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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에세이 ‘버터밀크 그래피티’ 작가 이균
‘흑백요리사’ 심사위원 아닌 출연자 된 이유
요리 보다 한국말 연습이 더 어려웠다
미슐랭 요리 대신 한식 식재료 실험하고파
흙수저 이민자들의 음식이 미국 음식의 정체
압박감 안 느껴, 지루해지는 것 가장 경계
일하지 않는다, 사랑 이상의 무엇을 할 뿐

모든 것을 가진 셰프, 에드워드 리/사진=김흥구

‘정체성에 끊임없이 의문을 품지 않았더라면 지금 같은 셰프가 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물려받은 한국의 유산 가운데 지금까지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음식입니다…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서 이 책을 썼습니다. 그들의 음식이 수천 킬로미터를 건너와 미국의 모든 가정으로 흘러든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었습니다.’-에드워드 리 ‘버터밀크 그래피티’ 중에서

일요일 아침 9시, ‘비빔 인간’ 에드워드 리를 만났다. 전날 밤 일포르노 식당에서 열린 고아들을 위한 자선 디너에 참석했다고 했다. 피로해 보였지만 에너지가 바닥나 보이진 않았다.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이후 그는 지금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는 유명 인사가 됐다. 에드워드 리를 인터뷰하러 간다고 했더니, 초등학생 아들도 사인을 받아달라고 부탁했다.

생각해 보면 ‘사람을 궁지에 몰아넣는’ 서바이버 요리 프로그램 특유의 자극적인 플롯 위에서도 에드워드는 순간순간 고급스럽고 유머러스한 풍미를 만들어냈다. 그가 요리한 음식을 먹어볼 순 없었지만, 그가 쓴 글을 읽으며, 그 비밀을 추측해 볼 순 있었다. 요리계의 아카데미상인 ‘제임스 비어드’ 상을 받은 음식 에세이 ‘버터밀크 그래피티’는 비빔 인간 이 균의 인생 레시피 같은 책이다.

동공에 미뢰를 장착한 듯 그는 세상 모든 풍경을 음식과 맛으로 시각화한다. 전직 권투 선수였던 아일랜드 바텐더의 위스키, 생선 내장을 베이스로 한 캄보디아 요리사의 만찬, 젖은 숲 맛이 난다는 위구르 식당의 국수, 500년 동안 꿇고 있는 페루의 냄비 요리도 흥미롭지만, 에드워드 개인의 사랑과 이별의 장면에 나오는 사소한 음식들에 나는 온통 마음을 빼앗겼다.

근간에 읽은 책 중 가장 다채로운 등장인물, 후킹 넘치는 스토리, 리드미컬한 편집을 갖춘 ‘장르 문학’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왔다.

작가 이균. 그는 뉴욕대학교 영문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사진=김흥구

떳떳하게 맛을 드러내는 음식, 지름길을 택하지 않고 인내와 친밀함을 담아 만든 이민자들의 가정식을 상상하며, 군침 고인 얼굴로 이 균과 이야기를 나눴다.

-‘버터밀크 그래피티’는 ‘멜팅팟’ 스타일의 새로운 장르 문학이다. 이런 책은 정말 처음이다. 격의 없이 그러나 격조 있게… 글 쓰는 에드워드, 요리하는 에드워드… 누가 먼저인가?

“하하. 어릴 때부터 내 열정은 두 갈래였다. 하나는 요리, 하나는 문학.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어떤 작가가 될 수 있을지 몰랐다. 대학 졸업 후 글을 썼지만, 알다시피 작가는 외로운 일 아닌가. 반면 셰프의 일은 시끌벅적한 곳에서 다양한 사람과 신나게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첫 직업은 셰프였지만 늘 글 쓰는 걸 병행했다. 부엌에서도 조금씩 글을 썼다. 요즘은 나이가 드니 더더욱 조용히 혼자 읽고 쓰고 싶다. 큰 원을 돌아 제 자리에 당도한 것 같다.”

