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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정책에 대한 입장이 변할 때마다 글로벌 증시가 요동을 치고 있다. 외환, 채권, 코인, 심지어는 원유를 비롯한 원자재 시장도 마찬가지다. 텍스트 마이닝 기업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어조 지수와 주가의 상관계수를 추정해 보면 ‘+0.9’에 달할 정도로 높게 나온다. 관세, 목표 아니라 수단관세는 양면성이 가장 큰 정책으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의도했던 효과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관세를 결정하기 이전에 충분한 협의를 거쳐 행정(내부) 시차를 줄여야 한다. 관세가 결정된 이후에도 정책 수용층(관계국과 자국 국민)을 대상으로 숙지 과정을 거쳐 집행(외부) 시차를 줄여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집권 2기 관세정책은 두 가지 전제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대중국 관세율도 주무 부서인 무역대표부(USTR)의 제이미슨 그리어 대표조차도 의회 청문회에서 민주당 의원의 지적으로 알 정도로 사전 교감이 부족하다. 너무 즉흥적으로 자주 바뀌다 보니깐 피해국은 물론이고 미국 국민조차도 정확한 실체를 모르고 있다.

정책의 정체성 면에서 관세는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대선 과정에서부터 관세로 재정수입을 늘려 국가 채무를 해결하는 ‘부채 디톡스’의 수단임을 명확히 해왔다. 관세 부과로 국채 발작(bond tantrum)이 발생하거나 국채금리 상승에 국가 채무가 늘어나면 곧바로 유예 혹은 철회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무역 상대국과의 관계에서도 관세는 대표적인 가격할증 정책이다. 피해국이 자국 통화 약세로 맞대응하면 무력화되는 한계를 갖고 있다. 더 우려되는 것은 근린궁핍화 수단이기 때문에 관세율이 높을수록 환율 등과 다른 분야로 마찰이 전이돼 해당 국가뿐만 아니라 세계경제에 최악의 결과(pay-off)를 가져온다는 점이다.

모든 정책 중 가장 까다로운 관세정책이 국제법과 미국법을 무시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조치에만 의존해 독자적으로 결정됨에 따라 부과하자마자 부작용이 한꺼번에 노출되고 있다. 벌써부터 트럼프 진영에서 가장 우려했던 ‘국채 발작’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매각 등으로 국채 공급이 급증하는 반면 디폴트 우려 등으로 국채 수요가 급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채 수급 면에서 초과공급 괴리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 수준이다.

취임 전 4.5%대에서 3.9%대까지 낮아져 트럼프 대통령이 ‘bip beautiful drop(가장 아름다운 고개 숙임)’이라 자평했던 10년물 국채금리는 취임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정상적인 시장 간 여건에서는 주가와 국채 가격은 역관계다. 상호관세 이후 다우지수 하락 폭을 고려해 10년물 국채금리를 재산출하면 국가 채무 관리의 임계치인 5%를 넘은 것으로 나온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가와 국채 가격이 동시에 떨어짐에 따라 연기금을 포함한 글로벌 투자은행(IB)이 운용하는 각종 펀드에 증거금 부족 현상인 마진콜이 발생하고 있다. 마진콜이 발생하면 기존의 투자자산을 회수해 메워놓는 디레버리지 과정에서 주가와 국채 가격이 추가 하락하는 악순환 국면에 처하게 된다.

2년 전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에서 입증된 것처럼 리먼브러더스 사태와 다른 점은 디지털화가 급진전됐다는 점이다. 지리적 제한을 없앤 디지털 금융 시대에서는 고객이 자신이 맡겨놓은 자산에 위험을 느끼면 동시다발적으로 인출하는 펀드런과 뱅크런이 일어날 확률이 높다. 리먼브러더스 사태와 비교할 수 없는 더 큰 금융위기가 올 수 있다는 의미다.

