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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즈비언 연애 예능 ‘너의 연애’ 출연자 리원 향한 잔인한 파묘
|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웨이브의 레즈비언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너의 연애>에 출연한 리원. <너의 연애> 유튜브 채널 캡처


과거와 달라진 현재 인정 않고

논란에 갇히길 바라는 파묘꾼

신상털기에 여성은 특히 취약


성산업 종사 사과문 올린 리원

성 정체화 과정 혼란 고백하며

‘존재 증명’ 애쓰는 모습 잔인해

‘정체성 서사 편집권’은 나의 것


2024년 개봉해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파묘>의 흥행 이후, ‘파묘’라는 표현이 심심찮게 쓰인다. 원래 파묘는 묘를 이장하거나 화장하기 위해 기존의 무덤을 파헤치는 행위를 뜻하는데, 온라인상에서 개인의 정보를 이용해 과거 행적을 파헤치는 사이버 폭력이 파묘라고 불리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가 열린 뒤, 개인이 온라인에 흔적을 남기는 것이 일상화되고 누구나 쉽게 타인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단순히 과거에 남긴 글이나 사진을 찾아오는 수준을 넘어, 아이디나 e메일 주소 등을 근거로 익명 사이트에 남긴 글이나 흔적까지 모조리 파묘의 대상이다. 연예인의 과거부터 일반인의 신상까지 누군가 주목을 받으면 그때부터 전방위에 걸쳐 그가 지나온 행적이 끌어올려진다. 영화 <파묘>처럼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역사적 특성,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않는 시스템에 대한 울분과 분노가 합쳐져 파묘는 ‘사실은 이렇습니다’를 알리는, 정의로운 행위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파묘는 문제의 본질과는 무관하며, 개인을 괴롭히면서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효능감을 충족하고자 진행된다. 파묘꾼들은 ‘과거와는 달라진 현재’를 인정하지 않으며, 언제까지나 논란의 대상이 과거에 갇혀 있기를 바란다. 그래야 마음 편히 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놀이화된 파묘는 또한 약자도 악하거나 결함이 있을 수 있다는 진실을, 그럼에도 그가 당한 차별과 피해에 연대할 수 있다는 사실을 훼손한다. 범죄의 피해자가 작성한 익명 사이트의 게시물을 퍼뜨리며 ‘이런 사람’이니 ‘동정이나 연민’을 고민해보라는 식이다.

최근 <너의 연애>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 또한 이러한 파묘 행위에서 시작되었다. 4월25일 첫 방송을 시작한 웨이브(Wavve)의 오리지널 예능으로, 국내 최초 레즈비언 연애 예능 프로그램이다. 연애 예능 프로그램이 이성애 중심주의를 기반으로 하면서 어떻게 정상연애 이데올로기와 성별 각본을 강화하는지는 이미 충분히 논의되었기에, <너의 연애>가 몰고 올 새로운 파란 또한 기대를 모았다. 그런데 엉뚱한 논란이 터지며 다른 의미에서 <너의 연애>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출연자들이 공개되자, 언제나처럼 ‘신상털기’가 진행되었고 그 과정에서 출연자 리원의 ‘벗방 BJ’ 의혹이 제기되었다. 과거 방송 장면을 캡처해 퍼뜨리고 영상 링크를 공유하는 행위는 엄연한 디지털 성폭력이지만, 경각심 없이 이루어졌다. 온라인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성에 대한 이른바 ‘창녀혐오’와, 남성들을 대상으로 벗방을 진행한 여성이 ‘진짜 레즈비언’일 리 없다는 의심, 개인의 문제를 성소수자 전체로 확대하는 퀴어혐오가 뒤섞여 리원을 공격했다. 신상털기와 과거 행적을 파헤치는 파묘에서 여성은 특히 취약하다. 신상이 알려지는 즉시 위험에 노출되고,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는 순결 이데올로기와 성녀·창녀 이분법에 의해 여성들에게조차 배제당하기 때문이다. 미성년자 성매매를 저지른 배우도, 나이가 한참 어린 여성을 임신시킨 원로 배우도, 연예인 지망생 여성들을 성적으로 우롱한 배우도 문제없이 커리어를 이어간다. 그러나 여성들에게는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낙인, 특히 낙태를 했다거나 성산업에 종사했다는 과거는 ‘치명적인’ 손상이자 ‘씻을 수 없는’ 과오로 여겨진다.

