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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돌보는 남성성'을 향하여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젠더, 공간, 권력' 등을 쓴 안숙영 계명대 여성학과 교수가 격주로 글을 씁니다.

아이를 돌보는 남성.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3월 말에 한 도시에서 강의가 있었다. 핵심 주제는 '남성과 돌봄의 관계'였다. 강의에서 "'남자가 큰 꿈을 꿔야지···, 무슨 애 보는 일을 하느냐' 편견에 우는 보육교사"라는 제목의 기사를 소개했다. 2019년 4월 23일 한국일보가 '우리 시대의 마이너리티' 코너에서 다룬 것이다. 이 기사에 따르면, 제목 속의 말은 경기 지역의 민간 어린이집에서 교사로 일하는 한 남성 보육교사가 취업을 준비할 당시 어머니에게 들었던 말이었다고 한다.

남성과 돌봄의 관계



딸이 보육교사가 된다고 할 때 부모가 딸에게 "무슨 여자가 애들 콧물 닦고 밥 먹이는 일을 해?" "여자가 큰 꿈을 꿔야지, 넌 야망도 없니?"라고 말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아들이 보육교사가 된다고 할 때 "무슨 남자가 애들 콧물 닦고 밥 먹이는 일을 해?" "남자가 큰 꿈을 꿔야지, 넌 야망도 없니?"라고 말하는 경우는 여전히 비일비재하다. 아이를 기르는 일은 남자로서 마땅히 품어야 할 '큰 꿈'이나 '야망'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위의 기사는 당시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고, 이후 강의실에서 일과 젠더의 관계에 대해 다룰 때면 학생들과 이 기사를 함께 읽으며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갖곤 한다.

일과 직업의 세계에서 이른바 '여성의 일'과 '남성의 일' 간 구분이 과거보다 약해지며 '금녀의 벽'과 '금남의 벽'이 차츰 무너지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벽이 가장 견고하게 남아 있는 분야 중 하나가 어린 아이를 돌보고 기르는, 보육 부문이 아닐까 한다. 어쩌면 이런 젠더 불평등이 한국 사회 초저출생의 뿌리 깊은 원인의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아들을 낳은 여성'으로서의 어머니

1974년에 나온 산아제한 공익 광고.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가 적혀있지만, 1980년대 중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는 여전히 남아 선호 현상 탓에 '여아 선별 낙태'가 성행했다. 이 세대의 출생 성비는 113~116명으로 불균형이 극심하다. 그 여파로 2016년을 전후로 '2차 인구 절벽'이 발생했다는 분석이 많다. 국가기록원


아들을 아이나 보육이라는 단어와는 도저히 결합할 수 없다고 여기고, 큰 꿈이나 야망이라는 단어와 결합돼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단 그 어머니만의 문제일까?

물론 지금은 변화하고 있지만, 한국 사회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생명을 낳는다고 해서 누구나 어머니로 인정 받은 것은 아니었다. 남아 선호 사상으로 잘못 명명되고 있는 '여아 차별 편견'으로 인해 그 생명이 아들이었을 때만, 즉 '아들을 낳은 여성'이었을 때만 비로소 어머니로 인정 받을 수 있었다.

반면 그 생명이 딸이었을 때는 딸들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어머니로서 인정 받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수많은 여성이 아들을 낳을 때까지 출산을 계속하기도 했는데, 특히 1990년 국내에서는 셋째 아이의 출생 성비가 193.7명으로 여아 100명당 남아 193.7명이 태어나기도 했다.

딸이 아닌 아들을 낳아야만 어머니로 인정 받는 사회. 수많은 어머니들이 자신을 어머니로 만들어준 그 아들이 야망으로 가득 찬 큰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뤄 '어머니로서의 나'의 위치를 공고히 해 주길 기대하는 것은 어찌 보면 가부장제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특히 '무남독녀'(無男獨女)라는 표현은 이 가부장적 서사를 그대로 반영했다. 남자 형제 없이 혼자인 딸을 일컫는 이 표현은 아들이 생명으로 존재하지 않더라도 '무남'이라는 방식으로라도 일정하게 자리를 마련해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아들은 태어나지 않은 '부존재'의 경우조차 자리를 할당 받는다. 그럼으로써 원래 마땅히 있어야 하는 존재라고 우리에게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아직은 극소수에 불과한 남성 보육교사

