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아이들에게 인형이 30개나 필요하지는 않다. 3개면 충분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꺼낸 이 메시지가 미국 사회에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금빛 장식으로 꾸며진 백악관에서 생활하는 억만장자가 서민들에겐 자녀 장난감조차 줄이라고 요구하는 것은 ‘결핍을 경험해보지 못한 부자의 언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어쩌면 아이들이 30개 인형 대신 2개만 갖게 될 수도 있고, 그 인형 2개 마저 더 비싸질 수 있다”고 말했다. 4일 NBC 인터뷰에서도 “아이들에게 인형 30개는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3개면 충분하다”며 “연필도 250개가 필요하지 않다. 5개면 된다”고 덧붙였다. 같은 날 전용기 안에서는 “10세, 9세, 15세 소녀가 37개의 인형을 가질 필요는 없다. 2~5개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고 되풀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관세 부담이 소비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조짐이 뚜렷해지자 여론을 선제적으로 관리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바비 인형 제조사 마텔은 미국 내 일부 제품 가격 인상을 예고한 상태다. 전체 생산량의 약 40%를 중국에서 제조하고 있으며, 대중국 고율 관세로 인해 한 해 약 2억7000만 달러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트럼프 행정부의 메시지도 ‘희생’과 ‘전환기’라는 틀로 전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은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인형을 덜 받게 되어 속상한 아이들에게 너희는 부모보다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것이고, 너희 가족은 집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말하고 싶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 또한 4일 NBC에서 “지금은 전환기이며, 우리는 놀라운 결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과 참모진의 어조가 최근 몇 주 사이 눈에 띄게 바뀌었다”며, “단기적 고통을 장기 번영을 위한 ‘경제적 약’으로 포장하려는 전략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경제 전문가들은 이를 면피용 수사라며 비판한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수석을 지낸 더글러스 홀츠 이킨은 WP에 “불가피한 인플레이션과 실업률 상승 가능성 등 관세 여파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반응도 싸늘하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CNN 인터뷰에서 “트럼프 같은 부유층은 서민들이 아이 선물 하나 사기 위해 어떤 현실과 싸우는지 모른다”며 “이런 사람들이 서민에게 절약을 강요하는 것은 오만과 무지의 극치”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가상화폐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베센트 장관은 월가 출신의 억만장자다.
공화당 내에서도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정치 전문 매체 더힐에 따르면 케빈 크레이머 상원의원은 “노동자 계층은 백만장자식 시각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고, 랜드 폴 상원의원은 “인형 수를 대통령이 정할 순 없다”며 트럼프 대통령을 소설『1984』의 ‘빅브라더’에 비유했다. 공화당 전략가 휘트 에이어스 역시 “마리 앙투아네트의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는 말이 떠오른다”고 꼬집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인형 발언'이 정치적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의 경제정책에 대한 회의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며, “한 조사에서 그의 국정 수행 지지도는 42%로, 임기 초 기준으로는 이례적으로 낮은 수치"라고 분석했다. 이어 "특히 경제 정책에 대한 신뢰가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 백악관에 가장 큰 경고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