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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선 외벽에 ‘기체층’ 형성 기술 개발
외부 온도 침투 막는 패딩 점퍼 원리 이용
재진입 때 ‘1500도’ 초고온 방어 가능
현재는 세라믹 타일 등으로 열기 버텨
실용화하면 민항기처럼 몇 시간 내 재이륙
우주선이 지구 대기권으로 재진입하는 모습을 담은 개념도. 공기와의 마찰로 우주선 외벽이 뜨겁게 가열되고 있다. 유럽우주국(ESA) 제공


#“휴스턴! 휴스턴! 이곳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앞으로 예상되는 결과는 둘 중 하나다. 멀쩡히 지상으로 내려가 모험담을 들려주거나 10분 안에 불타 죽거나….”

지구 대기권으로 재진입하는 우주선 안에서 미국 우주비행사이며 공학자인 라이언 스톤(샌드라 불럭 분) 박사가 미 항공우주국(NASA) 지상 기지를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 무전을 보낸다. 공포와 희망이 교차하는 그의 말에는 이유가 있다.

고도 약 550㎞에서 허블우주망원경을 수리하던 그는 돌연 쏟아진 우주 쓰레기와 충돌하며 동료를 모두 잃는다. 자신이 탑승했던 우주선은 대파된다. 그는 우주를 떠돌던 중국 우주선에 가까스로 탑승한다. 그리고 이제 막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마지막 기동, 즉 지구 대기권 재진입을 시작한 것이다. 미국 영화 <그래비티> 엔딩 장면이다.

스톤 박사는 결국 살아남는다. 하지만 그는 지구 착륙 직전까지도 뜨겁게 달궈진 우주선 안에서 최후를 맞을까봐 두려워했다. 우주 쓰레기에 맞아 내열성 외피가 손상됐을 가능성이 있는 중국 우주선이 대기권 재진입 때 발생하는 공기와의 마찰열을 버티지 못하고 타버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우주선 온도가 대기권 재진입 때 치솟는 것은 영화적 허구가 아니다. 현실에서도 그렇다. 재진입 도중 동체 온도는 1500도에 달한다. 알루미늄이나 구리를 쉽게 녹여버릴 정도다. 대기권과의 마찰열은 인류가 처음 우주에 나갔을 때부터 난제였다. 우주선과 우주비행사의 안녕이 좌지우지되는 일이었지만, 발생하는 열기를 피할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이 문제에 근본적으로 대응할 기술이 등장했다.

기체층 만들어 ‘초고온 방어’

미국 텍사스 A&M대 연구진은 지난달 말 공식 자료를 통해 지구 대기권으로 재진입하는 우주선을 보호하기 위해 냉각용 기체를 동체 주변에 고루 분사하는 기술을 고안했다고 밝혔다. 이 기술은 미 공군에서 지원금 170만달러(약 23억6000만원)를 받아 만들어졌다.

연구진은 “(겨울철 외출용 의복인) 패딩 점퍼의 원리를 이용했다”고 설명했다. 패딩 점퍼 안에는 솜이나 오리털, 거위털이 꽉 차 있다. 이를 충전재라고 부른다. 충전재 사이에는 공기로 이뤄진 두꺼운 기체층이 형성된다. 기체층은 패딩 점퍼 착용자의 체온과 점퍼 바깥의 기온을 차단한다. 기체의 열전도율이 낮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패딩 점퍼를 입으면 한겨울에도 거뜬히 외출할 수 있는 이유다.

연구진은 미세한 구멍이 다수 뚫린 우주선 외피를 고안했다. 그리고 구멍에서 기체가 안개처럼 고르게 분사되도록 했다. 우주선 동체에 패딩 점퍼를 입힌 효과를 낸 셈이다. 일정 두께의 기체층이 우주선 동체를 고루 감싸면서 지구 재진입 시 나타나는 1500도 고온이 우주선 동체에 직접 닿지 않도록 했다. 솜이 채워진 진짜 패딩 점퍼는 바깥의 찬 기운을 막지만, 우주선이 입는 기체 형태의 패딩 점퍼는 뜨거운 기운을 막는 데 차이점이 있다.

이 기술을 쓰면 우주선 손상을 근본적으로 피하고 우주비행사의 안전 수준을 높일 수 있다. 다만 연구진은 어떤 성질의 기체를 분사하는지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민항기처럼 수시간 만에 재이륙

새로운 우주선 외피 시제품은 텍사스 A&M대 연구진과 협력 중인 미국 기업 캐노피 에어로스페이스가 3차원(D) 프린터를 이용해 제작했다. 소재는 탄화규소다. 탄화규소 소재는 냉각용 기체가 잘 분사될 만큼 표면에 구멍이 많고, 재진입 때 발생하는 압력 변화도 버틸 정도로 튼튼하다. 텍사스 A&M대 연구진은 “곧 성능 실험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기술은 인류의 우주 진출이 시작된 뒤 약 70년 동안 고착된 개념, 즉 대기권 재진입 때 우주선 동체에 생기는 열기는 ‘그저 견뎌내야 하는 존재’라는 생각에 도전하는 것이다.

현재 우주선들은 세라믹 타일 등 고온을 잘 버티는 소재를 동체 겉면에 빽빽이 붙인다. 튼튼하다고 해도 열기와 직접 접촉하기 때문에 대기권을 돌파해 귀환하고 나면 크고 작은 손상이 불가피하다. 이런 우주선을 재사용하려면 정비를 꼼꼼히 해야 한다. 그러자면 다음 이륙까지는 짧아도 수일, 길게는 수개월이 걸린다.

반면 새 기술은 우주선에 가해지는 열기를 견디는 것이 아니라 피하는 데 초점이 있기 때문에 동체 손상 자체가 없거나 적다. 연구진은 “우주선이 지상에 내린 뒤 몇 시간 만에 다시 이륙할 수 있을 것”이라며 “현재 민간 항공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주기로 운항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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