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인간의 초상’, 시 ‘동행’ 독서일기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4월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퇴임사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email protected]
독서광으로 알려진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퇴임 뒤 처음으로 자신의 블로그 ‘착한 사람들을 위한 법 이야기’에 독서일기를 올렸다. 지난달 18일 퇴임한 문 전 권한대행은 독서일기, 생활법률 등을 담은 블로그를 20년 가까이 운영하며 1500개가 넘는 글을 올려왔다.
문 전 권한대행은 지난 4일 변호사이기도 한 유중원 작가의 소설 ‘인간의 초상’을 읽고 짧은 독후감을 블로그(https://favor15.tistory.com)에 남겼다. 그는 책에 대해 “주인공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고 죽음의 공포 혹은 상실감 등 정신적 증상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삶의 연장선상에 있는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인간의 기억과 망각에 관한 이야기다”라고 적었다. 2022년 3월 출간된 ‘인간의 초상’은 베트남 참전 군인의 이야기다. 그의 글에서 알 수 있듯이, 파병된 군인은 왜 싸워야 하는지 끊임없이 의문을 가지지만 국가의 명령에 따라서 싸워야 한다.
문 전 권한대행은 역사가 인간의 내면에 남긴 상처에 대한 관심을 이전에도 드러냈다. 2018년 9월13일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쓴 독서일기에는 “광주에 도착하였지만 망월동 묘지 가는 길을 물을 수가 없었다. 망월동 묘지 가는 길을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광주 시민에게 상처가 될까 봐서”라고 적었다.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블로그 갈무리
‘인간의 초상’을 읽고 발췌해 올린 문장도 폭력적 상황에 놓인 인간의 내면에 주목했다. 그는 “이 세상에는 직접 몸으로 겪어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전쟁이 바로 그렇다. 전쟁이란 직접 겪어보지 않는 사람은 감히 상상도, 예측도 할 수 없는 몸부림이고 죽음의 고통인 것이다”라는 부분을 발췌해 올렸다. 베트남 전쟁이나 5·18광주민주화운동같이 “직접 겪어봐야 알 수 있는 것”의 역사에 대한 문 권한대행의 관심이 읽힌다.
5일에는 블로그 카테고리의 하나인 ‘시 암송’에 최종수 신부의 ‘동행’을 올렸다. “먼 길 가려면/ 마음의 길을 먼저 닦고/ 함께 할 벗을 찾아야 한다”로 시작해 “기도로 나를 비우고/ 당신을 먼저 채워야 한다”로 끝나는 이 시는 2021년 9월 출간된 최종수 신부의 시집 ‘사랑해도 모자란 동행’에 실렸다.
교보문고 누리집은 시인을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알현하고 네 번이나 웃게 만든 신부”라고 소개했고, 2021년 10월 한겨레는 이 시집을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따라 생태 환경 보호를 온몸으로 실천하며 고백하듯 써 내려간 시 66편을 담았다”고 소개한 바 있다.
문 전 권한대행이 지난달 21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한 뒤 교황과 인연이 있는 사제의 시를 읽으며 애도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혹은 퇴임 뒤 펼쳐질 새로운 길에서 동행을 찾아야 하는 심정을 드러낸 것으로도 풀이된다. 앞서 “(퇴임 뒤) 영리 목적의 변호사 개업 신고는 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는 문 전 권한대행은 향후 학계에 몸담을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