리원은 사과문에서 과거의 이력을 인정하면서 더 이상 자신이 온라인 성산업에 종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성산업은 여성을 상품화하고 여성의 존엄을 해치기에, 최종적으로 소멸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이미 거대한 성산업의 현실에 휘말린 여성들이 실재한다. 이들이 불법적 존재로 규정되기 때문에 법의 테두리 바깥에서 자행되는 폭력과 착취를 가시화하고, 피해자로서의 권리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학계에서 ‘성노동’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것이 권장할 만한 노동이라서가 아니라,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자원 삼아 작동하는 산업과 경제 구조가 있기 때문이다. 성착취에 반대하고 성산업을 소멸시키려면 다양한 차원의 실천이 필요하다. 그중 하나는 한때 성산업에 종사했던 여성이라도 언제든지 그 일을 그만두고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기반이다. ‘문란했던 과거’가 발목을 잡아 결국 성산업으로 돌아가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이 필요하다. 이성적으로는 대부분 이 명제에 동의한다. ‘그런 일은 그만두고 땀 흘려 돈 벌면서 착실하게 사는’ 여성의 이미지는 가슴 따뜻한 휴먼 드라마의 한 장면 같다. 그러면서도 성노동자였던 여성과 사회에서 공존하거나, 그가 ‘과거를 딛고 평범 이상의 삶을 사는 것’에 극심한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 창녀혐오다. 작년 가을에는 성북구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일하던 30대 성노동자 여성이 불법 추심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었다. 고인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빚 외에도,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는 것을 주변에 알리겠다”는 협박이 통하는 현실이다. 드라마 <마인>에서 옥자연은 자신의 아이를 괴롭히는 여성에게, ‘술집 출신 주제에 신분 세탁하고 마나님 행세하는 것’을 폭로하겠다는 말로 그를 제압한다. 밴드 QWER이 비판받는 것 또한 비슷한 맥락이다. 비판의 포커스는 새로운 일을 하는 여성 개인이 아니라 성산업을 아무렇지 않은 것, 유쾌하고 재미있는 어른들의 문화로 연출하는 방송이나 감수성으로 향해야 한다.

성녀·창녀 이분법은 교묘하고 집요하다. 가부장제는 여성들이 언제든 발만 삐끗해도 ‘창녀’로 떨어질 수 있는 수많은 장치를 마련해놓고 ‘네가 창녀가 아니면 괜찮다고’ 여성을 안심시킨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아무리 힘들어도’ 성산업에는 혹하지 않고, 그래서 보호받아 마땅한 여성이 되면, 타락한 여성을 마음껏 욕해도 될까? 워킹 홀리데이를 다녀와도, 몸에 타투가 있어도, 담배를 피워도, 장기 연애를 하거나 동거 경험이 있어도, 심지어 한때는 특정 디자인의 추리닝이나 상의를 입어도 여성은 쉽게 문란한 여자로 라벨링된다. 가부장제가 창녀로 규정짓고 심판하는 여성의 자리에, 사실은 언제든지 누구나 놓일 수 있다. 그렇기에 순결을 기준으로 여성을 평가하고 서열화하는 행위는 무의미하다. 리원의 사과문을 두고, 성산업의 마수를 피한 이들은 자신은 아무리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성산업에 종사하지 않거나 그런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며 규탄한다. 호시탐탐 여성을 성적으로 침해하려는 세상에서 이러한 선택은 개인의 존엄을 지켜주는 프라이드이다. 그러나 개인의 경험이 타인의 선택, 낙인과 폭력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성산업에 기어이 연루되는 타인의 삶, 절대로 낱낱이 알 수 없는 맥락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가 자신의 삶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이고, 그것이 ‘나’의 기준에서 어떻게 들리든, 그것을 수용하고 인정하는 경험이다. “그렇구나. (이해는 안 되지만) 너에게는 그럴 수 있구나.” 이는 인류학자 김현경이 <사람, 장소, 환대>(문학과지성사, 2015)에서 말한 ‘정체성 서사의 편집권’이 당사자에게 있음을 인정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자기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뿐이다.”(209쪽)

말하자면 오늘날의 광범위한 ‘파묘’ 행위와, 개인의 과거와 결함을 공격하는 것은 타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자기 자신이 설명하고 규정하고 싶은 통제 욕구의 발현이다. 자신이 찾은 자료를 반박 근거로 들이밀면서, 어떻게든 당사자의 서사를 ‘나’가 이해하는 형태로 바꾸어 놓으려는 것이다. 리원은 남성을 대상으로 하는 성산업에 종사했다는 사실 때문에 진정성을 의심받자, 사과문에서 성 정체성 정체화 과정에서 겪었던 혼란과 폭력을 고백하면서 이제는 레즈비언인 자신을 받아들이고 싶었다고 프로그램 출연 계기를 밝혔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증명’하려면, 설득하려면, 개인사와 트라우마가 될 법한 일까지 밝혀야만 한다는 사실이 무척 잔인하다. 정체성 서사의 편집권이란 “(“네가 레즈비언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네가 오늘은 레즈비언이라고 고백하고 내일은 그것을 부인해도 상관없다. 나는 너에 대해서 가장 잘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너 자신임을 인정한다.”)”(김현경, 215쪽)는 뜻이다.

살아 있는 개인의 행적은 모순과 변화로 가득하다. 타인이나 약자는 언제나 보기 불편하지 않은, 매끄럽고 흠결 없는 존재가 아니다. SNS상에서는 리원을 향한 연대 서명운동이 진행되었고, 한국사이버성폭력 대응센터는 “‘벗방’을 한 개인이 아니라 벗방이 흥행하는 사회적 환경과 조건”을 문제 삼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한국레즈비언상담소의 “‘자격 있는’ 레즈비언은 없다”는 성명에 머물며 그것이 시사하는 바를 되짚어보자. ‘자격 있는’ 레즈비언의 권리만 요구하고, ‘자격 없는’ 여자는 두들겨 패도 되는 세상으로 갈 수는 없다. 그것은 결국 차별과 혐오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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