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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문광스님 인터뷰
제니 'ZEN' 뮤직비디오 해석한 영상 화제

"힙합이나 재즈와 비슷한 해체주의적 성향"
"불교는 뿌리를 뽑는 종교"
[커버스토리 : 문광스님 인터뷰]


사진=이승재 기자

“스님께서 해석을 너무 잘해주셔서 저는 이제 이거(ZEN)에 대해 아무 말도 안 하려고요.”

가수 제니는 올해 불교를 주제로 한 노래 ‘ZEN(젠)’을 들고 나왔다. 가사에 담긴 메시지뿐만 아니라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모든 장면이 불교적인 상징성을 담고 있었다.

이 뮤직비디오만큼이나 화제가 된 영상이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문광스님이 불교적 관점에서 제니의 뮤직비디오를 해석한 영상은 조회수 46만 회를 기록했다.

짧은 쇼츠 영상은 150만 조회수를 넘겼고 댓글엔 “해석도 기획도 힙하다”는 찬사가 이어졌다. 제니도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영상에 대한 소감을 남겼다.

불교가 하나의 트렌드이자 문화가 된 데에는 조계종의 역할이 컸다. 젊은 세대의 방식으로 소통했고 현대인에게 필요한 불교의 메시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했다.

지난 4월 23일 문광스님을 만나 “종교가 이렇게 힙해져도 되는 건지” 물었다. 스님이 답했다. “불교는 원래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고 합니다.” 다음은 문광스님과의 일문일답.

-최근 젊은 세대가 불교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불교는 기본적으로 ‘믿어야 한다’는 강제성이 적은 종교입니다. 절대자나 유일신이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나 안에 ‘불성’, 즉 부처를 갖고 있다는 거죠. 외부의 석가모니보다 내 안의 부처를 찾는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내 안에 이미 답이 있다’는 철학이 사람을 자유롭게 해줍니다. 종교는 결국 인간을 자유롭고 행복하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불교 철학 중 청년들이 특히 공감하는 메시지가 있다면요.

“‘안분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행복을 공식으로 보면 ‘행복=성취÷욕망’이라고 합니다. 불교는 분자인 성취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분모인 욕망을 줄이는 종교입니다.

성취를 아무리 늘려도 분모인 욕망이 함께 커지면 행복은 늘지 않잖아요.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말라는 게 아니라 “가져도 되고 안 가져도 괜찮다”는 걸 아는 겁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선까지는 최선을 다하고 그다음은 내려놓는 것. 그게 불교에서 말하는 인과입니다. 바쁘게 성취하며 경쟁적인 삶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그런 메시지가 위안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신을 믿는 사람들이 줄어듭니다. AI 시대라서일까요. 현재를 살라고 말하는 불교는 현대인들에게 종교보다도 삶의 태도이자 실천의 방식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맞아요. 불교는 사후의 문제보다 지금, 현재에 집중하라고 해요. 지금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내 마음’이에요. 불교는 정(定)과 혜(慧), 즉 선정과 지혜를 말해요. 생각만 많다고 지혜가 생기지 않습니다. 생각을 쉬고 마음이 고요해졌을 때 지혜가 생겨요.

물 웅덩이가 고여 있을 때 무언가를 찾기 위해 마구 휘저으면 아무것도 안 보여요. 그런데 막대를 빼고 가만히 두면 물이 가라앉고 그제야 하늘에 떠 있던 달이 비치잖아요? 마음도 마찬가지예요. 마음이 흐릴 땐 아무것도 안 보여요. 마음이 비워졌을 때 지혜가 생기는 겁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아예 그 자리에서 잠시 떠나보는 것, 문제의 중심에서 벗어나 무심상태로 자신을 비우는 것도 불교적 방식이에요.”

*정(定, 선정) : 마음을 고요히 집중시키는 수행 상태. 사유 이전의 고요함
*혜(慧, 지혜) : 바르게 분별하고 진리를 꿰뚫는 지혜. 선정과 함께 수행의 두 축



불교가 힙해졌습니다. 부처상에 헤드셋을 씌우고 “극락도 락이다” 등 자의적인 해석이 생겨나는 분위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불교에는 ‘살불살조(殺佛殺祖)’라는 말이 있어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스승인 조사스님을 만나면 조사스님을 죽이라는 뜻이죠. 바깥의 부처보다 내 안의 부처가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아무리 경전이나 상징이 있어도 그게 나를 억압하는 순간 내 해탈을 방해하는 거예요. 그래서 부처 얼굴에 헤드셋을 씌우든 떡으로 만들든 괜찮아요. 그걸 보고 누군가가 ‘부처님을 떠올렸다’면 그게 부처예요.