-책에 있는 모든 도시, 모든 여정이 다 흥미로웠지만 뉴올리언스의 카페 뒤 몽드의 베네로 이야기를 시작한 건 신의 한 수였다. 당신이 뉴욕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할 때 매일 아침을 먹으러 왔던 성 노동자 브랜디와의 사연이 뭉클했다. 샌드위치를 먹을 때마다 고향에 온 것 같다고 했다지? 자기 고향인 뉴올리언스에 가면 카페 뒤 몽드에 가서 꼭 베네(도넛과 호떡 중간 형태의 디저트)를 먹어보라고.

“그 이야기로 시작한 건 나름의 의도가 있었다. 나는 유복하게 자라지도 않았고 나를 둘러싼 모든 이들에게 음식을 배웠다. 그들은 가난하기도 했고, 개중엔 범죄자도 있었고, 브랜디처럼 성 노동자 여성도 있었다.”

브랜디는 작별 인사도 없이 어느 날 사라졌다고 했다. 책 속에서 에드워드는 뉴올리언스의 카페에서 파우더를 묻힌 푹신한 도넛을 물고 그 시절을 추억했다.

‘인상적인 이야기들의 향연. 에드워드 리는 거장이다.’ 뉴욕타임스의 찬사를 받은 음식에세이 ‘버터밀크 그래피티’./사진=김흥구

-브루클린에서 애팔래치아산맥까지 이어진 이 한없이 겸손하고 희귀한 음식 모험을 시작한 계기가 있나?

“난 항상 궁금했다. 과연 미국 음식이란 게 뭘까? 물론 한식에도 질문이 있다. 최고의 갈비는 뭐지? 최고의 국수는 어떤 맛이야? 하지만 한국 음식이라고 했을 때 동의하는 기준이 있지 않나. 멕시코 음식도 중국 음식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미국 음식이 뭐냐고 물으면 답하기 어렵다. 햄버거? 핫도그? 프렌치프라이?”

미국에서 요리하는 셰프로서 ‘미국 음식의 정체성’을 찾고 싶었다는 에드워드의 말은 기이하게 들렸다. 미국은 비미국인들에게 늘 ‘엄청난’ 나라였다. 젊고 강하고 자비한 동시에 무자비한 나라. 그 나라의 전통 음식이 궁금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추적해 보니 미국의 전통 음식은 뭔가?

“미국 음식은 각 나라의 이민자들이 가져온 음식이 환경에 맞게 변한 것들의 총합이다. 나는 이 미국 음식이 포괄하는 범위가 더 넓어졌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음식과 사람, 인생의 비밀을 찾아 떠난 이 특별한 미국 횡단기는 청년에서 중년에 이르기까지 에드워드 리의 애틋한 성장기이기도 하다. 뉴욕 거리의 이 벽 저 벽에 페인트를 뿌리며 그래피티 뒤로 정체를 숨겼던 십 대의 에드워드, 예쁜 접시에 소스를 뿌리는 무명의 요리사 에드워드, 켄터키 주로 날아가 남부 음식을 요리하게 된 에드워드, 넷플릭스의 ‘흑백요리사’로 글로벌 엔터테이너가 된 에드워드…

-그래피티가 모든 것의 시작이었나?

“청춘과 방황의 시작이었지. 그래피티는 그 수명이 길어야 며칠이다. 음식도 그렇지 않나. 최고의 요리를 해도 누군가의 입속으로 들어가고 몇 분 안에 사라지고 없다. 영원히 지속되지 않아서, 더 아름답다.”

-인생과 비슷하군!

“그렇다. 그래서 향유해야 한다. 영원하지 않으니까.”

늘 여유가 넘치는 에드워드 리./사진=김흥구

좋은 인생의 간을 맞추듯 ‘향유’와 ‘아름다움’을 섞어서 이야기했다. 언어를 시인처럼 썼다.

