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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 재개발로 7월부터 철거 시작
업주들은 이주 보상금 챙겼지만
이들은 전입신고 안해 지원 못받아
명도 시작되면서 맨발로 쫓겨나
지난달 21일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일명 ‘미아리 텍사스촌’ 골목에 빨래가 널려 있다. 연합뉴스

60여년간 영업을 지속해온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88번지 ‘미아리 텍사스’. 서울의 마지막 성매매 집결지로 불리는 이곳에선 ‘살 권리’를 외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재개발사업이 본격화되면서 이곳에서 일하던 여성들이 생계를 잇기 어려워진 탓이다. 이들은 ‘권리를 찾기 위해 죽음으로 싸우겠다’ 등의 팻말을 세워놓고 “성 노동자에 대한 이주 대책을 보장하라”고 요구한다. 투쟁이 시작됐지만 사회적 낙인을 지우지 못한 이들이 실질적인 자립 지원을 받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철거 앞두고 ‘살 권리’ 외치는 여성들

2일 성북구 등에 따르면 미아리 텍사스 일대는 2022년 관리처분계획이 인가되면서 재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구의 ‘신월곡 제1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 중 하나로 선정돼 지난해 12월부터 구역별 철거 작업이 진행됐다. 오는 6월까지 2차 구역 철거가 완료될 예정이다. 성매매 집결지가 있는 3차 구역은 7월부터 철거가 예정돼 있다. 철거가 완료되면 초고층 아파트 2200여 가구가 들어서게 된다. 하지만 이곳에서 일하던 여성들은 이주지원금을 받지 못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이 지역에 터 잡고 생활해 왔지만 주소지가 등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주지원금을 받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성들이 신분 노출 등을 꺼려 거주지를 제대로 신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식 기록에 따라 지원금을 지급하는 정책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사업주들은 업장 크기 등에 따라 이주보상금을 받은 반면 여성들은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한 채 거리로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사회적 낙인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주소지를 등록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모(42)씨는 “주소지를 여기로 한다는 건 가족들에게 성 노동을 한다고 알리는 것과 같은데,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씨는 극심한 생활고를 겪던 중 이곳에서 일을 시작했다. 20여년간 가족들 생활비를 보탰다. 앞으로 생계를 유지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이씨는 “성매매라는 게 그동안 나라가 묵인한 사업이기도 했다”면서 “오갈 곳 없는 우리를 외면하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처럼 배운 것도 많지 않아 앞으로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이들은 지난달 17일 서울북부지법이 미아리 성 노동자 이주대책위원장인 김모씨의 주거지에 대한 명도집행을 시작하자 거리 농성을 시작했다. 김씨는 “잠을 자고 있는데 용역 업체 직원 40여명이 들이닥쳐 문을 따고 들어와 짐을 챙길 틈도 없이 쫓겨났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러면서 “속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채 잠옷 바람으로 쫓겨났다”며 “같이 살던 친구는 신발도 못 챙겨 맨발로 나왔다”고 말했다. 김씨는 강제로 쫓겨나게 된 상황에 충격을 받아 잠시 정신을 잃었다고 했다.

경찰이 지난달 17일 서울북부지법의 명도집행 당시 쓰러져 있는 김모씨 건강 상태를 살피는 모습. 미아리 성 노동자 이주대책위원회 제공

미아리 성 노동자 이주대책위원회는 명도집행 과정에서 폭행이 발생했다면서 서울 종암경찰서장과 성북구청장을 직무유기 및 방조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여성단체 활동가 A씨는 “성 노동자들이 모두 주거가 불안정하고 보호받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건 나라도 구청도 다 알 것”이라며 “철거는 형식적으로 합법이니 다 나가 달라는 무책임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일과 삶의 터전을 잃은 성 노동자들은 다시 성매매 업소를 찾거나 극심한 빈곤에 내몰릴 위험이 크다”고 했다.

현재 이곳에서는 여전히 암암리에 성매매 영업이 이뤄지고 있다. 경찰은 35~40개 업소가 운영 중이고, 60여명이 일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지자체는 생계지원 한다는데

서울시와 성북구는 2017년 제정된 ‘서울시 성북구 성매매 예방 및 성매매 피해자 등의 자활 지원 조례’를 통해 이들을 돕고 있다는 입장이다. 해당 조례에는 성매매를 그만둔 여성이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생계비와 주거 이전 비용, 직업훈련비 등을 지원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주 보상 대책과는 달라서 근본적인 생계 해결엔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 노동자 해방연대 ‘주홍빛 차차’의 여름 활동가는 “조례 지원으로 최대 2년간 주거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성 노동자들이 자립을 위해 돈을 모으거나 직장을 잡기에 2년은 매우 짧다”고 말했다.

반면 성북구 관계자는 “지원 사업들을 통해 성 노동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지만 민간에서 재개발을 시행하고 있어 구청에서 이주보상금 등을 지원해 줄 수는 없다”며 “민간 지원 단체들과의 협의를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단기 지원이 아닌 실질적인 자립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서울시 조례나 지원 사업의 경우 단기적 지원에 그칠 수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특례조항 등을 만들어 이들의 자립을 위해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계가 더 어려워져 결국 더 큰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촘촘한 사회 안전망 구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허 조사관은 “성 노동자들에게 ‘자발적 선택으로 이 직업을 택했으니 알아서 하라’는 식의 대처는 옳지 않다. 이들은 사회 구조적인 피해자이기도 한 만큼 국가가 안전망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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