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전문적이지 않은 직업이 있을까요? 평범하고도 특별한 우리 주변의 직장·일·노동. 그에 담긴 가치, 기쁨과 슬픔을 전합니다.

송나단 청년일꾼 대표가 지난달 26일 서울 은평구 불광동 한 빌라에서 폐기물을 수거하고 있다. 송 대표 제공

"과일만 쌓아놓고 파는 가게 하나를 열려고 해도, 보증금이며 권리금 등 최소 1억 원은 있어야 하더라고요. 그런데 폐기물 일은 제 몸과 1,000만 원짜리 중고 트럭 하나만 있으면, 일단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송나단(33)씨는 3년 차 폐기물수거업체(청년일꾼)를 운영하고 있는 공동대표다. 스물아홉이던 지난 2022년 11월 친구 두 명과 함께 회사를 차렸다. 그는 안 해 본 일이 없는 청년이었다. 새벽 다섯 시 출근해서 새벽 한 시 퇴근했던 드라마FD, 서울 동대문 원단 업체 직원, 홍대 클럽·편의점 아르바이트, 보험 영업직, 과일가게 판매직 등···. 그러다 막노동 아르바이트에서 폐기물 수거 현장 일을 경험하게 됐다. 적은 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고, '일하는 만큼' 벌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집 정리 뒤 찾아낸 고인의 앨범

지난 3일 오전 9시 서울 은평구 불광동 한 빌라 반지하. 문을 열자 악취가 풍겨나왔다. 물기를 머금은 무거운 장롱을 들어내자 바퀴벌레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주방 냄비 속엔 먹다 남은 음식에 핀 곰팡이가 가득했다.

집 주인은 홀로 살던 여성 어르신이었는데, 요양원에 입소했다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열두 평 작은 집이었지만, 어르신이 오랜 세월 아끼고 쟁였던 담금주, 소금, 장아찌 등 묵은 짐은 1톤짜리 트럭 세 차 분량에 달했다. 송씨는 창문으로 들어낸 세탁기며 장롱을 계단 아래 큰길까지 등에 지고 날랐다.

의뢰인은 어르신의 50대 딸이었다. 지난 1월 갑작스럽게 요양원에 입소한 어머니의 짐을 치우지 못했다고 했다. 자개농 안에는 어머니가 아껴 입던 꽃무늬 옷과 붉은색 외투가 고이 들어있었다. 딸은 송씨가 짐 속에서 찾아 건넨, 버려질 뻔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이 담긴 앨범을 받고 눈물을 글썽였다. "하나하나 물건들을 만지다 보면 어머니 생각이 날 것 같아, 치울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이렇게 깨끗이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송나단 청년일꾼 대표가 폐기물 수거현장에서 수거 작업을 하고 있다. 송 대표 제공

감사의 말과 모욕의 말

이처럼, 송씨의 가장 큰 보람은 일을 마친 뒤 개운해진 의뢰인의 얼굴을 보는 일이다. 그는 최근 담당했던 강원 정선의 한 임대 아파트를 떠올렸다. 자녀 의뢰로 간 집에는 고인이 평소 쓰던 안전모, 작업화 등 고단한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어쩌다 고인과 가족들의 사진이 나올 때면, 버리지 않고 따로 챙겨놓습니다. 정리가 끝난 후, 고맙다고 말하는 의뢰인들의 말이 큰 힘이 됩니다. "

늘 감사 인사만 받는 것은 아니다. 그는 한 의뢰인이 쏟아낸 "배운 것이 없으니 저런 일 한다"는 말이 귓가에 생생하다고 했다.

작업하는 내내 "이거 치워라", "저것 치워라"라며 반말로 일을 시키던 의뢰인이 폐기물을 차에 모두 싣고 나선 "내가 물건을 주는데 왜 돈까지 줘야 하냐"면서 비용을 줄 수 없다고 하며 실랑이를 벌였다. 송씨는 "폐기물을 버리는 데 딱지 붙이지 않냐, 저희도 쓰레기 버리는 데 돈이 든다" "이삿짐센터도 짐을 옮겨주기만 하는데도 비용이 들지 않냐"는 등 설득했지만 이야기는 통하지 않았다. 의뢰인은 직업적 비하와 모욕의 말을 뱉었고, 결국 송 대표는 오전 나절 일찍 출근해 트럭 가득 실어 올렸던 폐기물을 다시 집 안에 넣어두고 돌아섰다.

