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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멘터리 브랜드에도 걸음걸이가 있다고 하죠. 이미지와 로고로 구성된 어떤 브랜드가 사람들에게 각인되기까지, 브랜드는 치열하게 ‘자기다움’을 직조합니다. 덕분에 브랜드는 선택하는 것만으로 취향이나 개성을 표현하고, 욕망을 반영하며, 가치관을 담을 수 있는 기호가 됐죠. 비크닉이 오늘날 중요한 소비 기호가 된 브랜드를 탐구합니다.
결혼의 계절, 봄입니다. 주말이면 이곳저곳에서 예식이 열리고, 사람들은 누군가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러 나서죠. 시대가 아무리 빠르게 바뀌고 디지털이 대세라 해도 결혼식만큼은 여전히 아날로그의 온기를 간직하고 있어요. 포옹과 악수, 그리고 손으로 직접 건네는 한장의 카드, 종이 청첩장도 있죠.
바른컴퍼니가 내놓은 2025년도 신상 청첩장 디자인. 바른컴퍼니
요즘엔 모바일 청첩장이 흔하다지만, 종이 청첩장은 여전히 결혼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단순한 초대장을 넘어 두 사람이 함께 걸어온 시간과 앞으로 함께 그려갈 삶을 담아내는 선언서 같은 존재죠.

이 청첩장을 50년 넘게 만들어온 회사가 있습니다. 국내 시장 점유율 60% 이상, 결혼 커플 3쌍 중 2쌍이 선택한다는 ‘바른컴퍼니’입니다. 수십 년간 예비부부의 선택을 받은 이 회사의 핵심 경쟁력은 무엇일까요. 바른컴퍼니의 55년 여정과 청첩장 트렌드 변화를 살펴보기 위해 지난달 28일 서울 동빙고동 사무실을 찾아 박정식 바른컴퍼니 대표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출시 첫해 130만장 판매…농부 출신 디자이너의 반란 바른컴퍼니의 시작은 1970년, 서울 을지로 풍전상가 1층에 있던 금속판 조각 사무실이었습니다. ‘바른손’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이곳의 창립자 박영춘(86) 회장은 농업대학을 나와 농사짓던 청년이었지만, 상경한 뒤 인쇄에 들어가는 글자나 문양을 금속으로 조각하는 일을 했죠. 타고난 손재주로 업계에 이름을 날렸던 그는 ‘한국화장품’과 ‘태평양화학’ 같은 당대 최고 화장품 기업에서 제작 의뢰를 받기도 했어요.
1970~80년대 바른손의 청첩장 카드 모음. 바른컴퍼니
거래처가 의뢰한 작업만 하던 그가 1970년에 처음 제작한 제품은 ‘엠보싱 카드’였습니다. 당시엔 가족·지인들과 연하장을 주고받는 게 연말연시 대표적인 문화 현상이었죠. ‘디자인’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대에 박 회장은 종이 위에 글씨와 그림을 입체적으로 새긴 방식으로 새로운 디자인 카드를 만들어냈습니다. 일일이 손으로 눌러야 하는 수고로움에도 정교한 작업을 위해 수작업을 했죠. 사업 첫해 130만장의 연하장이 팔린 이유입니다. 이때 바른손은 ‘카드를 만든다’는 개념을 ‘카드를 디자인한다’로 바꿔놓습니다. 이후 크리스마스 카드·청첩장·포장지로 사업 영역을 넓히며 바른손은 을지로 인쇄 업계를 뒤흔들었죠.
1991년도 청첩장 내지. 서혜빈 기자
“21세기 아이들은 디자인을 먹고 삽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2001년부터 카드 사업부터 마케팅·디자인팀까지 두루 이끌어온 박 대표가 꼽는 바른손의 경쟁력은 ‘디자인’입니다. 카드 사업을 시작으로 1980년대 문구 사업에 나선 바른손은 제조 시설 같은 하드웨어 기반 없이 캐릭터 같은 디자인 경쟁력만으로도 최고의 제조 기업이 될 수 있다고 믿었어요. 이때 일본 산리오 캐릭터에 영감을 받아 토종 캐릭터 ‘금다래 신머루’를 탄생시켰죠. 전통 의상을 입은 한국형 캐릭터는 당시 디즈니나 헬로키티 등 외국 캐릭터에 의존하던 시장에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바른손 캐릭터로 디자인한 필통·노트·다이어리는 출시하자마자 20만 개 넘게 팔렸고요.
1990년대 바른손이 내놓은 광고 포스터. 바른컴퍼니
디자인에 대한 투자는 전례 없을 만큼 과감했습니다.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생소하던 시절, 바른손은 120명이 넘는 디자이너를 고용했습니다. 해외 시장 조사를 위한 출장 지원 등 디자이너의 성장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아 당대 디자이너들에게 꿈의 직장으로도 여겨졌죠. 게다가 “21세기 아이들은 디자인을 먹고 삽니다”라는 카피를 내건 1990년대 초반 바른손의 광고는 수십 년을 앞선 혁신적인 문구였습니다. ‘디자인이 핵심 경영 요소’라고 강조했던 박 회장의 말처럼, 바른손에서 디자인은 그저 부가 요소가 아닌 회사를 움직이는 엔진이었습니다.

