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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두코바니 원전단지.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26조원 규모 체코 원전 계약이 체결식을 하루 앞두고 제동이 걸린 가운데 한국 측이 ‘계약 중지’ 가능성에 대한 사전분석 등 준비가 소홀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에너지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번 계약 중지 사태가 애초 계약이 졸속으로 추진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번 기회에 프랑스전력공사(EDF)가 문제삼고 있는 저가수주 의혹 등을 국내에서도 검증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7일 예정된 체코 당국과의 원전 건설 계약 체결이 불발되자 정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입찰에서 탈락한 프랑스전력공사가 한국수력원자력과 두코바니Ⅱ 원자력발전사(EDUⅡ) 간 계약을 멈추게 해달라고 가처분 신청을 낸 것은 지난 2일이었다. 체코 브루노 지방법원이 이 신청을 받아들인 것은 6일 오후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을 비롯한 대규모 정부·국회 대표단은 체코를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이 소식을 전해들었다.

안 장관은 6일(현지시간) 체코 프라하에 도착한 직후 긴급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그는 체결식 무산 가능성에 대비하지 않은 데 대한 질문을 받고 “체코 정부 측에서는 (프랑스전력공사의 가처분 신청을 두고) ‘그게 되겠나’ 싶었던 것 같다”면서 “체코 정부 측에서 큰 문제 안 된다고 생각하고 초청해 일정을 잡았고, 저희가 특별히 안일한 대응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본안 소송에서는 큰 문제가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대한 신속히 마무리하겠다”고 말했다.

체코 정부조차 예상하지 못한 법원 판단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만약 대통령이 있었다면, 대통령이 방문했을 가능성이 높다. 외교참사가 벌어질 뻔했다”면서 “적어도 프랑스전력공사 측 상황을 예의주시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종 계약이 연기되면서 오는 10월 체코 총선 등 정치 상황에 최종 계약이 영향받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체코 현지 언론들은 이번 소송이 빠르면 6~8주, 길면 6~8개월까지 걸릴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다만 정부는 ‘과도한 지연’은 벌어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 안 장관은 “며칠일지 몇 달일지 예단할 수는 없다”면서도 “체코 정부도 지연되지 않기를 희망하는 것 같다. 법원에서도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불필요하게 지연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계약이 멈춰진 이번 기회에 그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체코 원전 사업의 경제성 검토를 진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원자로 설계 전문가인 이정윤 ‘원자력 안전과 미래’ 대표는 “프랑스전력공사는 한국 측이 ‘고정가격’을 제시한 것은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정부가 별도의 지원을 해주기로 한 것이 아니냐는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면서 “실제로 대규모 공사는 설계 변경 등 변수가 많아 고정 계약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특히 한국이 체코에 건설하려는 APR1000은 유럽형 안전기준을 충족해야 하기에 한국에서 설계·실증 경험이 없는 이중 격납용기, 코어캐쳐(원자로 용기 바닥의 장치) 등을 지어야 해 공기지연은 불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그러면서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온타임 위드인 버짓’(정해진 예산 내 적기시공)을 약속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윤석열 정권이 성과를 보여주려다 졸속 계약을 추진해 이번과 같은 계약중지 사태도 벌어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 정책위원 역시 “프랑스전력공사의 얘기는 한마디로 ‘우리는 그 예산으론 못 짓는다’는 것으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체코 원전 사업의 수익 리스크에 대해 우리가 역으로 인식하게 됐다”면서 “국내에서도 경제성 검토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15년 뒤 0.3%대 이익률을 보인 데다 한국전력과 한수원 간 비용 정산 소송까지 이어진 UAE 바라카 원전 사례를 다시 반복해선 안된다. 공기업 손실은 국민 부담으로 전가되기 때문에, 국회가 비공개 방식으로라도 최소한 적자가 예상되지는 않는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프랑스 측의 끈질긴 반발의 의미를 생각해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현재 전 세계에서 건설 중인 원전은 52기로 그중 48기가 중국과 러시아가 짓고 있다. 두 국가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이 다툴 시장이 그만큼 좁아진 것”이라며 “사양길에 접어든 원전 사업에 국가적으로 나서서 베팅하는 것이 옳았는지를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체코전력공사(CEZ)는 이날 한수원과의 최종 계약 서명을 중지해야 한다고 한 체코 법원의 결정에 항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다니엘 베네쉬 체코전력공사 사장은 프랑스전력공사의 법적 이의 제기에도 불구하고 해당 프로젝트를 계속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또 일정 지연으로 인한 손해 배상을 청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송윤경 기자 [email protected], 이진주 기자 [email protected], 산업통상자원부 공동취재단>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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