드물게 유품 정리 현장에선 '돈이나 귀중품을 훔쳐갔다'고 하는 의뢰인도 나온다.

일당 5만 원만 받고 일 배워

송씨는 폐기물을 폐기물 업체에 넘기고, 동이나 모터 같은 값나가는 부품을 떼어내 고물상에 팔아 수익을 낸다. 봄가을은 이사철, 겨울엔 돌아가신 분들의 유품을 정리해달라는 의뢰가 많고 장마철엔 일감이 줄어든다. '전국 각지로 출근'하는 덕분에, 트럭 주행거리는 한 달이면 약 3,000㎞씩 쌓인다.

출근복은 작업화에 조끼, 마스크다. 비위가 상하거나 몸이 힘들지 않냐고 묻자 "요령이 생기니 할 만해졌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가 작업 현장을 기록하는 유튜브 채널에는 '키 큰 장롱을 쉽게 옮기는 법' 등 직접 체득한 노하우들이 올라온다.

처음부터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폐기물 수거업을 시작하고 싶었으나, 가르쳐주는 학원은 없었다. 수거하는 법부터 수익을 내는 법까지 현장에서 도제식으로 일을 배워야 했다. 송씨는 한 폐기물 수거업체에서 '일하면서 배우는 조건'으로 아르바이트 일당 13만 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일당 5만 원을 받으며 꼬박 일 년 반을 배웠다.

그러나 회사를 차리고도 처음 일 년 동안은 물건을 받아주는 곳이 없어, 폐기물 처리 업체와 고물상을 돌아다니며 얼굴도장만 찍어야 했다. 고정적으로 거래하는 고물상과 폐기물 처리업체가 생기면서 수익이 나기 시작했다.

과거 여러 일을 하면서 그냥 되는 일은 없다는 걸 안다. "과일가게는 아무 데나 하는 줄 알았는데, 가게를 열기 전 한 달 동안이나 그 자리에서 유동인구를 파악하는 점을 알게 됐습니다. 원단 영업을 하면서는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해야 하는 벽을 깰 수 있었고요."

송나단 청년일꾼 대표가 한 작업 현장에서 폐기물을 수거하고 있다. 송 대표 제공

좌충우돌 6전 7기는 현재 진행 중

송씨는 원래 항공 비파괴검사 엔지니어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야 적색과 녹색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적녹색약인 자신은 항공업계에서 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나 다시 수능을 보고 다른 대학에 들어가겠다고 부모님께 말하기엔 집안 사정이 여유롭지는 못했다.

또래들은 대학 졸업 후 취업이나 공무원 시험을 택할 때, 일찍 근로 현장에 뛰어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연 회사가 운영 3년 차가 되고, 다른 지역에 지점도 두 개나 냈지만 송 대표의 6전 7기는 아직 진행 중이다. 최근 많은 자영업자가 그렇듯이, 경기 악화로 일감이 줄며 직원 세 명을 내보내는 등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어서다. 그의 목표는 회사를 안정적으로 운영해 나가고, 규모를 키워 재활용품 수출 사업까지 해내는 일이다.

최근 취업난이 가중되며 20·30대 사이에선 도배, 타일 시공 등 '현장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는 진로를 고민 중인 청년들에게 이 같은 말을 남겼다.

"요즘 20·30대가 부모님 시대처럼 일한 만큼 돈을 버는 것은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현장직의 매력은 쉬는 날은 돈을 벌지 못하지만, 반면 일한 만큼 돈을 벌 수 있고 적지 않은 일급을 벌 수 있어요. 꼭 이 일이 아니라도, 시작을 가볍게 생각하고 뭐든 일단 한번 시작해보셨으면 합니다."

한국일보

원다라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