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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이 군을 통제하는 '문민 통제'의 원칙
국방장관은 '군정권', 합참의장은 '군령권'
해외에선 민간 출신 사례 다수
유럽에선 여성 국방장관 사례도 여럿
여전히 '민간 출신은 어렵다'는 인식이 장벽

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2024년 10월 1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제76주년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설명을 듣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적이 도발하면 즉각 응징하라. 강력히 응징하라. 끝까지 응징하라."

2023년 10월 신원식 당시 국방부 장관(현 안보실장)은 취임사를 통해 이른바 '즉, 강, 끝'이라는 응징 3대 원칙을 밝혔습니다. 이는 윤석열 정부 국방부를 상징하는 구호로 자리잡았습니다. 김용현 전 장관도 이 원칙을 계승했습니다.

10년 전 독일로 가볼까요? 2013년 독일 역사상 첫 여성 국방장관이 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현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의 취임 일성은 "독일 군대를 독일에서 가장 매력적인 직장 중 한 곳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근무시간 전후 육아 보조서비스 제공 △근무지 이동 최소화 △누적된 시간 외 근무시간 휴무 활용 등의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한국과 독일, 두 나라 국방 수장의 메시지는 확연히 다릅니다. 물론 한국은 북한을 마주하고 있어 전 세계에서 안보 위협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라는 점을 고려해야겠지만, 한국의 국방장관들은 대개 군사대비태세에 방점을 찍습니다. 반면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의 국방장관은 국방 정책에 주안점을 둡니다.

2018년 2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가운데) 당시 독일 국방장관이 독일 연방군의 지원을 받은 이라크 북부 쿠르드 민병대 페슈메르가 훈련소를 방문했다. 에르빌=EPA 연합뉴스


민간이 군을 통제한다는 '문민 통제'의 원칙 하에서 '즉, 강, 끝'은
'군정권'을 가진 국방장관이 아니라 '군령권'을 가진 합동참모의장의 입에서 나올 법한
말입니다. 군정권은 군사 조직관리를 위한 행정업무를 지휘할 권한이며 대표적으로 인사권을 꼽을 수 있습니다. 반면 군령권은 실제 병력을 움직여 작전을 지휘할 권한입니다. 군령권의 정점엔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있지만, 각군 사령관들을 지휘하는 합참의장이 평시 군령권을 행사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따라서 적에 대한 응징 원칙은 군령권을 가진 합참의장이 관할하는 영역인 셈입니다. 참고로 각군의 참모총장과 해병대 사령관 역시 군령권이 아닌 군정권을 갖습니다. 그래서 12·3 불법 계엄 때도 병력을 원활하게 동원할 수 있는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을 맡지 않은 점이 의아하게 여겨졌었죠.

이처럼 국방장관이 은연 중에 합참의장의 군령권을 침해하는 이유는, 그들 역시 군 장성 출신으로 주요 보직을 경험한 베테랑들이기 때문입니다. 신원식 실장은 수도방위사령관, 합참 작전본부장, 합참 차장 등을 역임했고 김용현 전 장관 역시 수방사령관, 합참 작전본부장을 거친 작전통입니다. 신 실장은 2016년 1월에 전역해 7년 9개월 만에, 김 전 장관은 2017년 11월에 전역해 6년 10개월 만에 국방장관이 됐으니,
군령권을 가진 합참의장이 까마득한 후배로 보일 수밖에 없었겠죠.
더구나 육군 출신 국방장관은 해·공군 출신 합참의장에게 '지상군 작전에 대해 한 수 알려주겠다'는 생각이 들 법도 합니다. 순수 민간 장관 시대를 여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김명수 합참의장이 4월 29일 293해상전탐감시대 진지에서 작전 현황을 보고받고 있다. 합동참모본부 제공


두 차례의 군사 쿠데타와 장기간의 군사 정권을 경험한 한국은 군의 문민통제 원칙을 법제화했고, 김영삼 정부에서 전두환이 이끌던 군내 사조직 '하나회'를 숙청하면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김영삼 정부 이후 육사 일변도였던 국방장관에 갑종(현 학사장교와 유사한 장교 양성제도로 1969년 폐지), 해사, 공사 출신들이 임명되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군 출신이 장관을 맡는 관행은 이어졌죠
. 참고로 한국에서도 1960년대 장면 내각 시기엔 민간인 장관만 기용했었는데, 당시 장 총리가 군 출신 국방장관이 정권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장 총리의 우려는 60여년 뒤 '친위쿠데타'로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12·3 불법 계엄을 계기로 미완의 '문민 통제'를 완성시킬 문민 국방장관 시대를 새롭게 열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차기 정부의 국방장관은 △병역 자원 감소에 따른 초급 간부 수급 대책 △급변하는 전장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미래전 역량 △계엄 후속 조치로서의 군 개혁 강화
등 수많은 정책적 과제를 마주하게 될 겁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위협은 합참과 군 출신 참모를 통해 헤쳐나가면 됩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와 관련해 소집된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참석한 존 F 케네디(왼쪽) 당시 미국 대통령과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부 장관. 텔레그래프 홈페이지 캡처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민간 출신이 폭넓은 식견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정책적 난제 해결에 앞장선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폰데어라이엔은 7명의 자녀를 둔 어머니로서, 독일이 2011년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로 전환하면서 야기된 병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정친화적 군대 개편을 들고 나온 것이었죠.

