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현지시간) 제 267대 교황으로 선출된 레오 14세가 바티칸 성베드로대성당 발코니에 나와 인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전 세계 가톨릭 교회를 이끌 새 교황을 뽑기 위한 콘클라베(추기경단 비밀회의) 둘째날인 8일(현지시간) 마침내 새 교황이 선출돼 모습을 드러내자,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을 가득 메운 수만명은 크게 환호했다. 첫 미국 출신 교황의 탄생 소식에 미국 정치권과 교계는 물론, 교황의 고향인 일리노이주 시카고는 축제 분위기로 들썩이고 있다.
교황 선출을 알리는 흰 연기가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피어오르고 1시간여 뒤, 새 교황이 전세계 14억 가톨릭 신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상 첫 남미 출신 교황이었던 프란치스코 교황(아르헨티나)에 이어, 이번에는 첫 북미 출신 교황이 된 레오 14세(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69)였다.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된 프레보스트 추기경은 콘클라베 이틀째에도 유력 후보로 부각되지 않았던 인물이다.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 직전까지 유력 후보군에 들지 못하다가 선출됐듯, 새 교황도 ‘깜짝’ 선택을 받은 셈이다.
그간 유력 주자로 부각됐던 인물은 피에트로 파롤린(이탈리아) 추기경과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필리핀) 추기경, 마테오 주피(이탈리아) 추기경 등이었다. 반면 프레보스트 추기경의 이름은 언론과 각종 예측 업체들의 유력 후보군 명단에서 10위권 안에 등장하지도 않았다.
AP통신은 그간 바티칸에서 미국이 전 세계적으로 강력한 ‘세속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점 때문에 미국인 출신 교황을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전했다.
레오 14세는 프란치스크 교황의 측근이면서도 신학적으로는 중도 성향이어서, 개혁파와 보수파 사이에 균형을 잡은 인물로 평가된다. 아울러 미국인이면서도 페루 빈민가 등에서 사목한 이력이 교황 선출 요소로 작용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8일(현지시간)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새 교황인 래오 14세 선출 소식이 전해지자 한 남성이 미국 국기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1955년생으로 시카고 태생인 레오 14세는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일원으로, 1982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미국 국적이지만 20년간 페루에서 선교사로 활동했으며, 2015년 페루 시민권도 취득하고 같은 해 페루 대주교로 임명됐다.
첫 미국인 교황 탄생에 미 정치권과 가톨릭계는 크게 환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소셜미디어에 “우리나라에 큰 영광”이라고 축하하며 “나는 교황 레오 14세를 만나길 고대한다”고 썼다.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에 이어 미국 역사상 두 번째 가톨릭 신자 대통령이었던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은 엑스에 “하베무스 파팜(Habemus Papam·우리에게 교황이 있다). 신이 교황 레오 14세를 축복하길”이라며 “(아내) 질과 나는 축하를 보내며, 그가 성공하길 바란다”고 썼다.
시카고 출신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미셸과 나는 시카고 출신인 교황 레오 14세 성하께 축하를 보낸다”며 “미국에 역사적인 날이며, 가톨릭교회를 이끌고 많은 이들을 위한 모범을 보이는 성스러운 임무를 시작하는 그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했다.
복음주의 개신교도에서 2019년 천주교로 개종한 J D 밴스 부통령은 “첫 미국인 교황의 선출을 축하한다”며 “수백만명의 미국 가톨릭 신자와 다른 기독교인들은 교황이 교회를 성공적으로 이끌기를 기도할 것”이라고 적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알려진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역시 성명을 통해 “나는 교황 성하를 위해 기도하며, 성령께서 그분이 교회를 이끄는 데 지혜와 힘, 은총을 내려주시길 바란다”며 “미국은 첫 번째 미국 출신 교황과 함께 우리의 오랜 관계를 심화시키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새 교황의 고향인 시카고는 축제 분위기로 들썩였다. 워싱턴포스트(WP)는 시카고 대교구 주교좌 성당인 ‘거룩한 이름 대성당’(Holy Name Cathedral)에서 낮 미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교황이 선출되자 축하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고 보도했다.
시카고 대교구 총대리를 맡은 래리 설리번 주교는 대성당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오늘은 시카고와 미국에 흥분되는 날”이라며 “시카고 방식은 함께 모여 믿음을 나누는 것”이라고 말했다.
레오 14세와 젊은 신학생 시절 함께 공부했다는 시카고 성 투리비우스 성당의 윌리엄 레고 신부는 뉴욕타임스(NYT)에 “그들은 좋은 사람을 뽑았다. 그는 항상 가난한 이들을 의식하고, 그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NYT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20%가 가톨릭 신자이며, 이 비율은 10여년간 유지되고 있다. 시카고의 경우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가톨릭으로 그 비율이 더 높다는 게 시카고 대교구의 설명이다.
브랜던 존슨 시카고 시장은 소셜미디어 게시글에 “교황을 포함해 모든 멋진 것들이 시카고에서 나온다”며 “조만간 고향에 돌아오는 당신을 환영하길 바란다”고 적었다.
미국 주요 언론들도 미국인 출신 교황이 탄생하자 홈페이지에 라이브 페이지를 개설하고 경쟁적으로 교황 관련 소식을 전하고 있다.
새 교황의 둘째 형인 존 프레보스트는 ABC 방송에 교황과 콘클라베 직전에 전화 통화를 했다며 “나는 ‘네가 첫 번째 미국인 교황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는데 그(동생)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그들은 미국인 교황을 선택하지 않을 거야’라고 하더라”라고 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