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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냥 뒷조사 전담팀
지난 2023년 경북 경산시에서 구조된 강아지 '팜이'의 모습. 동물자유연대 제공


‘혹시 다가가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공격성을 보이진 않을까?’ 경기 남양주시에 위치한 동물자유연대 ‘온센터’에서 만난 ‘팜이’(4세 추정, 혼종견)는 걱정될 만큼 한쪽 벽면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외려 같은 방을 쓰는 팜이의 룸메이트 ‘설이’가 뒷조사 전담팀을 향해 애교를 피우며 함께 놀자고 하는 통에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빼야 했습니다.

낯선 사람이 들어온 것에 긴장한 것인지는 몰라도, 팜이는 벽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인지 벽에 좀 더 가까이 붙었습니다. 팜이의 영역인 방석에서 좀처럼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날 낮 최고 기온은 33도. 좀처럼 가시지 않는 더위에도 팜이는 방석에만 꼭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동물자유연대 '온센터'에서 만난 강아지 '팜이'의 모습. 팜이는 룸메이트 '설이'(상단 왼쪽)의 활달한 성격과는 정 반대의 모습을 보였다. 동그람이 정진욱


‘과연 이 친구를 쓰다듬어줄 수는 있을까?’ 싶을 정도로 걱정됐습니다. 겁이 많은 탓에 섣불리 쓰다듬으려 하면 오히려 사람에 대한 안 좋은 기억만 남기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든 거죠. 그러나 팜이를 뒷조사 전담팀에게 소개한 구소희 활동가는 “충분히 가능하다”며 먼저 팜이에게 다가가 쓰다듬어주기 시작했습니다. 구 활동가의 부드러운 손길을 팜이는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방석에서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쓰다듬어주는 손길이 싫지 않은 듯 편안해 보였습니다.

아마 낯선 사람 손길이어도 괜찮을 거예요. 다만, 너무 빠르게 다가가지는 마시고, 천천히 손을 움직여주면 됩니다. 팜이가 크게 놀라지 않게 해 주세요.구소희, 동물자유연대 온센터 돌봄활동가

구 활동가의 설명에 따라 팜이에게 손을 조심스레 뻗어봤습니다. 놀랍게도 겁을 집어먹은 것으로 생각하던 팜이는 손길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룸메이트 설이처럼 사람에게 안기려 하지 않을 뿐, 팜이 역시 사람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까지는 없어 보였습니다. 그저 사람에게 어떻게 다가가는 것인지, 자신과 다른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를 아직 몰라 적응하는 단계인 듯했습니다.

“너를 기다린 3주”.. 팜이가 사람을 극도로 피한 이유는?

지난 2023년 1월, 경북 경산시의 한 회전교차로 한복판에 앉아 있는 강아지가 발견돼 구조 요청이 들어왔다. SBS 'TV동물농장' 캡처


지난 2023년 1월, 경북 경산시의 한 도로. 회전교차로 한가운데 잔디밭에서 우두커니 앉아 있는 강아지 한 마리가 발견됐습니다. 어디서 와서, 사라지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을 만큼 강아지에게 접근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구조 요청을 받고 현장에 온 동물자유연대 송지성 위기동물대응팀장도 쉽지 않은 구조 작업이 되리라고 직감했습니다.

회전교차로 안쪽에 있는 만큼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습니다. 섣불리 구조하려고 다가갔다가 강아지가 도망치기라도 하면 곧바로 차도인 만큼 2차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었으니까요. 송지성, 동물자유연대 위기동물대응팀장

결국 구조팀은 다른 방법을 찾아 나섰습니다. 강아지의 뒤를 쫓으며 이동 동선을 파악한 뒤, 그 근처에 먹이와 함께 포획틀을 설치해 자발적으로 들어오게 하는 방법이었죠. 보통 구조를 위해 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방법도 무위로 돌아갔습니다. 강아지는 포획틀에 들어서기 전 냄새만 조금 맡더니 포획틀 앞에서 뒤돌아서 가버리기 일쑤였습니다. 두 번, 세 번.. 포획은 연거푸 실패했습니다.

