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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현의 검찰을 묻다 마지막회
검찰 넘어 법원 향하는 ‘근본적 회의’
조희대 대법원장이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 재판에 참석해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에 대한 대법원 판결문 가운데 이번 판결의 본질을 드러내는 상징적 대목은 76~78페이지입니다. 다수 의견에 대한 대법관 5명(서경환·신숙희·박영재·이숙연·마용주)의 보충의견입니다. 다수 의견에 선 대법관들의 팩트와 논리가 얼마나 부실한지 그 수준을 보여줍니다. 이들이 보충의견을 낸 것은 ‘졸속 재판’에 대한 비판을 의식해 미리 변명을 해두려는 의도였을 텐데, 되레 졸속 재판이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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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들의 ‘허접한 변명’, 최고법관이 쓴 글 맞나

우선, 보충의견은 대법원의 이례적인 속도전을 변명하듯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재판 지연 사례를 듭니다. “원심에서 국회의원직 상실사유에 해당하는 형을 선고받고 상고한 사건 등에서 대법원이 원심을 그대로 수긍하는 판결을 선고하면서도 처리가 상당히 지연되어 사실상 국회의원 잔여 임기를 거의 마칠 수 있게 된 사례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 사례는 두가지 측면에서 이재명 후보와는 정반대되는 경우입니다. 공직선거법이 ‘6·3·3’이라는 신속 재판 원칙을 규정한 이유는 위의 사례처럼 재판에서 결국 당선무효 형을 받게 될 선출직 공직자가 재판 지연으로 임기를 장기간 채우게 되는 불합리를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반면 이재명 후보는 낙선했습니다. 낙선자의 신속한 재판을 강조하는 건 법 취지와 거리가 멉니다. 또 위의 사례는 대법원이 원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한 경우입니다. 이때는 신속하게 상고기각 판결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재명 후보 사건처럼 원심 무죄를 대법원이 유죄로 뒤바꾸는 경우 ‘신속’보다 ‘충실’한 재판이 강조돼야 한다는 건 삼척동자도 알 수 있습니다.

보충의견은 이처럼 성격상 정반대되는 사례를 들고 나와 이재명 후보에 대한 이례적인 신속 재판을 옹호하고 있습니다. 논술 시간에 학생이 이런 글을 써왔다면 선생님은 즉시 빨간 펜을 들었을 것입니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연방대법원. 로이터 연합뉴스

사례로 든 미국 판결은 “역사상 가장 부패한 판결”

둘째, 보충의견은 ‘공직선거에 대한 외국의 신속 재판 사례’로 2000년 미국 대선 직후 연방대법원이 내린 판결을 들고 있습니다. 이 판결은 선거가 정상적으로 치러진 뒤 박빙 지역의 재검표 문제로 혼란이 지속되자 재검표를 중단시킨 것으로, 주권자의 선택 결과를 사후적으로 확정하는 방식에 관한 판단이었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유력 후보를 ‘제거’해 주권자의 선택권 자체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이재명 후보 재판과는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선거 관련 재판’이라는 피상적 유사성만으로 엉뚱한 사례를 들고 나온 게 첫째 항목에서 다룬 논리 오류와 똑같습니다.

더구나 연방대법원의 이 판결은 역사상 가장 정치적이고 부패한 판결로 비판받는 판결입니다. 5 대 4로 갈린 이 판결의 소수의견에 섰던 데이비드 수터 대법관은 “너무나 정치적인, 너무나 명백하게 정치적인” 판결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앨런 더쇼위츠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는 “연방대법원 역사상 비교 대상이 없을 만큼 가장 부패한 판결이었다. 다수의견 대법관들이 오직 개인의 정치적 선호에 따라 판단한, 내가 알기로 유일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기였고, 법관 선서 위반이었다”고 격렬히 비난했습니다. 당시 대다수 미국 언론과 여론도 같은 반응이었습니다.

이런 판결을 뒷받침 사례로 인용했으니, 보충의견 대법관들은 이번 대법원 판결이 ‘너무나 명백히 정치적인’ 판결임을 자백하고 있는 꼴입니다.