2019년 4월 19일 광주 방림유치원 교사 임정섭씨가 교실에서 아이들과 수업에 한창인 모습. 1986년 광주시교육청 개청 이래 첫 공립유치원 남자 교사인 임씨는 당시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유치원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엄마의 역할과 아빠의 역할 모두를 해야 하는 만큼 교직사회에 남자 교사들이 더 많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정섭씨 제공


항상 딸 앞에 위치해야 하는 '귀하디 귀한' 아들이 이른바 '딸, 아내, 며느리 등을 비롯한 여성의 일'로 알려진 보육 현장에서 돌봄을 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자 할 때, 한국 사회는 아직 박수를 쳐 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이 분야에 종사하는 남성의 숫자가 극소수라는 점이 이를 잘 보여준다. 보건복지부에서 발간한 '2023년 보육 통계'에 따르면 2023년 12월 말 기준 어린이집 보육 교직원 총 30만2,800명 중 남성은 고작 9,643명으로 약 3.18%에 불과했다. 2022년에도 전체 31만1,996명 중 1만502명, 2021년에도 전체 32만1,116명 중 1만1,261명으로 남성 비율이 줄곧 3%대에 머물렀다.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도 젠더 격차에 따른 불균형은 유난히 심각하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2018년 발간한 세계여성가족 정책동향에 따르면,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 기준으로 당시 영유아 보육·교육 프로그램에 종사하는 남성 교사 비율은 주요국인 스웨덴, 독일, 일본, 스위스 등이 모두 5%를 넘지 못했다. 다만 한국은 이 역시 1% 미만으로 특히 낮았다. 한국 사회에서의 젠더 불균형이 유독 더 심각한 것이다.

아이를 돌보는 남성이 늘고 있기도 하다

남성 육아휴직. 게티이미지뱅크


흥미로운 지점은 '집 밖'에서의 보육·돌봄 영역에서는 남성의 참여가 낮은 반면, 적어도 '집 안'에서의 보육·돌봄에서는 남성의 참여가 차츰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월 23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 비율은 31.6%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30%를 넘었다. 전체 육아휴직 신청자 13만2,535명 중 남성이 4만1,829명으로, 2015년 남성 육아휴직자 수가 4,872명(5.6%)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용 비율이 6배 정도 늘었다. 약 10년의 세월을 지나며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물론 아이와 함께 유아차로 이동하는 사람은 아직도 젊은 엄마나 나이 든 할머니가 많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아파트 단지는 물론 거리나 지하철에서 유아차를 미는 젊은 아빠 또한 이제는 가끔 만날 수 있다. 아기띠를 이용해 아이를 가슴에 안고 이동하는 젊은 아빠의 모습 또한, 여전히 흔하진 않더라도 더는 낯선 풍경으로만 머물러 있지는 않다.

스웨덴에서 두 아이를 키운 경험을 김건씨가 '스웨덴 라떼파파'(2019)라는 책을 통해 소개했듯이, '21세기의 아버지들'이라 일컬어지는 스웨덴의 젊은 아빠들처럼 아이 양육에 함께 임하는 아버지들을 한국 사회에서도 앞으로는 더 자주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란다.

'돌보는 남성성'을 향하여



남성과 돌봄의 관계는 느리지만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집 밖에서의 돌봄에 대한 남성의 참여는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집 안에서의 돌봄 참여가 차츰 늘어나고 있는 점은 남성과 돌봄의 관계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의 변화로도 이어질 수 있다.

이런 변화가 집 밖에서의 돌봄에 대한 남성 참여를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희망한다. 왜냐하면 집 안과 집 밖에서 남성이 함께 아이를 돌볼 때, 돌봄에서의 젠더 불평등을 넘어선 평등한 세상이 비로소 우리를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호주의 사회학자 칼라 엘리엇의 '돌보는 남성성'(Caring Masculinities) 개념에 새롭게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 개념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지배에 대한 거부와 돌봄의 가치에 대한 수용이다. 이를 둘러싼 논의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그동안 여성의 일로만 여겨진 돌봄을 사회 구성원 모두의 일, 즉 남성을 포함해 누구나 함께해야 할 일로 바라보는 것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조안 C 트론토가 '돌봄 민주주의'(2024·개정판)에서 '사나이는 돌보지 않는다'는 전통적인 성별 구분을 넘어서서, 모두가 '함께 돌보는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다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실현해나가자고 제안하듯이 말이다.

안숙영 계명대 여성학과 교수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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