팜이는 구조 당시 사람을 매우 경계하며 영역 곳곳을 돌아다녔다. SBS 'TV동물농장' 캡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변수가 있었습니다. 바로 ‘길고양이 밥’. 주변에 길고양이를 돌보는 케어테이커들이 올려놓은 먹이가 이 강아지와 주변 유기견들의 먹거리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강아지 입장에서는 주변에 다른 먹이가 많으니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포획틀 안에 들어갈 이유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마지막 방법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통해 강아지를 포위해 구조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송 팀장은 “가급적이면 이 방법은 구조에서 사용하지 않는다”며 “구조에 성공하더라도 강아지에게 안 좋은 기억을 남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도리가 없을 경우에는 최대한의 방법으로 한번에 작전을 실시하는 조건으로 구조 작업에 돌입한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이 작전조차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인근 구석에서 낮잠을 자던 강아지가 인기척을 느끼고 도망가기 시작한 겁니다. 주변의 여러 사람들이 강아지의 퇴로 곳곳을 막아섰지만, 필사의 힘을 다해 도망치는 강아지를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다시 다른 곳으로 깊이 숨어든 강아지가 더 놀라지 않도록 구조팀은 잠시 철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주일에 한 번씩, 3박4일간 일정으로 구조팀은 구조 작업을 진행하는 대신 천천히 강아지 주변을 탐색했습니다.

그렇게 3주째 되던 순간, 강아지의 모습이 목격되었다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 제보 내용을 통해 송 팀장은 이 강아지가 왜 이렇게 사람의 손길을 필사적으로 피했는지 이해했다고 말했습니다.

구조팀은 약 3주만에 팜이가 새끼를 낳은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SBS 'TV동물농장' 캡처


홀몸이 아니었던 거예요. 우리가 구조 작업을 할 때, 새끼들을 품고 있었죠. 마침 저희에게 제보가 들어왔을 때 새끼를 낳고 한참 돌보는 중이었다고 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지금이 기회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송지성 동물자유연대 위기동물대응팀장

구조 작업은 착착 진행됐습니다. 팜이가 새끼들을 숨겨놓은 은신처를 파악한 뒤, 새끼들부터 먼저 구조해 포획틀 안에 넣어뒀습니다. 새끼들을 통해 팜이가 포획틀에 들어오게 하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구조가 마무리될 때까지 인근 지역 길고양이 케어테이커들에게 먹이 급여 자제를 요청한 만큼 팜이가 다른 곳에 눈이 팔릴 가능성도 없었습니다. 마침내 새끼들의 울음소리를 들은 팜이가 포획틀로 찾아왔고, 그렇게 3주간 직선 거리 250㎞에 달하는 서울과 경산을 오간 구조 작업도 끝났습니다.

사람 만나는 법 배우는 팜이.. 산책만큼은 '참 잘했어요'

구조 이후 팜이는 사람에게 적응하는 방법부터 배워가기 시작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그렇게 경산에서 구조된 이 강아지에게는 ‘팜이’라는 이름과 함께 온센터 보금자리가 생겼습니다. 온센터에 처음 왔을 때 팜이는 지금보다도 더 다가가기 어려운 친구였다고 합니다. 구 활동가는 “간식도 잘 먹지 않았고, 공격성을 보이진 않았지만 도망을 많이 다녀서 쉽게 다가가기가 어려웠다”고 당시를 돌아봤습니다.

산책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랫동안 사람과 산책한 경험 없이 바깥 생활을 오래 한 탓에 목줄에 대한 거부감이 심한 편이었다고 해요. 그나마 다른 개들과 합사는 무난한 편이었는데, 그마저도 사회성이 좋은 덕분이 아니라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게 대부분인 덕분이었다고 해요.

그런 팜이에게 사람의 손길이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알리는 데까지 1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구 활동가는 “매일 팜이 곁에 가서 위협하지 않고 놀라지 않게 하기를 반복했다”며 “간식도 주고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니 한 달 만에 짖는 걸 멈췄다”고 설명했습니다. 그 뒤로 천천히 목줄도 받아들이고 산책도 함께 잘 나갈 수 있게 됐다고 합니다. 특히 산책은 바깥 생활을 한 경험 탓인지, 실내 생활보다 더 자신감이 넘치는 듯한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팜이는 아직 사람의 손길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했지만, 과거에 비해 두려움의 강도는 확연히 줄었다. 동그람이 정진욱


물론 아직 팜이에게 사회화 교육은 좀 더 필요한 게 맞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회화 교육도 가정에서 보호자와 함께 진행할 때 더 수월할 겁니다. 온센터 활동가들이 팜이의 보호자를 간절히 기다리는 이유이기도 할 겁니다. 구 활동가에게 예비 보호자에게 팜이에 대한 못다 한 설명을 부탁했습니다.

아직까지 목욕하는 걸 좀 어색해해요. 그리고, 배 부위 만지는 걸 많이 꺼려 합니다. 오랜 기간 바깥 생활을 한 만큼 사람과의 생활을 한 번에 적응하리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대신,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주면 좀 더 안정적으로 적응할 수 있을 거예요. 보호자분이 강아지를 키워본 경험이 있으면 그래도 긴 시간 지켜보는 법을 어느 정도 알 테니 금방 팜이가 마음을 열 수 있지 않을까요? 동물자유연대 구소희 온센터 돌봄활동가

정진욱 동그람이 에디터 [email protected]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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