조희대 취임 뒤 선거재판 오히려 길어졌는데…

셋째, ‘지연된 정의’에 대한 우려는 객관적 사실에 비춰볼 때 허울일 뿐입니다. 선거사건의 신속 처리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정작 조희대 대법원장 취임 뒤 대법원의 선거사건 처리는 2024년 평균 92일로, 2023년 73일보다 오히려 길어졌습니다. 이런 가운데 이재명 후보 사건은 36일 만에 선고가 이뤄졌습니다. 선거사건 신속 처리라는 명분은 되레 이 후보 신속 재판이 차별적이란 점만 확인시킬 뿐입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4월2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혐의 형사재판 2차 공판에 출석해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게다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재판은 1심만 4년 넘게 걸렸고,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 등의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 재판은 1심만 6년째 진행 중입니다. 법원은 윤석열 전 대통령 내란죄 재판을 신속하게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적도 없습니다. ‘지연된 정의’를 거론하는 자체가 낯부끄러운 일입니다.

넷째, ‘선택적 정의’의 부당성에는 눈감고 있습니다. 이흥구·오경미 대법관의 반대의견이 지적하듯 “검사가 기소편의주의를 내세워 일부 표현만 임의로 선정하여 기소하는 상황을 가정하게 되면 (중략) 법원이 아무리 객관적이고 공정한 절차로 법에 충실하게 재판한들 국민으로부터 검사의 자의적 법집행에 동조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이 중대한 문제에 대해 다수의견은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판사가 주권자 선택 좌우해도 되나’ 근본 질문에 침묵

다섯째, 대선을 코앞에 두고 유력 후보에 대한 재판을 강행하는 게 어떤 헌법적 문제를 갖는지에 대해 기초적인 고민조차 없다는 점입니다. 보충의견은 1심과 2심 결론이 정반대로 난 상태에서 대선 후보자 등록이 다가왔다면서 “이로 인한 혼란과 사법 불신의 강도가 유례없다는 인식 아래, 철저히 중립적이면서도 신속한 절차 진행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혼란과 사법불신’은 오히려 대법원의 판결 강행으로 더 극심해졌습니다. 대법원의 ‘중립성’에 대한 신뢰도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남은 건 ‘신속한 절차’라는 비본질적 가치뿐입니다.

더 본질적인 질문은 이것입니다. ‘주권자의 민주적 권력창출 과정이 시작됐는데 일부 판사들이 유력 후보를 국민의 선택지에서 지워버리는 게 헌법적 정당성을 갖는가.’ 이 중차대한 문제에 대법원 다수의견과 보충의견은 단 한 줄의 설명도 내놓지 않았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지극히 얕은 소양을 드러낸 것입니다.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인근에서 138차 전국집중 촛불대행진이 촛불행동 주최로 열려 참가자들이 대법원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김영원 기자 [email protected]

대법원이 참고했어야 할 외국 사례는 따로 있습니다. 미국 법원이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후보에 대한 선고를 대선 이후로 연기한 결정입니다. 뉴욕 맨해튼형사법원의 후안 머천 판사는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유리하게 하거나 불리하게 만들기 위해 선고를 했다는 그 어떤 기미조차 떨쳐버리기 위해 선고를 연기한다”며 “이는 정의에 가장 부합하는 결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정치적 개입이라는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사법부 신뢰를 지키기 위해 선고 연기가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입니다. 대선이 끝난 뒤 머천 판사는 트럼프에게 ‘유죄이지만 형벌을 부과하지 않는다’는 선고를 내렸습니다. 최대 징역 4년까지 처할 수 있는 범죄였음에도 불구하고 원활한 대통령직을 수행을 위해 형벌을 부과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민주적 권력형성 과정에 대한 존중입니다.

대법관들은 한갓 ‘조희대 들러리’에 불과했나

끝으로, 보충의견은 대법원이 충실한 심리를 했다고 주장하지만 은연중 ‘졸속 심리’를 시인하고 있습니다. 보충의견은 “이 사건의 주요 쟁점은 크게 복잡하지 않다”며 “제1심과 원심(2심)은 동일한 사실관계에 대하여 치밀하게 법리를 전개, 적용하였고, 이를 판결서에도 상세하게 설시하였으므로, 대법원으로서는 그중 어느 쪽을 채택할 것인가를 결정하면 충분한 사건이기도 하다”고 했습니다. 고작 1·2심 판결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게 대법원의 역할이라니 읽는 눈을 의심하게 됩니다. 이러니 그 짧은 기간에 1심 판결을 요약한 것 같은 부실한 판결문이 나왔던 것입니다. 이런 역할이라면 초등학생을 대법관 자리에 앉혀도 얼마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2심의 결론이 극과 극으로 갈리고 법리가 첨예하게 부딪쳤으면 대법원은 더욱 치열한 법리 검토와 토론을 통해 누가 봐도 설득력있는 판결을 내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한 당일과 이틀 뒤인 4월24일 바투 두차례 합의기일을 열었을 뿐입니다. 단 사흘 만에 결론을 낸 것입니다. 보충의견은 “이 사건 쟁점에 관한 입체적이고 심층적인 추가 검토를 집중적으로 행하였고, 이를 토대로 치열한 토론을 하였다”고 주장하지만 이틀 간격으로 두번 만나 어떤 치열한 토론을 했다는 것인지 모를 일입니다.