국내 유일 청첩장 디자인연구소…국내외 트렌드를 이끌다 국가 경제가 요동치는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며 바른손은 문구 사업 부문을 정리하고, 카드 사업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결국 카드가 바른손의 본질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여러 카드 중에서 청첩장에 집중한 이유는 연하장·크리스마스 카드를 주고받는 문화가 점차 사라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박 회장은 직접 디자인실을 만들어 총괄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현재 국내 유일 ‘청첩장 디자인연구소’ 개설로 이어집니다.

연구소에 속한 10여 명의 디자이너는 국내 청첩장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웨딩 관련 콘텐트 시장 조사는 물론 실제 결혼식 현장 조사를 통해 소비자 취향을 분석한 뒤 매년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여요. 2000년 이전에는 새하얀 종이에 원앙 그림을 새기는 디자인이 규칙처럼 여겨졌어요. 3~4가지 정도의 색깔만 쓰일 정도로 단조로웠죠. 지금처럼 다양한 색감의 청첩장이 등장한 건 2000년대 이후입니다. 분홍·파란색 청첩장이 인기를 끌었고, 레이스 패턴·펄 인쇄부터 최근 트렌드인 사진 삽입형 디자인으로 발전했어요. 한국의 청첩장 디자인 트렌드는 모두 바른컴퍼니의 연구소에서 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010년대 청첩장 디자인. 서혜빈 기자
바른컴퍼니는 한국 청첩장 문화뿐만 아니라 글로벌 청첩장 디자인 트렌드도 이끌고 있습니다. 붉은 색지에 전통 문양을 새긴 것이 전부였던 중국 청첩장 시장에 흰색과 파스텔톤의 서구식 디자인을 대중화시켰고, 일본에선 바른컴퍼니가 디자인한 카드가 수년간 판매 1위를 지키기도 했죠. 2016년엔 미국 문구 박람회에서 바른컴퍼니의 청첩장이 디자인 수상작으로 선정되기도 했고요.
일본에서 수 년간 판매 1위를 기록한 청첩장 디자인. 바른컴퍼니
국내 최초 디지털 청첩장 등장으로 맞춤형 카드 제작 2000년대 초, 바른컴퍼니는 국내 최초로 청첩장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선보이며 또 한 번 시장을 선도합니다. 수십 권의 샘플 책을 넘기고, 수차례 인쇄소를 오가던 번거로움을 온라인 시스템 하나로 해결한 거죠. 이때부터 예비부부는 디자인을 취향에 맞게 직접 고르고, 인쇄 방식·종이 질감·봉투 스타일까지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게 됩니다. 청첩장에 정체성을 담을 수 있게 된 거죠.
모바일 청첩장. 바른컴퍼니
그리고 2010년대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모바일 청첩장이 대중화되기 시작합니다. 바른컴퍼니는 이미 2000년대 초 플래시 e-카드 서비스를 운영하며 쌓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이 흐름에 합류할 수 있었습니다. ‘당근송’ 등 플래시 애니메이션 콘텐트로 100만 명 이상의 회원을 끌어모았던 경험은 청첩장의 디지털 전환에 밑거름이 됐죠.

“청첩장은 부부가 꿈꾸는 삶을 담은 서사” 지금 바른컴퍼니는 종이와 모바일을 넘나드는 하이브리드 청첩장은 물론, 인공지능 기반 디자인, 혼수·답례품을 아우르는 결혼 통합 플랫폼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시대에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에 적응한 덕분에 반세기 넘는 시간 예비부부들의 사랑을 받아온 것 같아요. 그러나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바른컴퍼니가 믿는 본질은 하나라고 합니다. 박 대표는 “청첩장은 소모품이 아니라 두 사람의 지난 인생과 앞으로 꿈꾸는 삶을 담은 서사이기 때문에 청첩장의 가치는 영원할 것”이라고 했죠.
1986년도 11월에 내놓은 바른손의 신문 광고. 바른컴퍼니
기술은 바뀌고 형태는 달라져도 사람의 감정은 완전히 디지털화되지 않을 거예요. 바른컴퍼니가 반세기 넘게 이 업을 지속해온 이유는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면서도 사람의 감성을 잃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디자인을 경영철학으로 삼고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끊임없이 진화해온 바른컴퍼니, 그들의 다음 청첩장엔 또 어떤 이야기가 담길지 기대해 봅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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