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교자바 나비, 문경식 셰프
편집자주
음식을 만드는 건 결국 사람, 셰프죠. 신문기자 출신이자 식당 '어라우즈'를 운영하는 장준우 셰프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 너머에서 묵묵히 요리 철학을 지키고 있는 셰프들을 만납니다. 한국 미식계의 최신 이슈와 셰프들의 특별 레시피를 격주로 연재합니다.서울 중구에 위치한 문경식 셰프의 '교자바 나비'는 상호대로 만두집이다. 만두를 메인으로 10개의 메뉴를 코스로 내놓는다.
세상엔 두 종류의 식당이 있다. 음식을 먹고 나면 호기심이 생기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 서울 중구 신당동 약수역 인근 외진 골목에 위치한 '교자바 나비'를 방문한 후 어느 때보다 머릿속에 큰 물음표가 생겼다.
'만두 오마카세'라는 생소한 구성이다. 하루 저녁 딱 4명만 받는 영업 방식도 의아하다.
만두로 코스를 구성하면 자칫 지루하지 않을까 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만두가 이토록 다채로운 풍미를 품었던 요리였나. 만두소에서는 켜켜이 쌓인 맛의 디테일이 느껴졌다. 만두를 쉽게 본 어리석음을 반성하면서 동시에 이런 만두를 빚는 이가 궁금해졌다. 패션사업가가 말하는 '만두의 멋'
문경식 셰프가 서울 중구 '교자바 나비' 주방에서 만두를 빚고 있다.
교자바 나비를 운영하는 문경식(39) 셰프의 이력은 그의 팔에 새겨진 타투만큼이나 독특하다. 10대 후반부터 30세까지 그는 패션업계에 몸담았다. 의류 제작과 유통을 넘나들며 꽤 잘나가던 시절도 있었다. "그땐 통장에 꽂히면 다 제 돈인 줄 알았죠. 허세도 좀 부리고 돈도 막 쓰고 그러다 세금과 결제일에 쫓기게 됐죠." 그렇게 쌓인 빚과 함께 사업은 무너졌다.
사업이 망한 후 2년간 집에서 거의 나오지 않았다.
냉장고도 텅 비고 돈도 없던 어느 날, 살려면 뭐라도 먹어야겠다는 마음에 밀가루를 물에 개어 프라이팬에 부쳤다. 밀가루 부침개는 매번 맛이 달랐다.
"똑같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매번 결과물이 달랐어요. 그게 재미있었죠."
그렇게 시작된 작은 궁금증이 그를 요리의 세계로 이끌었다. 처음엔 적어도 굶지는 않겠구나 싶어 선택한 요리였지만 이내 삶을 지탱하는 열정이 됐다.문 셰프는 교자바를 열기 전인 2020년 와인바를 운영했다. 내추럴 와인이 붐이었다. 자유로운 분위기와 멋스러운 인테리어, 감각적인 요리가 어우러져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손님들과 혼연일체 돼 즐거웠던 시절이었다. 10평도 안 되는 작은 공간에 8명의 직원이 있을 정도로 와인바는 성공했다.
성공했지만 요식업 특성상 유행은 빨리 지나가는 법. "계속 트렌디함을 보여줘야 하는데 언젠가 감이 떨어지는 시간이 올 거라 생각했어요." 문 셰프는 시간이 축적되는 무언가를 찾고 싶었다. 새로운 아이템을 직원들과 고민하다 팀원 중 한 명이 '교자바'를 제안했다.
"만두는 유행을 타는 음식이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쉽게 없어질 음식도 아니고요. 하면 할수록 잘하게 되는 음식일 거라고 봤죠."
만두가 젊은 세대들이 선뜻 하지 않으려는 음식이라는 점도 끌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더 옛맛을 그리워할 텐데 그걸 누가 할 거냐는 거죠. 멋지고 트렌디한 것도 좋지만 오히려 젊은 사람들이 전통적인 걸 해야 한다고 봐요."
'교자바 나비'의 코스는 전복 요리로 시작한다.
돼지고기로 만든 '교자바 나비'의 만두.
하루에 2팀만 받는 이유는
그가 생각하는 멋은 시간이 켜켜이 쌓인 결과물이다. 그에겐 소위 힙한 음식보다 소박한 만두가 진정 멋있는 음식이다. 묵묵하게 오랜 시간 빚는 만두, 만두를 빚는 장인들의 무심한 동작, 다양한 재료들의 조화로운 맛. 이 세 가지가 그가 말하는 만두의 멋이다.
"멋있어지려고 노력한 시간이 쌓이고 쌓여서, 굳이 멋있어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멋이 묻어날 때 비로소 멋있는 게 아닐까요."
문 셰프는 수많은 만둣집을 다니며 가장 기억에 남는 곳도
"유난히 맛있었던 집이 아니라, 만두를 먹으면서 따뜻함을 느꼈던 곳"
이라고 했다. 부암동의 작은 만둣집에서 TV를 보다 손님이 오면 자리에서 일어나 툭툭 만두를 빚는 사장님의 모습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음식의 방향성을 찾았다.
'교자바 나비'의 양고기로 속을 채운 만두.
2022년 8월 교자바를 열었다. 처음엔 10석으로 운영했다. 손님이 꽉 차면 버거웠다. 만두 코스 요리 특성상 많은 손님을 동시에 응대하기 어려웠고 음식의 완성도도 떨어졌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손님을 줄이더라도 제대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현재는 하루에 2팀, 최대 4명만 받는다.