'세계 경찰'을 자처했던 미국에서도 민간 국방장관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미국은 군 출신이 국방장관이 되려면 최소 전역한 지 7년이 지나야
가능합니다. 전역 7년 미만인 경우엔 의회의 특별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미국의 대표적 문민 국방장관으로는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에 의해 발탁된 로버트 맥나마라가 첫 손에 꼽힙니다. 그는 44세에 포드 사장에 올랐는데, 포드 가문 외에서 사장에 오른 첫 사례로 기록됩니다. 케네디 대통령은 자신이 군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국방장관직을 고사하는 맥나마라에게
"나도 대통령 전문 학교 같은 곳을 나오지 않았다"
고 권유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맥나마라는 쿠바 미사일 위기(1962) 당시 뛰어난 협상력으로 위기를 모면했고, 이후 기업인의 면모를 발휘해 펜타곤(미 국방부) 개혁에 나섭니다.

또 1994년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국방장관을 지낸 윌리엄 페리는 수학자이자 국방기술 전문가였고, 2015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때 국방장관에 오른 애슈턴 카터는 미군 복무 경험이 없는 물리학자 겸 정책 전문가였습니다.

2008년 카메르 차콘 당시 스페인 국방장관이 임신한 몸으로 레바논 파병 스페인군을 방문해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유럽에선 민간을 넘어 여성 국방장관이 임명된 사례도 여럿 있습니다. 서두에 언급한 폰데어라이엔은 독일 연방군 개혁을 추진했고, 경제관료 출신인 프랑스의 플로랑스 파를리는 마크롱 정부 시절 국방부를 맡아 사이버전·무인기 등 신기술 중심 국방 정책을 강화했습니다. 특히
스페인의 첫 여성 국방장관이 된 카르메 차콘은 법학교수 출신 정치인
으로, 취임 첫 해인 2008년 임신 7개월의 몸으로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된 스페인 평화유지군을 전격 방문하면서 '문민통제의 상징'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 밖에도 노르웨이, 이탈리아 등 유럽국가는 물론 칠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남미와 아프리카에서도 여성 국방 수장이 배출됐습니다.

물론 언급한 민간인 국방 수장들이 모두 긍정적 평가를 받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군 출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한국에서 필요한 건 국민 눈높이에 맞는, 군의 문민 통제에 새 지평을 열 수 있는 민간 장관임에 틀림없습니다. 심지어 한국보다 정치적으로 불안한 아프리카, 남미, 동남아 국가들도 심각한 내전과 군사정권의 아픔을 겪은 뒤 민간 국방장관을 임명해왔습니다. 물론 국방장관에 민간인을 임명한다고 문민통제가 완성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첫 단추조차 꿰지 못했다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들려오는 풍문은, 국민적 바람과는 거리가 있어보입니다. 우리 군에 주어진 과제를 해결할 적임자를 찾기보다는
이번에도 논공행상으로 국방장관 자리를 꿈꾸는 이들이
있다는 겁니다.
특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국방 자문단으로 거론되는 예비역 단체 모임엔 벌써부터 수많은 예비역 장성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고 합니다. 꼭 이들이 장관 자리를 노린다고 볼 순 없겠지만, 이렇게 예비역들이 대선 때마다 캠프에 몰려드는 구조 자체가 민간 장관 탄생에 걸림돌이 되는 건 자명해보입니다.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예비역 장성들이 2월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촉구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권이 교체될 경우 국방장관 후보로 거론되는 4성 장군 출신 김병주 민주당 의원은 최근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묘한 얘길 했습니다. 김 의원은 "문민장관도 이젠 필요하다고 본다"면서도 "그렇지만 지금은 내란을 종식시키고, 방첩사·정보사를 비롯한 군을 개혁해야 한다"며 민간 출신이 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뉘앙스로 얘기했습니다. 임기가 정해진 장관이 복잡한 군을 파악하는 데 시간을 다 보내는 경우도 있고, 군에 휘둘릴 수도 있다고도 했습니다. 남북 대치 상황과 강국들에 둘러싸인 안보 환경 탓에 민간 장관 배출이 어려웠다는 점도 언급했습니다. 말로는 군 출신이든 민간 출신이든 열어놓고 생각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의 발언만 놓고 보면 '민간은 어렵다'는 식으로 이해됩니다.

결국 민간통제의 근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군의 민간통제는 군대의 권력 남용에 따른 내전과 전쟁에 대한 반성으로 촉발됐습니다. 그리고 이는 민주주의의 필수 요소로 자리잡았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불법 계엄이 자행됐습니다.
결론은 분명합니다. 한국은 군의 문민통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고, 그 첫 단추는 민간 장관 발탁
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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