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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해탈컴퍼니


올해 4월 코엑스에서 열린 불교박람회에는 ‘오픈런’ 행렬이 이어졌다. 개장 2시간 전부터 사람들이 줄을 섰고 4일 동안 20만 명의 관람객이 몰렸다. 작년의 2배 수준에 달하는 인파가 불교문화를 즐기기 위해 모였고 이 중 80%가 2030세대였다.

부처님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 하나를 사는 데도 30분 대기는 기본이었다.

기존 종교 박람회의 틀을 깨고, 불교의 포용성과 개방성을 앞세워 젊은층의 관심을 끌어모은 결과다.

2030 세대를 대상으로 한 ‘선명상’ 템플스테이는 접수와 동시에 정원이 마감되며 화제를 모았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힙한 불교를 상상하기 어려웠다. 전 세계적으로 종교인이 급격하게 줄었고 불교 역시 탈종교화 흐름을 피할 수 없었다.

빠르게 얻고, 짧게 즐기는 게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 깨달음을 주는 불교 철학이 다가가기는 어려워 보였다. 2023년 불교가 사찰을 벗어나면서 젊은 세대가 반응하기 시작했다. 한국인 3분의 2가 무종교인 시대에 불교를 향한 대중들의 호감도는 상승했다.

시장조사기관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 65%가 ‘최근 저연령층을 중심으로 불교가 떠오르고 있다’고 답했다. 특히 20대 응답자 66.8%와 30대 응답자 70.4%가 불교의 인기가 ‘체감된다’고 응답했다.

젊은 세대를 공략한 불교의 포교 전략이 성공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종교를 갖지 않는 비종교인도 가장 호감이 가는 종교로 ‘불교’를 꼽았다. 비종교인 62%는 ‘향후 믿어볼 의향이 있는 종교’가 불교라고 답했다.

불교 신자도 치솟았다. 트렌드모니터 설문조사 결과 불교 신도는 2016년 25.2%에서 2024년 30.6%까지 늘었다. 불교가 인기를 끄는 배경에는 불교의 ‘변화’가 자리 잡는다.


“불교 또 나 빼고 재밌는 거 하네”불교계는 젊은 세대와의 접점을 늘리기 위해 과감한 콘텐츠 실험에 나섰다. 부처님오신날에 맞춰 서울 연화사에선 ‘부처님 생일 카페’가 열렸다. 생일 카페는 K팝 팬덤의 전유물이다. 아이돌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팬들이 직접 카페를 꾸미고 굿즈를 나누는 문화인데 이번에는 그 주인공이 ‘부처님’이었다.

행사장에는 부처님 포토 카드와 행운 부적 카드, 포토존이 마련됐다. 젊은층에 친숙한 팬덤 문화 문법을 차용해 기획된 이번 이벤트가 화제가 됐다.

불교는 이처럼 콘텐츠와 커뮤니티를 묶고 대중문화의 감각을 차용해 다시 태어나고 있다. 불교와 관련한 인터넷 밈도 덩달아 생성 중이다. ‘극락도 락이다’, ‘중생아 사랑해’ 등 각종 밈이 번지면서 열린 종교인 불교의 진입장벽은 더 낮아지고 있다.

이를 두고 종교의 희화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불교의 포용성과 자율성을 드러낸 긍정적인 변화라는 평가가 더 많다. 새로운 감각을 수용하고 빠르게 시대 흐름을 읽어내는 불교의 모습 또한 재평가받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 ‘나는 솔로’의 이름을 빌린 소개팅 이벤트 ‘나는 절로’도 화제다.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이 주관하는 남녀미팅 템플스테이 ‘나는 절로’에 수천 명의 젊은이가 모였다. 지난해 처음 실시한 여섯 차례의 ‘나는 절로’에는 3400여 명이 지원서를 냈고 160명이 참가했다.

올해 첫 ‘나는 절로’도 성공적이었다. 지난 4월 18~19일 경남 하동 쌍계사에서 개최된 나는 절로에는 12쌍이 참가해 9쌍의 커플이 탄생했다. 웬만한 소개팅보다 성사율이 높은 것이다. 참가자들은 ‘절에서의 만남’이 다른 곳에서의 만남보다 신뢰가 간다고 이야기했다. 사찰에서 이루어지는 프로그램인 만큼 도심과 떨어진 자연환경에서 함께 산책과 공양을 하고 깊은 대화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불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참여했다는 이들도 상당수 찾을 수 있었다.

템플스테이도 달라졌다. ‘절에 가면 새벽 예불부터 참선까지 따라야 하고 발우공양을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이미 옛말이다.

편안하게 쉬는 ‘휴식형’ 템플스테이를 통해 말없이 환대하는 사찰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공양 시간에 밥을 함께 먹고 싶으면 먹고 예불도 원할 때만 참여하면 된다. 심지어 차만 마시고 돌아가도 된다. “필요할 때 다가가되 강요하지 않는다”는 태도가 기본이다.


