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 일대에서 연등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뉴시스


한 스님이 조계사 가는 길에 낙원시장 근처 떡집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시루떡을 보고 주인에게 돈을 건네면서 떡을 달라고 했다. 그런데 주인은 손님 얼굴을 힐끗 쳐다보곤 못 들은 척했다. 스님이 두 번 세 번 재촉하는데도 주인은 계속 외면했다. 당황한 스님은 가게 안을 살피다 벽에 걸린 십자가를 발견했다. ‘스님에겐 떡을 팔지 않겠다’는 기독교 신자의 뜻을 알아챈 그는 그냥 돌아섰다.

□종교 간 반목과 편견을 방치해선 안 되겠다고 생각한 스님은 주교님과 목사님을 찾아가 고민을 나눴다. 이어 불교 행사에 다른 종교인을 초청하고 자신도 성당과 교회에 나갔다. 이런 흐름이 이어져 1965년 10월 서울 광장동 용당산호텔에서 6대 종단 지도자의 첫 모임이 열렸다. 떡집에서 문전박대당한 이가 바로 능가 스님이고, 종교 화합의 뜻을 함께한 이가 노기남 주교와 강원용 목사다. 다종교사회인 우리나라가 화합의 모범 사례가 될 수 있었던 건 이런 노력 덕분이다.

□대한불교조계종은 2010년 성탄절부터 아기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도 열었다. 이에 화답해 천주교와 기독교에서도 매년 부처님 오신 날 축하 메시지를 내왔다. 올해도 정순택 천주교 대주교가 불기 2569년 부처님 오신 날(5일)을 맞아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에게 “서로의 차이보다 공통된 가치를 먼저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을 때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뜻이 더욱 깊이 실현될 것”이라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앞서 진우스님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도 애도했다.

□서로 믿는 신과 세계관이 전혀 다른 종교도 이처럼 상대방을 존중하고 화합하며 산다. 그런데 나라와 국민을 위해 나섰다는 똑같은 목표를 가진 우리 정치인들은 상대방을 아예 인정조차 하지 않고 극단적 혐오와 적대를 확대 재생산하면서 국민까지 갈라놓고 있다. 지지하는 당이 다르면 상종도 안 하는 세상이 됐다. 올해 부처님 오신 날 봉축 표어는 ‘세상에 평안을, 마음에 자비를’이다. 대선 후보들도 표를 얻으려고 절을 찾았다. 이들이 단 하루라도 평안하고 자비로운 정치를 보여주길 기대하는 건 너무 큰 욕심일까.

한국일보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48388 '제적예정통보' 순천향·을지·건양 의대생들, 뒤늦게 수업참여 의향(종합) 랭크뉴스 2025.05.05
48387 중국 관광지 '짝퉁 후지산' 논란‥언덕에 흰색 페인트칠 랭크뉴스 2025.05.05
48386 내가 찍은 우리 동네 맛집, 서울시가 밀키트로 만들어 판다 랭크뉴스 2025.05.05
48385 민주당 "조희대 대법원장 탄핵 추진은 보류" 랭크뉴스 2025.05.05
48384 완도 한 리조트, 일산화탄소 추정 가스 누출…14명 집단 중독 랭크뉴스 2025.05.05
48383 강요 대신 위로로…MZ의 ‘안전지대’가 된 불교[부처, 깨달음이 트렌드가 되기까지] 랭크뉴스 2025.05.05
48382 홍준표 “당이 날 버려…인생 3막 위해 미국 다녀올 것” 랭크뉴스 2025.05.05
48381 "검정 바지에 빨간 잠바" 이 문자, 6일에 1명씩 가족 품 보냈다 랭크뉴스 2025.05.05
48380 3선 못하는 트럼프 "후계자 1순위는 밴스 부통령" 랭크뉴스 2025.05.05
48379 “뭣이 중한디”… 국힘, 김문수에 ‘한덕수와 단일화’ 압박 랭크뉴스 2025.05.05
48378 ‘김문수와 단일화’ 올인 한덕수, 대선 코앞인데 아직 공약도 안 내놔 랭크뉴스 2025.05.05
48377 중국인에게 쓰이는 '혈세'...여전히 구멍난 '건강보험' 랭크뉴스 2025.05.05
48376 국민의힘 의원들 "11일 전 단일화"… 김문수측 "당내 쿠데타" 랭크뉴스 2025.05.05
48375 텃밭서 일하다…남편 운전 굴착기에 치인 아내 참변 랭크뉴스 2025.05.05
48374 "그 돈이면 일본 갈래"…'바가지 제주도' 손절한 줄 알았는데 다시 선택한 이유는 랭크뉴스 2025.05.05
48373 국힘 경선룰 적용 시 한덕수 49.7%, 김문수 2배 이상 앞선다[리얼미터] 랭크뉴스 2025.05.05
48372 [단독] 김문수측 장동혁, 사무총장 고사…'단일화파' 이양수 유임 랭크뉴스 2025.05.05
48371 민주 "후보들 공판일 모두 대선뒤로"…'李파기환송심 연기' 요구 랭크뉴스 2025.05.05
48370 軍 최고 ‘작전통’ 보직은…합동작전과장→작전1처장→작전부장→작전본부장[이현호 기자의 밀리터리!톡] 랭크뉴스 2025.05.05
48369 한덕수, 김문수에 “오늘 중 만나자” 김문수 측 “정식 제안 아니었다” 단일화 신경전 랭크뉴스 2025.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