-음식에 관한 당신의 포용성을 생각하면, 사실 서바이버 프로그램 출연은 다소 의외다. 게다가 아메리칸 아이언 셰프 우승자가 ‘흑백요리사’엔 왜?

“처음에 넷플릭스는 내게 심사위원을 제안했다. ‘한국말 할 수 있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거짓말을 했다(웃음). 나중에 줌 미팅을 해보곤 놀라더라. ‘한국말 못하시네요!(웃음)’. 몇 주 뒤 ‘참가자로 와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안 될 거 없었다. 평소에도 호시탐탐 한국 식재료를 쓸 기회를 찾았고, 죽기 전에 한국에서 중요한 일을 하고 싶었으니까. 문화의 연결 지점이 된다는 건 아름다운 일이 아닌가.

다만 한가지 결심을 했다. 이 경연에서 프랑스 미슐랭 요리 같은 건 하지 않겠다고. 오직 한국 식재료로 새로운 요리를 하겠다고.”

-어젯밤에 ‘흑백요리사’의 주요 장면을 다시 봤다. 모든 말이 시처럼 아름다웠다. 특히 결승전에서 읽은 편지와 떡볶이 세미프레도가 더욱 애틋하게 다가왔다.

“사실 쇼에 참가하러 한국에 왔을 때 몹시 외로웠다. 호텔 방에서 혼자 지내면서 계속 물었다. “내가 여기 왜 있는 거지?” “나는 뭘 하고 싶은 거지?” “우승하고 싶은가?’ 1단계, 2단계 이상은 못 올라갈 줄 알았는데. 쇼가 진행될수록 살아남았고 덕분에 미국을 오가느라 힘들었다.

힘든 와중에도 흥미를 잃지 않은 건 이 쇼의 컨셉 때문이었다. 결승에 오르면 흙수저 요리사들이 자신의 이름을 공개할 수 있다는! 이름은 정체성과 관련이 있다. ‘내 이름은 OOO입니다. 나는 누구입니다’…”

에드워드 리와 권성준 셰프의 자세가 대조적이다. 디저트와 메인 요리의 대결.

-그런데 파이널 라운드에서 백요리사인 당신이 다른 이름을 공개하면서 ‘흑백요리사’에 의도하지 않은 레이어가 생겼다. 내 한국 이름은 ‘이 균’입니다’... 흑백의 대비를 뒤집는 이런 반전이라니!

“쇼가 절반 정도 진행됐을 때 혼자 다짐했다. 결선에 가면 한국 이름을 공개하자. 사실 한국 이름을 비밀로 해왔다. 감춘 것은 아니지만 엄마와 누나만 내 이름을 알고 있다. 아무도 모르는 이름을 갖고 자란다는 건 정말 이상한 경험이다. 인생 중반에 한국 이름을 공개하고, 그걸 쓸 기회를 얻고 싶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요리 보다 한국말을 해야 한다는 게 더 걱정이었다. 한국어로 글을 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고, 너무 긴장해서 다 외우지 못해, 양해를 구하고 현장에서 읽었다. 개인적인 감정을 담은 편지였는데, 쇼가 끝나고 정말 많은 재미교포가 연락을 해왔다. 자기들 마음을 대변해 줘서 고맙다고. 쇼에서 우승은 못 했지만, 뭔가를 이뤄냈다는 자부심이 들었다.”

-이번 경연에서는 우승이 별 의미가 없었다. 스포트라이트도 광고도 당신에게 다 몰렸다(웃음).

“아… 성준에게 너무 미안하다(웃음).”

-어떤 셰프는 완벽한 음식을 만들려고 재료를 통제하지만, 당신은 불완전함 그 자체를 사랑하면서 열린 요리를 만들었다. 안전하진 않지만 매 순간 흥미롭게. 떡볶이 셰미 프레도는 실제로 맛있었나?

“물론. 하지만 난 요리에 더 집중했어야 했다(웃음).”