2025년 불교 관련 인문서 베스트셀러./예스24


‘불교 열풍’이 확산되면서 서점가에도 새로운 트렌드가 나타나고 있다. 예스24에 따르면 불교 인문서의 인기를 주도한 대표 도서 '초역 부처의 말'은 2025년(1.1~4.22) 판매량 기준 종합 베스트셀러 2위에 등극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에 뒤이어 2위를 차지한 '초역 부처의 말'은 삶에 지친 이들을 위한 부처의 따뜻한 위로를 전하며, 2024년 5월 출간 이후 연내 9주 연속 종합 20위권에 자리한 바 있다.

특히 올해 1월에는 인기 아이돌 가수 장원영이 이 책을 추천해 다시 역주행의 기록을 썼다. 언급 당일에만 전일 대비 20배(1983.3%)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1월 전체로는 전월 대비 15배(1418.8%) 판매가 급증했고, 언급 이후 14주 연속(1월 3주~4월 3주)으로 ‘인문’ 분야 1위 자리를 수성했다.

2030 독자의 비율은 30%를 차지하며 전년 대비 약 7%p 상승해 젊은 세대의 뜨거운 관심을 증명했다.

깨달음을 찾아 나선 한 청년의 여정을 그린 헤르만 헤세의 소설 '싯다르타'는 2년 연속 판매 상승세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43.4% 판매가 늘었던 2024년에 이어 올해는 148% 판매가 급증했고, 특히 2030세대가 올해 구매자의 절반 가까이(43.1%)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불교 인문서 판매 약 19배 급증이외에도 부처의 가르침을 통해 독자들의 마음에 평화의 꽃을 피게 하는 여러 책들이 인기를 얻었다. ‘불교’, ‘부처’ 등 불교 관련 키워드를 토대로 한 인문 분야 도서 분석 시, 올해 불교 관련 인문서의 판매량은 전년 동기(1.1~4.22) 대비 19배(1878.6%)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평생을 경전 연구에 몰두한 정운스님의 <법구경 마음공부>는 6위에 자리했다. 이 책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말로 경전을 전하며, 복잡하게 얽힌 마음의 실타래를 풀어주는 책으로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았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셰프들의 테이블> 화제의 주인공이자 사찰요리 명장 정관스님의 신간 <정관스님 나의 음식>은 3월 출간과 동시에 가정살림 분야 3위를 차지했다.

사계절 사찰음식 레시피와 함께 삶을 정갈히 돌보는 법이 에세이로 소개된다. ‘불교계 일타강사’ 원영스님의 <이제서야 이해되는 금강경>도 출간과 함께 4월 4주차 ‘불교’ 분야 베스트셀러 7위에 올랐다.

예스24 이주은 종교 PD는 “급변하는 사회에서 지친 마음을 달래고 평온함을 찾기 위해 2030세대를 비롯한 많은 독자들이 불교 관련서를 찾고 있다”라며 “미디어나 박람회 등에서 유입된 초심자들을 위한 불교 인문서를 비롯해 삶의 방향성을 제안하는 스님들의 에세이 등이 다양한 주제로 출간되며 큰 인기를 얻고 있다”라고 전했다.
믿음의 대상에서 활용의 대상으로 불교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 젊은 세대는 불교를 믿지는 않아도 소비는 한다. 이들에게 불교는 신앙의 대상이 아니다. 불교의 가르침을 일상에 적용해 삶의 태도로 여기고 이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드러내는 것까지가 젊은 세대가 불교를 찾는 방식이다.

강제성 없이 “각자의 부처를 찾으라” 말하는 불교의 태도는 젊은 세대가 지향하는 관계 맺기 방식과 절묘하게 맞물린다. 건강한 삶을 위해 자신의 인생 속도를 찾고 시끄러운 내면을 비우는 트렌드와도 일치한다.

‘트렌드 코리아 2025년’에선 올해 키워드 중 하나로 ‘무해력(無害力)’을 꼽았다. 무해함이 주는 힘이다. 세상과 주변에 자극이나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순수와 온화함으로 주위를 감싸 안는 존재를 가리킨다. 서로를 향해 날 선 비난과 갈등을 부추기는 시대에 안정감을 주는 힘이다.

경쟁사회를 사는 이들에게 불교는 안전지대에 가깝다. “비우면 채워진다”, “성취를 늘리지 말고 욕망을 줄이라”는 불교의 메시지는 젊은 세대의 불안을 잠재우는 역할을 한다.

이들은 명상과 참선을 통해 자신을 조절하고 ‘초역부처의 말’을 읽으며 불안을 다스리는 법을 배운다. 젊은 세대는 종교를 신앙이 아닌 라이프스타일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다.

불교계도 포교의 방식을 바꾸고 있다. “어떻게 전도할까”보다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에게 위로와 해탈의 창구가 되겠다는 것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문광스님은 “한국 사회는 인생의 그래프가 늘 우상향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다”며 “누구에게나 인생의 그래프가 떨어지는 시기가 있는데 불교는 그들에게 ‘괜찮다, 쉬어가도 된다, 다른 풍경을 보라’고 말한다. 그 한마디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에게 위로가 되고있다”고 했다.


김영은 기자 [email protected]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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