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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선출 다음날 바티칸서 언론 간담회
교황 비밀 투표 콘클라베 에피소드 전해
유흥식(74) 라자로 추기경이 9일 바티칸 성직자부 사무실에서 한국 언론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바티칸=신은별 특파원


"추기경 선거인단 133명 중 3분의 2(89표)를 득표해야 교황이 선출되잖아요. 89표를 넘긴 걸로 확인되자마자 박수치고 야단이 났어요."

유흥식(74) 라자로 추기경이 콘클라베(교황 선출을 위한 추기경단 비밀 회의)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제267대 교황으로 미국 시카고 출신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69) 추기경의 선출이 확정되자마자 투표에 참가한 추기경 모두가 한 마음으로 기뻐했다는 것이다. "영화 콘클라베에서는 교황 선출 과정이 대단한 투쟁처럼 묘사되고 정치적 야합이 이뤄지는 것처럼 그려지는데, 굉장히 형제적이고 친교적이며 아름답게 진행됐어요."

이러한 발언은 교황 선출 다음날인 9일(현지시간) 바티칸 성직자부 사무실에서 진행한 한국 취재진과의 간담회에서 나왔다. 콘클라베는 외부와의 접촉이 완전히 차단된 채 진행되고 여기에 참석한 추기경들은 콘클라베 기간 중 발생한 일에 대해 외부로 발설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기 때문에 투표 결과 등과 관련된 구체적인 언급을 할 수는 없다. 다만 콘클라베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큰 만큼 일부나마 분위기를 전하고 싶었다는 게 유 추기경의 얘기다.

유 추기경은 콘클라베 종료 후 레오 14세가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연설할 당시 무거운 표정의 교황과 달리 추기경들이 환한 웃음을 보여 화제가 된 데 대해서도 이렇게 설명했다. "(성당 앞에 새 교황을 보기 위한) 인파가 모여있고 함성이 대단했어요. 그 모습을 보니 신나지 않겠어요?"

레오 14세는 콘클라베 둘째 날 선출이 확정됐다. 투표 횟수로는 네 번 만에 선출을 확정 지었다.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추기경들의 마음이 한데 모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유 추기경은 투표 결과를 밝힐 수는 없다면서도 첫 투표부터 마지막 투표까지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지난달 21일) 이후 추기경들은 총회 등을 통해 '오늘의 세상' '오늘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해왔어요. '누구를 뽑자'는 이야기를 (드러내놓고) 하지는 않았지만 추기경 저마다 마음 속에는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는 생각을 품은 거죠. 첫 투표에서 몇 분이 두드러지게 표를 얻었고, 두 번째 투표에서 더 좁혀지고, 세 번째 투표에서 확실히 더 좁혀졌어요. 네 번째 투표에서는 레오 14세에 확 쏠렸어요. 확 쏠리는 게 제일 좋죠."

유흥식 추기경은 콘클라베 당시 투표권이 있는 추기경 133명의 이름이 적힌 종이가 추기경들에게 배포됐다면서 이를 기자들에게 공개했다. 바티칸=신은별 특파원


그는 콘클라베 중간중간 일어났던 에피소드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콘클라베가 시작됐는데 누군가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어요. 그래서 조사하니 유심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추기경들이 한바탕 웃었습니다. 누구도 성질을 내진 않았아요." 투표에 참여하는 추기경들은 휴대폰을 포함한 전자기기를 교황 선출 완료 때까지 일체 사용할 수 없다. 아찔한 순간이었지만 추기경들은 이를 유쾌하게 넘겼다는 것이다. 유 추기경은 콘클라베 전 추기경 전원의 프로필이 담긴 명부가 추기경들에게 배포됐고 이를 근거로 다른 추기경의 생애를 파악할 수 있었다면서 "서로 모르는 채 투표가 진행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레오 14세가 '최초의 미국인 출신 교황'이라는 데 관심이 쏠린 데 대해서 유 추기경은 "우리는 '미국인'을 뽑은 게 아니라 '선교자'를 뽑은 것이다"고 말했다. "물론 그가 미국인이기는 하지만 추기경들이 국적을 보고 투표를 하는 건 아닙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인 교황의 탄생을 크게 환영한 데 대해서도 유 추기경은 "한 번 봐야 한다"고 말했다. "레오 14세는 남미에서도 가난한 페루, 거기서도 빈민가에서 사목했어요. 그래서 얼마나 많은 이주민들이 고통을 받는지를 잘 알고 있거든요. 트럼프 대통령은 (이주민을 막고자) 취임 직후 벽을 쌓았어요." 교황의 이주민 인권에 대한 관심이 각별하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강경한 이민 정책을 펴는 트럼프 대통령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얼마든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바티칸 안팎에서 레오 14세를 '중도적 성향'으로 분류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유 추기경은 "어떤 것이 개혁이고, 어떤 것이 보수냐"고 되물었다. 개별 사안에 따라 판단은 다를 수 있는데 이를 근거로 개혁 또는 보수로 획일화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저 하느님 중심으로, 복음 중심으로 가는 거죠."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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