-매번 자신이 잘하는 것보다 해보지 않았던 모험을 선택하는 편인가?

“그런 것 같다. 나는 뇌의 다양한 부위를 사용하는 걸 즐긴다. 글쓰기, 요리, TV 출연은 각기 다른 재미를 준다. 요리를 한다는 건 시간과 싸우는 일이다. 아침 9시에 요리를 준비하면 오후 5시엔 모든 게 갖춰져 있어야 한다. 손님이 왔는데 소고기도 국수도 제시간에 나오지 않으면 큰일이다.

반면 글을 쓸 때 나는 시계를 보지 않는다. 5시간 동안 한 챕터를 쓸 때도 있고 한 문장을 쓸 때도 있다. 10장을 쓰고 다음 날 다 버릴 수도 있다. TV쇼는 또 다른 다이내믹이다. 나의 뇌가 상황에 맞게 다르게 반응하고, 각기 다른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걸 즐긴다.”

'흑백요리사'에서 두부 요리 지옥 경연 중인 에드워드 리.

-책에서도 익숙한 메뉴가 아니라 매번 가장 난해한 메뉴를 선택하더라. ‘권투 선수와 요리사’ 파트에서 맛본 샘의 캄보디아 만찬은 정말 입에 잘 맞았나? 생선과 내장, 뿌리채소로 만든 페이스트 ‘프라학’은 상상만 해도 아찔하던데.

“정말 맛있었다. 샘의 요리는 먹을수록 갈망하게 된다. 매운 양념이 빠진 젓갈 맛이라고 하면 이해가 되려나? 태국 음식이나 베트남 음식은 피시소스와 생선을 부재료로 쓰는데, 거기에 레몬이나 라임 주스를 넣어서 밸런스를 맞춘다. 독한 향과 텍스처에 밸런스를 맞추면 군침이 사악 돈다.”

-동남아 음식은 짜고 맵고 쿰쿰하고 시큼하다! 한국 음식의 매력은 뭔가?

“담백함. 담백함의 밸런스! 베트남이나 태국 같은 나라는 더워서 보관을 위해 발효를 많이 시키고, 그런 이유로 냄새가 강해지고 맛이 진해진다. 반면 한국의 음식은 담백하다. 서양인들이 한식이 맵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거의 고추장 때문이다.

매운 음식은 단순해서 땀 흘리며 물 마시며 즐기지만, 담백하고 온순한 한국 음식은 거의 명상하듯 맛을 음미하게 된다. 삼계탕도 먹을수록 다양한 맛을 발견할 수 있다. 김치도 나는 백김치를 가장 좋아한다. 우리 할머니가 정말 맛있게 담그셨지.”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 양념은?

“너무 많지만 일단 고추장. 고추장과 치즈, 고추장과 버터처럼 서양 음식에 고추장을 더하면 맛이 더 좋아진다. 최근에 내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오미자와 쑥 가루도 많이 쓴다. 쑥 가루의 쓴맛은 투박함과 우아함의 충돌을 만들어낸다.”

-한국 식당을 불신하는 몽고메리의 데이비스 카페 주인 신시아에게 직접 한국 음식을 사다 맛보여 주는 장면도 따뜻했다. 우리가 낯선 음식을 먹지 못하는 이유는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그 음식을 만든 사람을 신뢰하지 못해서, 라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했다.

“신시아는 불고기는 조금, 낙지볶음은 절대로 못 먹겠다고 고개를 젓더라. 대단히 다른 것 같지만, 사실 인간들은 비슷한 방식으로 음식을 만든다. 어느 문화권이나 만두, 찌개, 국수, 부침의 형태가 있고 환경에 따라 양념 재료와 기술이 달라질 뿐이다.

나는 늘 한국의 식재료가 세계 최고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예전부터 한국 음식을 적극 소개한다. 7년 전 이 책이 나왔을 때만 해도 LA와 뉴욕을 제외하고는 괜찮은 한국 식당을 찾기 어려웠다. 요즘엔 ‘흑백요리사’ 덕분에 한국 음식의 인기가 더 폭발적이다.”

