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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오후 3시17분쯤 서울 강남구 역삼동 19층 오피스텔 건물 옥상에서 한 여성이 투신 소동을 벌이다 약 2시간 만에 구조됐다. 여성의 팔을 잡은 파란 상의의 남성이 경찰특공대 신모 경위(38), 남색 상의의 남성이 경찰특공대 최모 경위(39)다. 사진 독자

" 아, 살릴 수 있겠다. "
지난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19층 높이 빌딩 옥상 난간에 한 여성이 서 있었다. 투신하겠다며 약 2시간 동안 건물의 가장 높은 끝에 서 있던 여성의 팔을 마침내 잡은 순간, 경찰청 경찰특공대 전술1팀장 최모(39)경위는 참았던 숨을 겨우 내쉴 수 있었다.

이날 오후 1시35분쯤부터 건물 옥상에 서 있던 요구조자는 협상 경찰의 끈질긴 대화 시도에도 난간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3시17분 경찰특공대가 출동한 지 30분도 안 돼 구조됐다. 중앙일보가 당시 구조에 나섰던 최 경위와 신모(38) 경위, 김모(32) 경위에게 당시 상황을 들었다. 모두 특공대 경력 6년 차 이상의 베테랑 전술팀장이다. 업무 특성상 신분을 노출할 수 없어 익명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약 2시간 대치…“무조건 살려야겠다는 생각뿐”

이들이 구조 작업을 펼친 영상은 소셜네크워크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됐다. 요구조자의 팔을 잡았던 최 경위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결심한 상황이었던 만큼 자극하지 않고 최대한 안전·신속하게 구조하는 것이 관건이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상체에 널널한 평상복을 입고 옷 아래에 구조 장비를 숨겼다.

하지만 오피스텔 구조상 구조가 쉽지 않았다. 여성이 서 있던 난간은 옥상 바닥으로부터 약 4m 높이였다. 경찰이 옥상 문을 열고 들어갈 경우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래층에서 옥상 쪽으로 구조하러 올라가기엔 레펠(주로 높은 곳에서 하강할 때 쓰는 줄 달린 장비) 등을 활용하기 어려웠다.

김경진 기자

시간이 촉박했다. 특공대는 여성이 난간에 선지 2시간이 넘어가면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전술3팀장 신 경위는 “시선이 분산된 사이에 난간 바로 아래에 사다리를 대고 직접 올라가 데려오는 것밖엔 방법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같은 건물 반대편 옥상에서 한차례 예행연습을 거쳐 시간과 거리도 계산했다.

오후 3시15분쯤 여성의 시선이 도로 쪽을 향했을 때, 세 경위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옥상 문을 열고 난간이 있는 지점까지 약 20m 거리를 달려갔다. 그리고 재빠르게 사다리를 설치했다. 최 경위가 사다리 꼭대기에 올라가 고개를 드는 순간 요구조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요구조자는 난간에서 떨어지려 했다.

최 경위는 재빨리 손을 뻗어 머리카락을 잡았다. 이어 신 경위가 최 경위 뒤에 붙어 요구조자의 한쪽 팔을 끌어올렸다. 마지막으로 김 경위가 요구조자의 몸체를 잡아 구조 대원에 인계했다. 이 모든 게 1분 안팎에 벌어진 일이었다. 최 경위는 “그때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무조건 살려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했다.

세 팀장 모두 허리에 하네스(줄에 몸을 고정하기 위한 장치)를 차고 있었는데 연결된 안전줄을 10여명의 대원이 뒤에서 잡고 버텨준 덕분에 무사히 구할 수 있었다고 했다. 김 경위는 “5분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다”고 기억했다.

서울 서초구 경찰특공대 훈련장서 특공대원들이 레펠활용 건물진입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 서울시경찰청



“구조 뒤 ‘감사하다’던 고등학생 기억에 남아”
경찰특공대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사람이나 재난 희생자를 구조하고, 테러 등 도심 내 위험 요소에 대응하는 경찰청 예하 특수부대다. 경찰 내부에선 ‘최후의 보루’로 통한다. 이들은 수중 구조를 위한 스쿠버 훈련을 하고, 재개발 지역 아파트 등에서 실전 연습을 하는 등 다양한 상황을 가정해 훈련한다.

2016년부터 경찰특공대에서 일한 신 경위는 “1년에 적어도 3~4번은 자살 시도자를 구하기 위해 출동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 경위는 지난해 서초구에서 벌어진 자살 기도 현장에서 한 고등학생을 살리기도 했다. 그는 “구조 후 나쁜 생각하지 않아줘서 고맙다고 대원들과 학생의 등을 토닥여줬는데 그 친구가 ‘감사합니다’라고 한마디 해준 것이 울컥했다. 내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이들은 여태 살아준 수많은 구조자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 우리는 늘 살리기 위해 출동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어떻게든 구해드릴테니, 저희가 갈 때까지 삶을 포기하지 말고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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