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군불떼는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시 국민연금이 시장 참여할듯
원리금보장 디폴트옵션 韓이 유일
도입시 국민연금이 시장 참여할듯
원리금보장 디폴트옵션 韓이 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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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정부와 정치권이 퇴직연금의 운용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기금형 운용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의 퇴직연금 수익률은 기금형과 계약형 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금형과 계약형의 수익률 차이가 크지 않은 만큼 기금형으로 제도를 바꾸기에 앞서 원리금 상품에 치중된 계약형의 상품 다양화 등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4일 금융투자 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일본의 기금형 수익률은 약 9%로 계약형(11%)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0년 간 평균 수익률도 기금형 3.63%, 계약형 3.77%로 집계되면서 계약형 퇴직연금이 기금형 대비 우위를 보이고 있다.
계약형 퇴직연금은 가입자가 사업자와 직접 계약을 맺고 투자 상품을 선택해 퇴직연금을 운용한다. 반면 기금형 퇴직연금은 사내에 별도 기금운용위원회(수탁법인 이사회)를 설립하고 퇴직금을 운용 전문조직에 위탁하는 방식이다.
최근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퇴직연금 기금화 입법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계약형 퇴직연금은 개인에게 운용을 맡기는 탓에 수익률이 낮은 원금 보장 상품에 자금이 쏠리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이 추산한 퇴직연금의 2023년 환산 누적 수익률은 2.35%다. 같은 기간 국민연금 수익률 6.86%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가 도입될 경우 국민연금이 시장에 들어올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조건이 다른 상황에서 퇴직연금과 국민연금의 수익률을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이 맞냐는 비판도 나온다. 퇴직연금의 경우 가입자가 직접 운용해 적립금의 90%가 원리금보장상품에 편중돼 있고 중도 인출이 가능한 반면 국민연금은 전문가가 운용하고 장기 포트폴리오를 구축한 상황에서 수익률의 직접적인 비교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금융투자 업계의 고위 관계자는 “퇴직연금과 국민연금의 운용 환경이 다른 것을 고려치 않고 수익률만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동일한 국가 안에서 계약형 퇴직연금과 기금형 퇴직연금 간 수익률을 비교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영국에서도 최근 5년 평균수익률은 계약형 약 6%, 기금형 5.5%로 계약형이 소폭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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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금 보장 디폴트옵션…韓 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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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가에서는 퇴직연금의 저조한 수익률을 원리금 보장 디폴트옵션에서 찾는다. 퇴직연금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는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됐다. 디폴트옵션은 확정기여(DC)형이나 개인형 퇴직연금(IRP) 가입자가 적립금 운용 방법을 지시하지 않으면 퇴직연금 사업자가 사전에 약속한 방식대로 자동 운용하는 제도다. 당초 디폴트옵션 도입으로 퇴직연금 시장의 자금이 실적 배당형(원리금 비보장) 상품으로 이동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10명 중 9명은 은행 예금과 같은 원리금 보장 상품을 택했다.
가입자들이 원리금 보장 상품을 택한 것에 대해서는 여러 분석이 나왔다. 먼저 높은 수익률보다 노후 생활비를 잃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상품 선택의 기준이 됐다는 것이다. 또 제도 시행 당시 금리가 높았던 점도 원금 보장 상품을 택하는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금융투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아무래도 중도 인출이 가능하다보니 단기 손실을 투자자들이 견디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며 “그러다보니 원리금 보장 상품으로 몰린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원리금 보장 상품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디폴트옵션 도입 국가 가운데 원리금 보장 상품을 제공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미국·영국·호주 등 우리나라가 모델로 삼은 퇴직연금 선진국 대부분이 실적 배당형 상품만으로 디폴트옵션을 꾸린다. 일본은 디폴트옵션에 원리금 보장 상품을 도입했다가 수익률이 저하되면서 이를 철회한 바 있다. 2018년 디폴트옵션을 시행할 때 일본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원리금 보장형 상품을 편입했다. 그 결과 디폴트옵션을 도입한 이후에도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투자금이 쏠리면서 수익률이 하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