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끝은 부동산"…청년들 발품 팔며 투자처 탐색
부동산 투자로 '경제적 자유' 꿈꿔…입지·정책 '열공'
중개사들 "임장 크루 탓 진짜 손님 놓쳐"…임장비 도입 추진
부동산 투자로 '경제적 자유' 꿈꿔…입지·정책 '열공'
중개사들 "임장 크루 탓 진짜 손님 놓쳐"…임장비 도입 추진
임장 스터디
[임장스터디 모집글 캡처. DB 및 재판매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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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승연 기자 = "2000년대 후반 서울에 아주 작은 아파트를 당시 2억원대에 샀는데 그걸로 큰 덕을 봤죠. 그것을 계기로 부동산 투자를 시작했습니다."
노동절인 지난 1일 서울 광진구 한 카페에서 열린 부동산 임장(臨場) 스터디. 40대의 리더 A씨는 이렇게 자신을 소개했다.
온라인을 통해 모집된 해당 스터디의 회원은 약 100명이며, 이날 오프라인 스터디에는 기자 포함 총 5명이 참가했다.
결혼을 앞둔 30대 중반 커플은 투자 가치가 높은 신혼집을 찾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또 다른 30대 후반 남성은 소액으로 투자할 빌라를 찾고 있다며 스터디 직전에 인근 동네 임장을 돌며 부동산 중개업자를 만나고 왔다고 밝혔다.
최근 경제에 관심 있는 2030 세대에서 부동산 임장 스터디가 인기다. 임장은 부동산을 사려 할 때 직접 현장에 가서 탐방하는 활동을 뜻한다.
청년들은 퇴근 이후, 주말 아침 등을 활용, 발품을 팔며 투자할 매물을 찾고 있다.
젊은층은 어쩌다 부동산 공부에 열광하게 됐을까.
임장 스터디
(서울=연합뉴스) 이승연 기자 = 지난 1일 서울 광진구에서 진행된 한 임장 스터디에서 참가자들이 골목을 둘러보고 있다. 2025.5.3
(서울=연합뉴스) 이승연 기자 = 지난 1일 서울 광진구에서 진행된 한 임장 스터디에서 참가자들이 골목을 둘러보고 있다. 2025.5.3
임장 스터디 가보니…지도·정책 짚으며 '열공'
기자가 1일 참가한 부동산 임장 스터디에서 참가자들은 각자 눈여겨보고 있던 매물을 지도에서 하나씩 짚으며 분석에 나섰다. 대지 지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재개발 호재가 있는지, 인근 지역에 더 유력한 매물이 있는지 등 각자 지식을 동원해 한마디씩 보탰다. 노트북으로 각종 정책 보도자료와 뉴스 기사를 띄워 보충 설명하기도 했다.
이들은 한 시간 넘게 입지 공부를 한 뒤 카페를 나와 인근 동네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리더 A씨는 "이 동네는 서울에서 흔치 않게 대형 아파트가 거의 없는 곳"이라며 "투자가치가 꽤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골목 구석구석을 돌며 동네 분위기를 파악했고, 괜찮은 매물을 만나면 외관 사진을 찍거나 메모를 남기기도 했다.
이날 스터디를 주도한 A씨는 참가자 1인당 1만5천원씩 받아 갔다. 이 정도는 저렴한 수준이다. 전문 부동산 컨설턴트를 동원해 5만∼10만원을 걷는 임장 스터디도 온라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스터디마다 임장을 도는 스타일은 천차만별이다. 리더 혹은 전문강사가 주도하는 스터디가 있는가 하면, 회원끼리 손님으로 위장해 부동산 중개소를 찾아가 매물을 보는 경우도 있다.
"외관부터 입주환경, 상권까지 현장에서 진짜 체크해야 할 것들을 알려드립니다", "경매는 현장에서 판가름 납니다. ○○동 임장 같이 가요", "드디어 내 집 마련의 기회가 오고 있습니다. 공부하고 임장 다닌 사람만이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지금 걷지 않으면 뛰어야 한다. 다음 상승장을 대비하는 최적의 내 집 마련 전략을 제공한다" 등은 각 임장 스터디가 회원 모집 공고에 내건 홍보 문구들이다.
[임장스터디 소개글 캡처. DB 및 재판매 금지]
저성장 시대 살아가는 청년들…"경제적 자유 얻고파"
이러한 임장 스터디의 인기는 주식·가상자산 등 변동성 큰 투자 수단에 대한 불안과 부동산 가격 급등기에 벌어진 또래 간 자산 격차에 대한 위기감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임장 스터디에 가입하는 이들은 자기소개란에 투자 목표로 '서울에 집 마련', '불로소득', '경제적 자유', '노후 준비' 등을 내세웠다.
20대 직장인 김모 씨는 "투자의 끝은 결국 '부동산'이라고 하지 않나. 차근차근 배워서 '내집 마련' 하고 싶다"고 했고, 30대 직장인 이모 씨는 "파이프라인(자동적·지속적 수익 흐름)을 만들어서 경제적 자유를 얻고 싶다"고 썼다.
더 이상 월급만으로 미래를 보장받기 어려운 저성장 시대를 살아가는 고민도 읽을 수 있다.
서울 동작구에 거주하는 이모 씨는 자기소개란에 "근로소득으로 자산 불리는 속도와 투자 소득으로 불리는 속도가 너무 차이 나서"라고, 경기 성남시에 거주하는 고모 씨는 "울면서 일하고 싶지 않다. 화폐보다 자산이다"라고 가입 이유를 적었다.
