역을 공동체가 함께 책임지는 ‘보편적 기본사회’로 대응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는 “지금까지의 사회제도는 모두가 일할 수 있었지만 기술이 생산의 주가 되는 시대에는 모두가 일할 기회를 갖기 어렵다”며 “산업화 30년, 민주화 30년을 넘어 기본사회 30년을 준비할 때”라고 주장했다.

이번 대선에서 등장한 용어는 ‘잘사니즘’이다. 이 후보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먹사니즘’을 포함해 모두가 함께 잘사는 ‘잘사니즘’을 새로운 비전으로 제시하고 싶다”고 말했다.
‘의료대란·밸류업·자영업 위기’ 미완의 숙제미완의 숙제로 남겨진 의료대란은 차기 정부가 넘겨받을 최대 난제 중 하나다. 이재명 후보는 의대 정원 확대 여부는 모든 이해당사자가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로 결정하되, 공공의대를 설립해 공공·필수·지역 의료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구체적 증원 규모는 언급하지 않았고, 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에 판단을 맡겨 유연한 타협안을 도출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는 “AI와 첨단과학기술 발달에 따른 시대 변화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가 제시한 공공의대는 의료 사관학교 모델로 기존 의사들과 면허 체계를 달리하는 방식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다가 무산된 정책의 변형·보완판으로 해석된다.
자료=이재명 공식 블로그

1400만 투자자가 달린 주식시장도 숙제다. 이 후보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4대 요인으로 경제정책 부재, 불공정한 시장, 지배구조 남용, 안보 불안을 꼽았다.

그는 이 모든 원인은 정부 정책으로 해소 가능하다고 주장하며 상법 개정을 반드시 하겠다고 공언했다. 핵심은 이사회의 충실의무 조항 개정이다. 상법에서 규정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넓혀 이사가 주주의 이익을 고려하도록 명시적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주식시장의 주가순자산비율(PBR) 저평가 기업을 반드시 정리하겠다는 강경 입장도 전했다. 이 후보는 “비정상적 요소만 대대적으로 걷어내도 (코스피) 3000은 넘길 수 있고 거기에 몇 가지 (대책을) 추가하면 코스피 5000은 넘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자영업 비중이 높은 한국 경제에 불황은 치명적이다. 이 후보는 570만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무대인 골목상권을 살리는 데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대표 수단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지역화폐’다. 그는 지역화폐 예산을 대폭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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