에드워드 리가 각본에 참여한 다큐멘터리 영화 ‘발효’.

-미국에서 ‘발효’라는 영화의 각본과 주연을 맡을 때는 어땠나?

“최고였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대부분 발효된 것들이었다. 치즈, 된장, 간장, 맥주, 살라미, 빵… 다양한 발효의 장인들을 찾아 나선 영화였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켄터키 루이빌에 차린 레스토랑 ‘610 매그놀리아’와 워싱턴의 한식 다이닝 ‘시아’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두 곳 다 파인다이닝이고 내 인생의 어느 시점을 대변한다. ‘610매그놀리아’는 22년 전 처음 켄터키로 이사했을 때, 미국 음식을 이해하고 싶어 했던 내 열망이 담겨 있다. 워싱턴의 한식 다이닝 시아는 오픈한지 6개월 정도 된다. 내 인생의 다음 장을 대변한다. 한국 음식과 미국 음식이 어떻게 어우러지는지를 보여주려 한다. 식당은 내게 매우 개인적인 장소이고, 나는 그 식당들로 내가 누구인지를 말하고 싶다.”

-당신을 보면 어느 문화권이든 잘 스며드는 것 같다. 미국에서 고추장과 발효에 심취하는 모습도, 한국에서 햄버거와 코카콜라 광고에 나오는 모습도 다 잘 어울린다. 레스토랑과 출판, TV쇼… 어느 장르에서건 여유 있어 보인다.

“하하. 내 인생, 괜찮다. 하지만 너무 바쁠 때는 아내가 불평한다, 속도를 좀 줄이라고.”

-압박감을 느낀 적은 없나?

“나는 압박감을 느끼지 않는다.”

-정말 압박감이 하나도 없다고?

“아예 없진 않겠지만, 나이가 들어선 지 ‘이것 때문에 죽진 않을 거야’ ‘다음날은 다 괜찮아질 거야’ 이런 태도를 갖게 되었다. 나는 아주 다양한 흥밋거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뭔가 당장 결과가 안 좋아도 그냥 다음 것으로 넘어간다. 집착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뭔가를 엄청나게 잘했다고 해도 거기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가족들 하고 조금 보긴 했지만, 나는 ‘흑백요리사’도 다시 보지 않는다. 과거를 분석하기보다 그냥 계속 다음 것을 하는 게 내 뇌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힘들었던 것도 기억이 나지 않나? ‘두부 지옥’ 경연이라든가.

“두부 지옥도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한국말 할 때의 떨림과 비교하면(웃음).”

이균의 투박한 손./사진=김흥구

-그렇다면 당신이 두려워하는 건 뭔가?

“지루함. 지루함이 가장 두렵다.”

-누군가에게 판단 받는다는 두려움은 없나?

“늘 판단을 받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판단 받는 데는 단련이 돼 있다. 지금은 누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 상관 안 한다. 홍보 매니저가 권해도 내가 운영하는 식당에 관한 좋은 기사조차 읽지 않는다. 긍정적인 비평을 읽고 좋아하면 부정적인 평가도 받아들여야하니까. 그런 판단에 휘둘리고 싶지 않다. 판단의 기준은 내가 정한다.”

-이민 2세로 부모의 판단에서도 자유로웠나? 지난번 인터뷰 때 당신 어머니는 ‘에드워드는 노벨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뉴욕 브롱크스과학고등학교를 나왔다’고 자랑스러워하시던데.

“(미소 지으며)사실 어머니는 수년간 나를 부끄러워했다. 뉴욕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이후로 주욱… 엄마 친구 자녀들이 명망 있는 직업으로 잘 나가는 데 비해 나는 그저 요리사였으니까. 부엌에서의 삶은 힘들고, 엄마는 오랜 시간 나에 대해 참담해 했다. 아들의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끝도 없이 걱정했다(웃음). 물론 지금은 자랑스러워하시지만.”