과연 트럼프 대통령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선택할 것인가. ‘선부과-후협상’ 방식의 관세정책이 위험성이 높긴 하지만 희망의 싹마저 저버릴 수 없는 것은 앞으로 유예 혹은 철회, 관세율 조정, 부과 품목 조정과 같은 협상의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90일 동안 미국과 한국 대표단이 상호관세 유예 협상 테이블에 서로 맞댄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참여할 것인가는 아직까지 확정되지 않았지만 그 시나리오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증시를 비롯한 국내 금융시장도 이번 협상의 분위기와 결과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진행됐던 유럽연합(EU), 일본의 사례를 되짚어 보면 미국은 세 가지 원칙 속에 상호관세 유예 협상에 임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가 확실하게 반영할 수 있는 ‘톱 다운(top down)’ 방식을 취하고 있는 점이다. 협상 기간을 단축하면서 미국의 국익을 최대한 반영시킬 수 있는 강점도 갖고 있다.

철저하게 ‘패키지 딜(package deal·통합 거래)’로 임하고 있다. 국방, 상품 수입시장 및 투자 후보지로서 미국처럼 협상력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레버리지 카드가 있을 때 사용하는 방식이다. 무역적자, 재정적자, 국가 채무, 경기부양, 인플레이션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은 트럼프 정부로서는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방식이기도 하다.

협상 파트너와 관련해 상대방이 먼저 최선의 대안을 내놓도록 하는 ‘A-게임’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도 눈에 들어온다. EU,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이 상대방이 제시하는 협상안에 대해 미국은 아무것도 내놓지 않고 있다. 선부과-후협상 원칙을 취하고 있는 트럼프 관세정책에서 후자에 기대를 거는 시각이 있으나 전자가 최선임을 암시하는 자세다.
국익 증대에 우선순위 둬야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는 네 가지 안건으로 요약된다. 공통적인 과제로 관세, 비관세장벽 철폐와 미국 진출 방안이다. 무역적자를 개선하기 위해 원화 약세 시정 방안도 앞으로 전개될 실무 협상에 우위를 점해준다는 차원에서 논의될 가능성도 높다. 한국과의 무역 불균형 해소 차원에서 미국은 원·달러 환율의 적정선을 1250원 내외로 보고 있다.

지경학적 과제로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주한미군 무임승차에 대한 보상도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해 강도 있게 요구할 확률도 높다.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등과 같은 경제성 차원에서 미국이 접근하지 못하는 숙원 과제에 대해 한국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안건도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4대 안건만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힘에 겨운 과제다. 하지만 더 우려되는 것은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구상과 관련, 기습적으로 제시할 안건이다. 트럼프 관세정책은 중국을 겨냥하면서 달러 위상을 강화하는 데 최종 목표를 두고 있다. 두 목표를 지향하는 데는 조 바이든 정부의 뼈아픈 실수를 빠지지 않고 명시한다.

5년 전 중국이 보안법 실시 이후 논란이 됐던 홍콩달러 페그제 폐지 문제에 대해 바이든 정부는 용인했다. 이를 계기로 홍콩의 예속화가 더 빠르게 진행되면서 중국의 위상이 강화됐다는 것이 트럼프 정부의 판단이다. 트럼프노믹스 2.0의 근간인 미란 보고서도 달러 약세를 하면서 어떻게 마가 구상을 실현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도 늘고 있다.

미국만의 이익만 중시하는 ‘돈로(DonRoe·트럼프의 약칭인 도널드와 5대 대통령인 제임스 먼로가 주창한 먼로주의를 합친 신조어) 독트린’을 추구하는 여건에서 달러 위상을 시장 자율적으로 강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강압적으로 달러 사용권을 확대하는 페그제만이 유일한 방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래전부터 달러 가치를 금과 연계(peg)시키는 금본위제를 주장해 왔다. 우리에게 기습적으로 달러 페그제를 요구하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미국과 상호관세 유예 협상은 우리 국익을 증대시키는 데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주요 안건 중에 미국과 공동으로 증대시킨다고 판단되면 주저 없이 합의하되 충돌되면 최대한 양보를 받아내야 한다. 일부 시각대로 협상을 서두르고 가능한 한 미국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는 자세는 손정의 사례에서 보듯이 다 주고 뺨 맞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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