-그렇다면 깨달음은 어디서 얻을 수 있나요.

“만해스님(한용운)이 쓴 시조 중 이런 구절이 있어요. ‘따스한 볕 등에 지고 유마경 읽노라니. 가볍게 나는 꽃잎이 글자를 가린다. 구태여 꽃 밑 글자를 읽어 무엇하리오’ 봄날 밖에서 경전 공부를 하는데 꽃잎이 경전에 내려 글자를 가린 거죠. 하지만 자연과 일상 자체가 법문이기 때문에 굳이 경전의 글자를 읽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예요. 그게 ‘법이 경전 밖에도 있다’는 불교의 본질적인 태도입니다.”

-불교의 본질 자체가 해체주의적이네요.

“그렇죠. 불교는 기존의 형식을 해체하는 경향이 있어서 창의적인 구조예요. 힙합이나 재즈, 포스트모더니즘과 비슷해요. 불교는 유교·도교와 다르게 ‘뿌리를 뽑는 종교’라고 합니다. 유교는 뿌리를 심고(유식근), 도교는 뿌리를 기르고(도배근), 불교는 아예 ‘그 뿌리, 본래 없어’라고 말하죠(석발근). 기존의 생각, ‘이것만이 옳다’는 틀에서 벗어나게 도와줘요.”

-굿즈 문화가 번지면서 불교가 자본주의적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불교는 ‘그거 왜 사, 돈 아깝잖아’ 하지 않아요. 불교는 ‘사봐. 사보고 네가 직접 깨달아봐’라고 합니다. 지혜(般若)는 많이 경험해본 사람에게서 나오는 거예요. 자각은 금지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체험에서 오는 겁니다. 실패해 보고 해보다가 ‘아 이건 별거 아니네’ 하고 알게 되는 거죠. 자기 경험을 통해 알게 되는 게 진짜 지혜예요. 그래서 굿즈를 소비한다고 해서 무조건 비판할 게 아니라 그걸 통해 ‘나한테 필요한 게 뭔지’를 알아가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어요.”

-제니 뮤직비디오 해석을 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BTN 유튜브팀의 20대 막내 PD가 제안했어요. 불교의 상징이 어렵다보니 틀린 해석을 한 영상들이 있었나봐요. 막내 PD가 보더니 ‘스님, 이건 선(禪)인데 불교에서 이 정도는 직접 해줘야 되는 거 아니에요?’ 하고 연락이 왔어요. 밤에 영상을 보고 다음 날 바로 녹화했죠.”

-지금 한국 사회는 정치·사회·세대 간 분열이 심각합니다. 불교는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나요.

“을사년이잖아요. 병오, 정미까지 3년은 불(火)의 기운이 강한 해예요. 불은 갈등, 폭발, 분노, 드러남을 상징합니다. 역사적으로도 을사사화, 을사늑약 같은 일이 일어난 해죠. 그런데 저는 이걸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아요. 불은 드러나게 하고 정화시키는 힘도 있으니까요. 숨었던 게 다 나오고 한번 타오른 다음엔 다시 재정비가 필요해지죠.”

-흘러가는 대로 두면 갈등이 해결되는 걸까요.

“불교에는 ‘두 번째 화살은 맞지 말라’는 말이 있어요. 첫 번째 화살, 즉 실수는 괜찮아요. 그런데 똑같은 방식으로 또 다투고 망하면 안 되죠. 이걸 막기 위해선 복기(復棋)가 필요해요.

바둑도 끝나고 나면 돌이켜 보잖아요. ‘여기서 수를 잘못 뒀구나.’ 사회도 마찬가지예요. 갈등이 있었다면 그다음엔 정견(正見)으로 돌아봐야 해요. 정견은 ‘무심’ 상태에서 바라보는 정확한 인식을 말해요. 그런데 지금 문제는 알고리즘이 한쪽 이야기만 듣게 만든다는 거예요. 귀를 닫고 싸우죠.

불교는 그걸 경계해요. 의무적으로라도 귀를 열고 상대방 이야기를 들어야 해요. 그게 화쟁(和諍), 일심의 시작입니다. 싸움은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같은 방식으로 또 싸우면 그건 두 번째 화살이 되는 거죠. 우리는 그 화살을 맞지 않도록 지혜롭게 복기해야 합니다.”

김영은 기자, 고송희 인턴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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