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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대기자
옛 위구르족은 법을 숭배했다. 법률을 ‘문자로 기록한 경전’으로 여겼다. 그들의 종교 마니교는 신(神)을 “모든 법률의 왕”으로 불렀다. 21세기 한국도 법이 공동체의 불화를 해결하는 최종적 권위를 갖는다는 점에서 위구르족 못지않게 법치를 존중하는 나라다. 80년 전 해방된 이 나라에 미국이 이식한 연약한 민주주의는 위기 때마다 법치의 힘으로 튼튼하게 컸다. 국정을 농단한 대통령, 망상에 빠져 비상계엄을 일으킨 대통령을 헌법에 적힌 탄핵 절차에 따라 파면하고 헌정을 평화적으로 복원시켰다. 민주주의를 살려냈다. 트럼프 탄핵 여론이 들끓는 미국이 부러워할 정도다.

대법, 선거법 유죄 취지 파기환송
민주, 이 후보 재판 중지 입법 나서
윤석열 헌법 위반으로 파면하고
이재명은 예외로 하자는 것인가

이런 법치의 나라라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선거법 위반 사건의 2심 무죄를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대법원의 판결은 존중돼야 한다. 그런데 민주당은 “사법 쿠데타”라며 조희대 대법원장의 탄핵을 추진할 태세다. 선거법을 개정해 허위사실공표죄를 삭제하고, 형사소송법을 고쳐 이 후보 대통령 당선 뒤 5개 재판을 중지시키려고 한다. 특정인을 위해 규칙을 바꾸는 건 법치주의를 거부하는 행위다. 17세기 영국 대법관인 에드워드 코크는 ‘법의 지배(rule of law)’ 원칙을 세웠다. 핵심은 “누구도 자신의 사건에서 재판관이 될 수 없다(Nemo iudex in causa sua)”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 원칙을 허물고 있다.

속전속결에 나선 서울고법은 6·3 대선 전에 유죄 선고를 내릴 것이다. 이 후보는 대법원에 재상고로 맞서고 불리해진 조건에서 유권자의 판단을 받게 된다. 그래도 당선이 유력하다. 이번 대선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훼손한 헌정 질서를 회복하는 엄중한 심판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을 대선후보로 확정한 국민의힘은 윤 전 대통령과 절연하지 않고 반(反)이재명만 외치고 있다. 민심과 멀어지면 정권 재창출은 어렵다. 물론 임기 단축 개헌과 통합 거국내각을 내건 한덕수 전 대통령 권한대행 중심의 빅텐트 단일화가 중도층을 움직여 바람을 일으킬 수도 있다.

이 후보가 당선되면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84조의 해석이 새 정권의 생존 여부를 가를 것이다. 헌재의 권한쟁의 심판에서 재판관들은 현직 국가 수반을 내란도 아니고 “김문기…” “백현동…” 정도의 오래전 발언을 문제삼아 대법원이 확정판결로 파면시키는 것이 합당한지를 고민할 것이다. 짧은 기간에 대선을 두 번 실시해야 하는 국가적 부담도 감안할 것이다. 이 후보는 모든 사법절차에 협조하고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승복해야 한다. 그게 법치주의고 헌법의 수호자인 대통령의 의무다. 그는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의 주역이었다. 정적에게는 추상같은 법의 칼날을 들이대고, 나는 법을 고쳐서 처벌받지 않겠다는 것은 스스로를 특권계급으로 여기는 것이다. 헌법 11조 2항은 특권계급의 창설을 금지하고 있다.

물론 사법부의 잘못도 있다. 1심에서만 2년2개월을 끌더니 2년6개월 만에 대선을 코앞에 두고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과연 대법관들이 6만 쪽의 기록을 단 9일 만에 검토하고 충분히 숙고했는지에 대해 법원 안팎에서 의문이 쏟아지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 10명은 유죄,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명한 2명은 무죄로 판단했다. 법리보다 진영에 따른 졸속 판결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법부의 결정을 방해하는 무리수를 두면 안 된다. 민주당이 이 후보를 방어하는 위인설법에 대한 대통령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를 봉쇄할 거라는 얘기가 나온다. 현재 14명인 국무위원에 대한 줄탄핵으로 정족수 11명에 미달하게 되면 그런 상황이 온다. 이건 정부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민주당은 지금 ‘포위된 요새론’에 사로잡혀 있다. 기득권에 포위돼 있으니 우리의 정의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을 해도 용서된다는 것이다. 불법 친위 쿠데타로 자멸한 윤석열의 전철을 밟겠다는 것인가. 2000년 미국 대통령선거의 당락이 걸린 플로리다주 재검표가 한 달 이상 끌면서 혼란이 거듭되자 연방대법원은 중단을 명령했다. 역전승을 예상했던 앨 고어 후보는 억울했지만 즉각 승복하고 대선 패배를 인정했다. 공동체의 분열을 막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는 자세에서 법치국가 미국의 저력이 입증됐다. 민주당이 수권세력답게 자제와 신중함을 잃지 않기 바란다.

대통령은 헌법의 수호자다.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는 1300년 전의 위구르인 못지않게 법을 경전으로 모셔야 할 것이다. 이런 태도는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 심판 과정에서 운명을 가르는 중대한 판단 기준이 될 것이다. 선거법 유죄 선고를 받은 후보자가 이걸 무효로 만들려고 자신를 위해 위인설법을 하고, 대법원장을 탄핵하고, 국무회의를 무력화한다면 헌재의 판단 과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누구도 자기 사건의 재판관이 될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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