또 보충의견은 대법관들이 “제1심과 원심 판결문, 공판기록” “축적된 판례와 법리, 연구자료” 등을 모두 검토했다고 밝혔습니다. 재판연구관들이 만든 요약 보고서만 보고 판단한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촉박한 시일에 방대한 자료를 제대로 검토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6만여쪽에 이르는 전자기록을 어떻게 열람했는지 관련 로그 기록을 공개하라는 요구가 분출하는 게 당연합니다.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를 준비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대법관 2인의 반대의견은 “대법관들 상호간의 설득과 숙고의 성숙기간을 거치지 않은 결론은 외관상의 공정성에 대한 시비도 문제이지만 결론에서도 당사자들과 국민을 납득시키는 데 실패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숙고의 시간을 가졌는지조차 의문스런 이례적인 속도전 끝에 10 대 2라는 일방적 결론이 난 것으로 미뤄볼 때, 조희대 대법원장의 주도 아래 나머지 대다수 대법관들은 토론 과정에서 아무 말도 못한 채 병풍처럼 들러리를 선 것은 아닌가 하는 상상마저 하게 됩니다.

‘내 권한 행사하면 그만’이라는 제도적 폭력

보충의견은 고작 3페이지 분량입니다. 내용도 위에서 살펴봤듯 앙상하고 허접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대법원의 이례적 판결에 대한 변명을 적어놨는데, 되레 숙고의 시간이 부족했음을 역설적으로 입증하는 증거가 됐습니다. 이런 판결로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겠다니 가당치 않습니다. 이런 대법원을 최고법원이라고 존중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조희대 대법원은 형식과 내용 양 측면에서 국민을 설득하려는 시늉조차 내지 않은 채 ‘내 권한을 행사하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사법적 ‘완력 행사’를 했습니다.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제 멋대로 써버린 것입니다. 제도적 폭력입니다. 12·3 내란을 일으킨 윤석열과 유사한 행동방식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사법독재라고 부릅니다. 사법독재는 법치라는 미명 아래 고개를 듭니다. 하지만 법치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 민주주의를 초월하는 이념이 아닙니다. 헌법이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 등 법치의 예외를 둔 것은 판검사가 법을 악용해 선출직 공직자를 탄압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정치검사와 정치판사가 작당하면 유력 정치인을 ‘사법적으로’ 제거하는 게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사실을 우리 사회는 지금 목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법이라는 가면을 쓰고 판검사가 정치를 좌우하게 되면 더 이상 주권자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판검사가 지배하는 사회가 됩니다.

주권자의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에 사법은 끼어들어선 안됩니다. 사법적 자제가 필요합니다. 세계 어느 민주국가의 최고법원도 선거 직전 유력 정당의 후보를 제거하는 판결을 선고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는 그 권력의 원천인 국민 주권을 존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법권력이 그 선을 넘어 일탈한다면 주권자 국민이 그 권력을 회수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연재를 마치며

이 글은 본래 정치적 권력집단이 된 검찰의 문제점을 들여다보는 연재물 ‘검찰을 묻다’의 마지막 글입니다. 하지만 지난 1일 나온 대법원 판결을 다루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법원이 검찰보다 더 노골적으로 정치화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법원은 검찰과 다르겠지’라는 믿음을 한순간에 날려버렸습니다. 법원은 검찰의 일탈을 통제하는 책무를 다하기는커녕 정치검찰과 한몸이 돼버렸습니다. 법원과 검찰이 특정 세력을 위해 법을 사유화하는 하나의 카르텔이라는 확신을 심어줬습니다. 검찰개혁은 사법개혁 없이 완성될 수 없음을 절실히 확인하게 됩니다. 이제 검찰과 함께 법원을 향해서도 ‘근본적 회의’를 던질 때입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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