-당신이 외교관이 되길 바랐다던 아버지의 임종 이야기도 가슴 깊이 남았다. 어머니는 당신이 임종 장면을 지키는 것보다 맛있는 점심을 먹기를 바랐고, 아버지는 당신이 조카들을 데리고 나가 고기 한 판을 다 굽기 전에 돌아가셨다고. 책에 아버지 이야기를 쓸 때 기분이 어땠나?

“아버지와의 관계는 어머니와도 달랐다. 내가 글을 쓸 때는 대체로 밤이 깊고 노트북과 나, 둘만 있을 때다. 책을 쓰는 동안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이 챕터는 유일하게 한 자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써내려갔다. 새벽에 편집자에게 글을 보낸 후, 아침에 크게 후회했다. 하지만 편집자는 생각이 달랐다. “이건 반드시 포함해야 해요, 에드워드.”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음식과 함께였기에 쓸 수 있었다고 했다.

글 쓰는 요리사 박찬일 셰프와의 대담.

“나는 내 책을 잘 읽지 않는다. 그런데 우연히 어느 낭독회에서 독자들의 요청으로 그 파트를 읽게 되었다. 그때까지는 한 번도 소리 내 읽은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이 책을 소리 내 읽다가 멈춰서 울고 말았다.”

‘심전도 모니터가 다시 켜지자, 어머니는 내게 아이들을 데려가 한국 바비큐를 먹이고 어머니 몫도 포장해 오라고 했다… 나는 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나를 멀리한 점,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해주지 않은 점에 대해 사과받고 싶었다… 나는 아버지의 힘 빠진 손을 올리고 그 밑에 내 손을 넣었다… 그의 이마에 입맞춤하며 가셔도 괜찮다고, 우리는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그런 뒤 조카들을 데리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이 균의 ‘버터밀크 그래피티’ 중에서

-셰프가 됐다는 이유만으로 오랫동안 당신을 멀리했던 아버지를 어떻게 용서했나?

“글쎄… 용서했다기보다는 놓아드렸다. 부모님 두 분 다 나를 걱정했고, 그래서 아버지에게 말해드리고 싶었다. 걱정하지 마시라고, 괜찮다고, 편하게 떠나시라고.”

-책에서 당신이 쓴 레시피대로 볼로냐소시지를 넣어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부대찌개를 해드린 적이 있나?

“없다… 그랬더라면 좋았을 텐데.”

우리는 한국 음식과 어머니의 임종을 다룬 ‘H 마트에서 울다’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책을 읽어보았냐고 묻자, 짧게 일부만 봤다고 했다.

-어떤 음식, 어떤 냄새가 가장 그리운가?

“깍두기. 할머니는 늘 최고의 깍두기를 만들었다. 할머니가 그립다.”

에드워드의 아내와 딸.

-아내와는 어떤 음식을 즐겨 먹나?

“새해 첫날 아내는 독일식 양배추 스튜를 나는 한국식 떡국을 끓여서 아이와 함께 먹는다.”

-비빔 인간인 당신은 무엇을 먹을 때 가장 행복한가?

“비빔 냉면! 족발을 곁들이면 더 좋고(웃음).”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일이란 무엇인가?

“나는 일을 하지 않는다. 미국의 오래된 표현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당신이 만약 사랑하는 무언가를 한다면 당신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가령 사진 촬영을 하는 건 일이다, 좋아하지 않으니까(웃음). 그 외에 모든 것은 내게 일이 아니다.”

-일이 아니면 사랑인가?

“사랑 그 이상의 무언가가 나의 뇌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런 상태가 좋다.”

요리 철학자이자 작가 에드워드 리. 그가 쓴 음식 에세이 ‘버터밀크 그래피티’는 요식업계의 아카데미상이라고 불리는 ‘제임스비어드상’을 수상했다./사진=김흥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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