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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30년 맞아 산재 고발 글 묶고
‘건폭’ 몰린 건설 노동자들 저항 구술
노조 설립하는 작가들의 ‘노동자 선언’
윤석열 정부의 ‘건폭’ 몰이에 항의하며 분신한 고 양회동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의 장례 행렬이 2023년 6월21일 서울 서대문역 사거리를 지나 경찰청으로 향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email protected]

노동자에게 글은 삶을 담는 그릇이거나, 현실을 흔들어 바꾸는 무기이면서, 쓰는 행위 자체로 충만하고 위태로운 노동의 실존이다. 쏟아져나온 입말이든 정교하게 다듬은 문장이든 완고한 벽에 몸을 부딪치며 숨구멍을 내는 글들에선 노동하는 현장의 말과 글만 뿜을 수 있는 밀도 높은 전류가 흐른다.

‘만국의 노동자여 글을 쓰자’는 노동자들이 직접 쓴 글들의 모음이다. 택배 노동자, 하청 노동자, 물류센터 노동자, 호텔 해고노동자와 탁송·대리운전·백화점 면세점 판매·어항 관리 노동자, 요양보호사 등 한국 사회의 거의 모든 불안정노동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아프고, 어이없고, 그러면서 단단한 이야기가 차곡차곡 묶여 있다. 월간 ‘작은책’이 엮었다. “일하는 사람이 글을 써야 세상이 바뀐다”는 고 이오덕 선생의 글쓰기 철학을 붙들고 창간(1995년 5월1일)한 잡지가 만 서른살을 맞았다. 최근 5년간 잡지에 실린 글들 중 산업재해 실태를 고발하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노란봉투법) 필요성을 반증하는 글들을 선별했다. ‘로켓 배송’을 위해 “일하는 내내 사람이 아니라 사람처럼 움직이는 기계”가 된 쿠팡 노동자와, “70살 넘으면 자존심 정도는 어느 정도 타협할 수 있”지만 “정말 참지 못하는 것은 모멸감”이란 사실을 절감한 경비 노동자, “너희는 동물 같다”는 ‘고문보다 더 고통스러운 모욕’에 괴로워하는 이주노동자의 글들이 국가폭력과 사회적 참사, 산재 사망자 유가족들의 글과 함께 읽는 이의 마음을 긁는다. “여름이 시작되던 6월 아빠는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던 중 원인 불명으로 추락한 1.2톤의 리프트에 깔려 돌아가셨다”고 시작하는 한국건설 노동자 고 마채진씨 딸의 글은 싸움터로 나서며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 결의처럼 읽힌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하지만, 추락, 협착, 매몰 등으로 인한 산업재해 사고는 안전장치와 관리자가 부재한 현장의 노동자들에게만 발생한다. 나는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의 유가족 마혜진이다.”

만국의 노동자여 글을 쓰자 l 작은책 엮음, 플레이아데스, 1만8000원

‘노가다가 아닌 노동자로 삽니다’는 건설 노동자들이 토하듯 짜내듯 꺼낸 말들을 구술로 정리한 책이다. 윤석열의 범정부적 ‘건폭’ 몰이에 항의하며 분신한 고 양회동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의 2주기에 맞춰 나왔다. 탄압 전후 부산·울산·경남 지역 건설 노동자들의 삶을 노동·인권·이주 활동가와 기자들이 듣고 기록했다. “발주·원청·1차 하청·2차 하청·오야지·팀장·건설 노동자”로 이어지는 불법 중층 하도급이 왜곡해 온 건설 현장의 실상과, 그 구조는 내버려둔 채 노조를 범죄 집단으로 낙인찍어 지지율을 끌어올리려던 정권의 시도와, “오랫동안 노가다였다가 이제는 노동자가 되나 했더니 도로 건폭이 되어버”린 노동자들의 일상·투쟁·증언이 담겨 있다. 경찰서에서 따로 조사를 받던 아버지와 아들이 옆 조사실에서 나온 서로를 발견하는 장면은 특히 황망하다.

“조사받다가 담배 피우러 잠깐 나왔는데, 마침 아들도 옆방 조사실에서 나오더라고요. …제 손으로 아들을 불러서 일을 가르쳤습니다. …그런 아들을 경찰서에서 만난 겁니다. …한 방에서는 아비가, 옆방에서 아들이 조사받는 게 말이 됩니까. 멀쩡하게 회사 잘 다니던 애를 건설 일로 데려와 고생시키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습니다.”(김중근 부울경건설지부 경남철근분과장)

“아버지가 옆방에서 조사받을 줄은 몰랐죠. 그때 조금 울컥하더라고요. 아버지가 너무 미안하다고, 당신 아니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지금도 말합니다. 그런 게 아니라고요. 건설 일도, 노동조합 활동도 내가 좋아서 하는 거예요. 노동조합이 왜 있어야 하는지 이유를 잘 알고 자부심이 있어요.”(김강락 부울경건설지부 창원지대 조직부장)

“노래방 도우미나 하지 이런 거 왜 하냐”는 말을 들으며 일했던 여성 철근 노동자와 “한국인 노동자보다 노예처럼 대우해도 되는” 이주노동자들의 말은 건설 노동자들 중에서도 가장 ‘가장자리’의 처지를 전한다.

노가다가 아닌 노동자로 삽니다 l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 기획, 한겨레출판, 1만8000원

‘작가노동 선언’은 쓰고 그리는 작가들의 ‘노동자 선언’이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입증하지 못한다며, 사업주에게 종속돼 일하지 않는다며, 심지어 자신이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라며, 글과 예술에 인생을 걸었다는 이유로 “굶어 죽”고 “몸과 마음에 병을 얻은” 사람들이 스스로 노동자임을 증명하며 노조 설립을 추진했다. 이 책은 시, 소설과 웹소설, 에세이와 르포, 칼럼과 평론, 극작과 시나리오, 만화와 웹툰, 그림과 일러스트 등 분야별 작가 21명이 스스로의 노동을 말하고 자신들에게 왜 노조가 필요한지 썼다. ‘검정 고무신’ 이우영 작가의 죽음(2023년 3월) 이후 단체 대화방을 만들고, 집담회를 열고, 연속포럼을 시작하고, 기자회견을 하고, 산별노조에 가입하며, 마침내 올해 노조 출범을 앞두고 있다. 작가들은 “단연코 몰상식”한 업계에서 “관례가 고여 괴물이” 된 현실을 고발(소설가 황모과)하고, “파편처럼 흩어진 자리에서 혼자 쓰고 혼자 걱정하며 혼자 싸우고 혼자서 몸도 마음도 아파본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 “이제는 함께라는 다른 상상을 해보자”고 제안(시인 희음)한다. 노조를 처음 화두로 꺼낸 노동책 작가 안명희는 “기존의 노동 언어로는 작가의 노동을 설명하기 어렵다”며 강조한다.

“현재의 노동법 체계에 작가의 요구를 끼워 맞추는 것은 되레 차별과 배제의 결과를 낳는다. 그렇다면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노동의 언어를 새롭게 해석하고 확장하는 일이 필요하다.”

작가노동 선언 l 작가노조 준비위원회 지음, 오월의봄, 1만6800원

‘노동의 영역 밖’으로 치부돼 온 노동을 발견하고 경계를 넓히는 일. 세분화되고 심화되는 차별을 찾아내며 노동이 깊어지는 일. 노동을 고리로 맺고 연결하고 연대하는 일. 5월1일, 다시 돌아온 ‘노동자의 날’에 노동이 맞닥뜨린 숙제라고 세 책은 입을 모은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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