이렇게 장사하면 남는 게 있을까 싶지만 고객에게도, 스스로에게도 좋은 일이라 설명한다. "혼자 하면서 이 정도가 적당한 것 같아요. 수익이 나지 않아도 똑바로 하는 게 먼저죠. 똑바로 안 하는 상태에서 수익이 나면 그게 어차피 얕은 수이고, 다 들통이 나는 거니까요."
형태, 색, 식감... 만두의 변주
메뉴 개발법도 남다르다.
요리책도 기존 레시피도 거의 참고하지 않는다. 색감이나 질감, 감정 등에서 출발해 맛의 조합을 떠올린다.
"아내에게 물어봐요. 빨간색 하면 생각나는 음식이 뭐 있어? 초록색은? 그렇게 물어보고 생각나는 걸 받아 적어요. 그걸 머릿속에서 섞어 보는 거죠."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는 맛의 조합을 찾거나 조리 방식을 달리해 자신만의 독창성을 추구하려 애쓴다. 만두로 얼마나 변주를 보여줄 수 있을까 싶지만 그가 내는 만두 요리들은 형태와 색, 풍미와 식감, 그리고 재료와 국적을 달리하면서 익숙하지만 낯선 경험을 선사한다.
중간 중간 만두의 형태가 아닌, 일종의 쉬어가는 요리들은 입맛을 돋우면서도 다음 만두 요리를 기대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작지만 분명한 디테일을 맛으로 느끼고 눈으로 보는 즐거움도 있다.'교자바 나비'의 게살로 속을 채운 만두.
문 셰프가 성취감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일까. 오붓하게 마주한 손님들이 요리를 칭찬할 때일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칭찬 받는 게 성취감은 아니라고 봐요. 손님이 문득 '그 식당 참 좋았어'라고 느끼고 재방문할 때 성취감을 느낍니다. 내가 잘 하고 있구나 하고 말이죠."
그는 비판도 소중히 여긴다. "가장 좋은 피드백은 비판이에요. 정말 싫으면 그런 말도 안 하잖아요."그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요리사라기보다는 구도자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배고프던 시절 밀가루를 물에 개어 먹다 요리에 눈을 뜬 그가 화려한 시절을 거쳐 이제 손으로 정성껏 만두를 빚는다. 만두를 빚는 그의 손놀림을 보고 있노라니 해탈한 스님의 면모가 떠올랐다. 잘하고 싶고, 오래하고 싶은 일을 찾은 그가 빚은 멋스러운 만두를 오래도록 맛보고 싶어졌다.
서울 중구 신당동 '교자바 나비'의 소고기 만두.
[레시피] 교자바 나비 소고기 만두<재료> 4~6인분 기준
홍두깨살(300g), 미나리(1/2단), 백후추(2.5g), 파기름(12g)*, 맛간장(12g)*, 홍유(12g)*, 만두피(8~12개)
<만드는 법>
1. 홍두깨살과 미나리를 다져서 위 재료를 넣고 잘 섞어준다
2. 한두 시간 냉장보관 후에 만두피와 함께 빚는다
3. 만두를 끓는 물에 넣고 물이 끓어오르면 찬물을 두세 번 부어가며 천천히 익힌다
4. 접시에 담아 간장 드레싱* 두 스푼, 참깨 소스* 한 스푼, 참기름 약간, 홍유 오일만 조금 둘러준 후에 소고기 고명* 올려 완성한다.
*파기름
<재료>
다진대파(100g), 다진생강(15g), 다진마늘(15g), 식용유(100ml)
<만드는법>
식용유를 150~160도 정도의 온도로 끓여 살짝 식힌 후에 재료에 부어 식힌다.
*맛간장
<재료>
진간장(70ml), 참기름(35ml), 설탕(35g), 다진마늘(35g), 다진생강(35g)
*홍유
<재료>
고춧가루(80g), 고추씨(25g), 다진마늘(30g), 다진생강(30g), 대파(30g), 식용유(300ml)
<만드는 법>
1. 식용유를 150~160도 정도의 온도로 끓여 살짝 식힌 후에 재료에 부어준다.
2. 식은 후 이 재료(치킨 파우더 20g, 설탕 50g, 소금 20g, 굴소스 25g, 흑식초 100g)를 넣고 섞어 준다.
*간장 드레싱
<재료>
진간장(50ml), 생추 간장(50ml), 환만식초(25ml)+라오천추(75ml), 미림(50ml), 물(50ml)
*참깨소스
<재료>
참깨 페이스트(100g), 참깨(250g), 니키리 사케(225g), 니키리 미림(55g), 우쓰쿠시 간장(25g)
<만드는 법>
재료를 모두 넣어 곱게 갈아준다.
*소고기고명
<재료>
홍두깨살(100g), 생추간장(15g), 노추간장(10g), 굴소스(10g), 참기름(10g), 백후추(5g), 미림 (20g), 설탕(5g)
<만드는 법>
1. 홍두깨살을 쉽게 찢어질 정도로 오래 삶아 한김 식힌 후에 잘게 찢어준다.
2. 나머지 양념 재료를 잘 섞은 후 찢어둔 고기가 잘 젖을 수 있게 부어서 버무린다.
3. 마른 팬에서 약한 불로 말리듯이 천천히 수분을 날려 포슬포슬한 상태로 만든다.
글·사진=장준우 셰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