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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은행 기업대출 창구 모습. 사진=김범준 한국경제신문 기자


“은행 문턱이 이렇게 높아진 건 처음입니다. 거래하던 은행에서 대출 만기 연장조차 거절당해 자금줄이 막힐까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경기둔화로 돈줄이 말라가고 있는 중소기업들이 비상이 걸렸다. 은행 문을 두드리지만 굳게 잠긴 대출 빗장에 속만 타고 있다. 은행권은 “우리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경기 부진, 환율 급등 등으로 중소기업 연체율이 높아지고 있어 건정성 관리를 위해 대출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빨간불 켜진 통계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잔액(지난 3월 말)은 663조1922억원으로 지난 1월 말(662조6232억원)보다 5690억원 늘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2024년 1분기) 8조8706억원이 증가했던 것과 비교하면 중기대출이 15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4월 28일 기준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664조3989억원이다.

저축은행에서도 중기대출 규모가 감소하고 있다. 79개 저축은행 중기대출 규모는 지난해 46조3800억원으로 전년(56조257억원) 대비 10조원가량 줄었다(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 같은 기간 5대 저축은행의 중기대출 비율도 낮아졌다. SBI저축은행의 중기대출 비율은 43.74%→39.9%, OK저축은행 46.42%→42.8%, 한국투자저축은행 63.21%→57.54%, 웰컴저축은행 48.8%→42.27%, 애큐온저축은행 55.69%→33.08%로 각각 내려갔다.

개인사업자 대출도 감소하고 있다. 5대 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 잔액은 지난 3월 말 기준 324조4671억원으로 지난 1월 말(324조9356억원)보다 4685억원 줄었다. 반면 지난해 1분기 개인사업자 대출은 2조4246억원 증가했었다. 지난해와 비교해 올해 자영업자의 대출 길이 꽉 막혔던 셈이다. 4월 28일 기준 개인사업자 대출 잔액은 324조7190억원이다. 저축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 규모도 2023년 19조7751억원에서 지난해 15조6402억원으로 줄었다.

중소기업 대출 부실이 커질 것을 염려한 은행들이 중소기업 대출을 보다 엄격하게 관리하면서 중기대출이 줄어든 것으로 분석된다. 대기업보다 현금 흐름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상대적으로 부실 가능성이 크다. 이미 빚을 못 갚는 중소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국내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 기준)은 2023년 말 0.48%에서 지난해 말 0.62%로 올라갔다. 올해 2월은 0.7%로 나타났다. 이는 2023년과 2024년 각각 평균인 0.4%, 0.5%와 비교하면 약 1.5배가량 높은 수치다. 5대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연체액 원금도 2023년 3조원대에서 지난해 말 4조원대로 커졌다.

연체율 경고등은 개인사업자 대출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금융 회사에서 돈을 빌린 뒤 석 달 이상 연체해 신용유의자(신용불량자)가 된 개인사업자는 14만 명을 넘어섰다(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강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1년 전(10만8817명)과 비교해 30% 가까이 급증한 것이다. 신용유의자는 90일 이상 장기 연체 등으로 신용정보원에 등록된 경우를 말한다. 금융거래 제한 등 불이익을 받는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 신고를 한 사업자는 98만6487명으로 집계됐다.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06년 이후 역대 최고치다.


그래픽=정다운 기자

은행 건전성도 ‘비상’

은행권은 개인사업자와 중소기업의 금융 지원에 대한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자산건전성 관리를 위해 깐깐한 대출 기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경기침체로 내수 부진이 이어오고 있고 지난해 12월부터 이어진 정치 불확실성에다 관세전쟁이 겹치며 환율 변동성이 커졌다. 중소기업의 절반가량은 환율 리스크 관리 전략이나 수단을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다(중소기업중앙회). 그런데 환율이 뛰면 호황·불황 업종, 수입·수출 기업을 가리지 않고 원화로 환산되는 기업의 외화 빚이 빠르게 불어난다. 원금·이자 상환에 제동이 걸린 셈이다. 거래 기업들의 유동성에 문제가 생긴다면 은행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자본건전성 지표인 보통주자본비율(CET1) 관리도 은행권의 중기대출 문턱을 높였다. 은행이 중심인 금융지주들은 작년부터 꾸준히 정부의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정책 과제를 수행 중인데 그 핵심 중 하나가 CET1 비율이다.

금융당국이 공식적으로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금융지주들은 CET1 비율 13% 전후 선을 사수해야 하는 압박을 받고 있다. 그 정도는 돼야 은행의 자본건전성이 좋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금융지주들이 내놓은 주주환원 정책도 CET1 비율 유지를 전제하고 있다.

그런데 고환율은 CET1 관리에 악재다. CET1 비율은 위험가중자산(RWA)이 많으면 낮아진다. RWA는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등 저신용 업체의 위험 가중치를 높게 매긴다. 원화값이 떨어질수록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위험도는 올라간다. ‘환율 상승→RWA 증가→CET1 하락’으로 이어진다. 금융권은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금융지주의 CET1 비율이 0.01~0.03%포인트 하락한다고 추산한다. 4월 29일 기준 원·달러 환율은 1437.50원을 보이고 있다. 1년 전과 비교해 4% 이상 올랐다.

결과적으로 금융권은 자본건전성 방어에 성공했다. 올해 1분기 4대 금융지주의 CET1은 △KB금융지주 13.67% △신한금융지주 13.27% △하나금융지주 13.23% △우리금융지주 12.42%로 집계됐다. 전부 전분기보다 각각 0.16%포인트, 0.24%포인트, 0.10%포인트, 0.29%포인트 올랐다.

당국 나서지만 효과는 글쎄

정부는 최근 태스크포스를 꾸려 RWA 가중치 하향 조정 등 규제 완화를 검토 중이다. RWA 규제가 개선되면 위험 대출이 늘어나도 CET1 비율이 떨어지지 않는 효과가 있다.

다만 규제가 완화돼도 은행권이 중소기업 대출을 적극 취급할지는 미지수란 의견도 있다. 한국은행이 4월 22일 발표한 ‘금융기관 대출행태 서베이 결과’를 보면 은행권이 올해 2분기 중소기업 대출 심사를 강화할 것으로 조사됐다. 대표적으로 건설업, 도소매업, 제조업 등이 해당된다. 이들 업종의 대출 연체율은 전 업종 평균을 크게 웃돈다.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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