또 "주식이 반토막 나서", "미장(미국 주식 시장)도 믿을 게 못 되는 것 같아서", "코인은 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등을 가입 이유로 꼽는 이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분기 서울 아파트 거래량 2만건 육박…4년 만에 최대
(서울=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 금리 인하 기대감과 토지 거래 허가 구역 '잠시 해제' 등의 영향으로 1분기 서울 아파트 거래량이 4년 만에 가장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1분기(1∼3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1만9천376건으로 집계됐다. 1분기 기준으로 지난 2021년 1분기(1만3천799건) 이후 4년 만에 가장 많았다. 사진은 지난달 28일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2025.5.3.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 금리 인하 기대감과 토지 거래 허가 구역 '잠시 해제' 등의 영향으로 1분기 서울 아파트 거래량이 4년 만에 가장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1분기(1∼3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1만9천376건으로 집계됐다. 1분기 기준으로 지난 2021년 1분기(1만3천799건) 이후 4년 만에 가장 많았다. 사진은 지난달 28일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2025.5.3. [email protected]
국토연구원이 지난해 4월 국토·부동산 주요 이슈와 관련해 국민 2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젊은층일수록 주택에 대한 투자 가치를 거주 가치보다 높게 여겼다. 20대, 30대가 생각하는 주택의 투자가치 비중은 각각 34.1%, 33.2%로 40대(29.1%), 50·60대(28.8%)보다 높았다.
또 통계청 국가통계연구원이 지난 3월 발표한 '생애과정 이행에 대한 코호트별 비교 연구: 혼인·출산·주거' 보고서에 따르면 30대 초반 인구의 주거 양극화는 점차 심화하고 있다.
해당 조사는 1970∼80년대 태어난 세대가 각자 31∼35세일 때를 기준으로 월세·자가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 살펴본 것이다. 30대 초반에 월세·자가를 사는 인구 비중은 점차 높아지지만, 전세 비중은 아래 세대로 갈수록 우하향 곡선을 그렸다. 경제적 여력이 있는 청년들은 전세에서 자가로, 그렇지 못한 청년들은 전세에서 월세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직장인 이모(33) 씨는 "2019년 사회초년생 때 서울 변두리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해서 집을 산 친구가 있는데 지금 그 친구는 조식 주는 고급 아파트에 살고 있다"며 "그 친구를 따라 뒤늦게 집을 샀다가 상투 잡힌 애들은 다음 상승장을 내다보며 말 그대로 '존버'(최대한 버티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동산 임장 스터디 모집글
[취미·여가 플랫폼 프립 캡처. DB 및 재판매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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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개업자는 골머리…"임장비 받겠다"
임장 스터디 확산에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여러 채의 집을 보여줘도 거래로 이어지지 않아 헛수고는 물론, 진짜 고객을 놓치는 일도 생기는 탓이다.서울 영등포구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50대 이모 씨는 '임장 크루'(임장 다니는 사람들) 얘기를 꺼내자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이씨는 "집 보여준다고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열번, 스무번도 할 수 있다"며 "문제는 집을 보여주는 세입자·집주인들의 불만이 많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왜 보여주기만 하고 집이 나가질 않느냐'는 민원이 빗발친다"며 "그러다 보면 진짜 집을 사려는 손님한테 집을 못 보여주기도 하고, 세입자들한테 집 열어달라고 사정할 때마다 가슴이 떨린다"고 하소연했다.
이씨는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구역) 해제됐을 때는 난리도 아니었다"며 "정부 정책이 오락가락하니까 젊은이들이 더 안달인 듯 하다. 참 웃기는 세상"이라며 허탈해했다.
공인중개사라고 밝힌 인스타그램 이용자 'o2***'도 "우리의 인력 낭비는 두 번째 문제"라며 "(집이 팔릴 것이라는) 집주인의 희망회로 때문에 내가 사과해야 한다. 또한 본인 집이 인기 있다고 생각하고 덕분에 집값이 올라가는 경우도 있다"고 썼다.
1분기 서울 아파트 거래량 4년 만에 최대
(서울=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 지난달 28일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2025.5.3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 지난달 28일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2025.5.3 [email protected]
광진구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김을미(63) 씨도 임장 크루로 인한 피해가 크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딱 보면 임장 크루인지 아닌지 보인다"며 "보통 집을 살 사람이면 금액대, 구역 등 원하는 것이 명확하지만 그런 것 없이 두루뭉술하게 집을 보러 왔다고 하는 젊은이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끼리는 '젊은 사람들 오면 그냥 매물이 없다고 할까' 하는 얘기도 농담처럼 한다"며 "하지만 실제 손님일 수 있는데 어떻게 그러나. 다 보여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임장 스터디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지난달 한국공인중개사협회(공인중개사협회)는 임장 활동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임장 기본보수제'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매물 상담, 안내, 임장을 위한 이동 수단을 제공하는 만큼의 보수를 받겠다는 것이다.
김씨는 임장비 도입에 대해 "변호사, 세무사도 상담비를 받는데 공인중개사만 무료로 봉사하는 것 같다"며 찬성했다.
반면 이씨는 "고객들 반발이 클 것 같아 현실적으로 도입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투자 공부를 하는 젊은층이 자제하고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짚었다.
권대중 서강대 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2일 "2030세대의 부동산 스터디는 좋게 말하면 '내집 마련을 위한 선제적 시장 파악'일 수 있지만 나쁘게 본다면 '투기'가 될 수 있다"며 "경매 강사의 강의가 평생교육진흥법상 정식 등록되지 않은 불법 교육일 가능성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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