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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조희대 대법원장이 5월 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에 앞서 대법원 대법정에 입장해 자리에 앉아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됐다. 이번 상고심은 여러 모로 이례적이었다. 사법은 ‘실체적 공정성’ 못지않게 ‘외관의 공정성’도 중요하다. 과연 이번 판결은 공정했는가. 전원합의체 재판장인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묻는다.

소부에 배당됐던 사건이 왜 전원합의체로?

대법원은 4월 22일 오전 이 후보 사건을 오경미 대법관 등 4인으로 구성된 2부에 배당했다. 그러더니 두 시간 만에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전합)에 회부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사실상 직권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대법관 4인으로 구성된 소부는 전원이 합의해야 선고할 수 있다.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법원행정처장 제외) 등 13명으로 구성되는 전합은 과반수가 합의하면 선고가 가능하다.

당초 배당됐던 2부의 오경미 대법관은 5월 1일 전합 선고에서 이흥구 대법관과 함께 반대의견을 낸 2인이다. 오 대법관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명한 마지막 대법관이다. 조 대법원장은 진보적 성향을 띤 오 대법관 때문에 소부에서 합의가 지연될까봐 전합으로 넘긴 것 아닌가.

이례적인 초고속 심리·선고의 배경은?

조 대법원장은 전합 회부 당일 심리를 시작했다. 그리고 전합 회부 9일 만에 선고를 강행했다.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초고속이다. 오죽하면 현직 법관들마저 실명 비판에 나섰겠는가.

부산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2일 법원 내부망(코트넷)에 “대법원은 특정사건에 관해 매우 이례적인 절차를 통해 항소심의 무죄 판단을 뒤집는 판결을 선고했다”며 “이러한 ‘이례성’은 결국 정치적으로 편향됐다는 비판을 초래할 수 있다”는 글을 올렸다.

청주지법의 한 판사도 “1,2차 합의기일을 가진 후 1주일 후에 판결을 선고했다. 30여년 동안 법관으로 근무하면서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초고속 절차 진행”이라고 비판했다. 판사들도 납득하지 못하는 재판을 주권자들이 받아들이겠는가.

법률심을 맡는 대법원이 왜 사실심을?

한국 사법체계에서 1심과 2심은 사실관계를 다투는 사실심이다. 반면 대법원 상고심은 원심이 법리를 잘못 적용했는지(법리 오해), 증거 수집·채택 과정이 위법했는지(채증법칙 위반)를 따지는 법률심이다. 그런데 이 후보 상고심은 1심 판결문을 사실상 ‘복붙(복사 후 붙여넣기)’하며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을 길게 언급했다.

하승수 변호사는 페이스북에서 “법률심의 판결문답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이 어느 점에서 법리 오해를 하고 채증법칙을 위반했는지 지적하는 판결문이 아니었다”면서 “대법원은 마치 사실심의 판결문처럼 판결문이 작성된 이유에 대해 해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변호사)도 “파기환송을 했지만 고등법원에서 사실관계에 대해 더 이상 다툴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고법은) 그저 형만 결정하라는 취지”라고 비판했다.

‘6·3·3 원칙’을 왜 낙선자에게?

조 대법원장은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의 6·3·3 원칙(1심 6개월-항소심 3개월-상고심 3개월) 준수를 강조해왔다. 이 원칙은 본래 당선자를 겨냥한 것이다. 선출된 공직자의 재판을 신속히 처리함으로써, 선거법 위반자들이 임기를 사실상 다 채우는 사태를 막자는 취지다.

이번에 대법원은 당선자가 아닌 낙선자를 타깃으로 삼았다. 더욱이 해당 낙선자는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차기 대선의 유력 후보이다. 조 대법원장은 국민주권주의를 무시하고 대선개입을 시도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이 선례가 된다고?

대법원은 ‘속도전’ 배경을 설명하며 2000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대선 재검표 사건(조지 부시 대 앨 고어)을 선례로 들었다. “대선 직후 재검표를 둘러싸고 극심한 선거혼란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연방대법원이 3~4일 만에 재검표 중단을 명해 혼란을 종식시켰다”는 것이다.

당시 판결은 대법원이 밝힌 대로 “대선 직후” 상황을 다룬 것이고, 이번 판결은 “3년 전 대선”을 다룬 것이다. 더욱이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은 미 사법 역사상 가장 논란이 많은 판결 중 하나로 꼽힌다.

헌법재판소와의 경쟁심이 발동했나?

대법원은 이번 사건 선고의 생중계를 허용했다. 전원합의체 선고가 생중계된 사례는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 등 극히 드물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이례적 결정의 배경으로 ‘헌법재판소와의 경쟁 관계’를 꼽는다. 최근 윤석열 탄핵심판에서 문형배 당시 헌재소장 대행의 선고문이 국민적 주목을 받으면서 경쟁심이 발동했다는 것이다.

대법원과 헌재의 ‘파워 게임’은 오래된 이야기다.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두 기관은 ‘한정위헌’을 둘러싸고 갈등을 이어왔다. 한정위헌이란, 특정 법조항을 위헌으로 판단하는 대신 ‘이 조항을 이렇게 해석하거나 적용하면 위헌’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헌재는 이를 근거로 법원 판결을 취소한 사례가 있다. 대법원은 그러나 한정위헌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조 대법원장에게 미국 법학자 프레드 로델의 말을 전하고 싶다.

부족 시대에는 주술사가 있었다. 중세에는 성직자가 있었다. 오늘날에는 법률가가 있다. 어느 시대에나, 기술적 수법에 뻔뻔하고 그럴듯한 말장난을 첨가해, 인간 사회의 우두머리로 군림하던 영특한 무리들이 있었다.
- 프레드 로델 <저주받으리라, 너희 법률가들이여!>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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