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MZ, 데이트 상대 정치성향·가치관 탐색 먼저
책으로 만나는 소개팅 앱…"집회서 만나 천생연분"
"젊은세대에 정치 일상화, 기술발전으로 연애방식 변화"


청춘남녀 소개팅 행사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오인균 인턴기자 = "탄찬(탄핵찬성), 탄반(탄핵반대) 어느 쪽인가요?"

'12·3 비상계엄' 이후 대통령 탄핵 사태를 거치면서 'MZ'(1980년대 초반~2010년대 초반 출생자) 세대가 데이트 상대의 정치성향과 가치관을 따지기 시작했다.

탄핵 집회를 통해 짝을 찾았다는 경험담이 이어지고,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게시글, 유튜브 구독 목록 등으로 상대 가치관을 파악하는 '알고리즘'(맞춤형 콘텐츠 자동 선정 방식) 연애족들이 등장했다.

전문가들은 젊은 세대에게 정치가 일상화됐고 기술 발전으로 연애 방식이 변했다고 진단한다.

'책으로 만나는 블라인드 소개팅'
[북블라 제공.]


무슨 책을 읽으세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책으로 만나는 블라인드 소개팅 앱 '북블라'가 입소문을 타고 있다.

지난해 말 서비스를 시작, 현재 가입자가 5천여명인 이 앱은 데이트 상대의 가치관을 파악할 시간을 아껴준다. 이용자가 책과 독후감을 등록하면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비슷한 유형의 상대를 추천하는 앱이다. 이용자 간 매칭률은 40%에 달한다고 한다.

이 앱에서 연인을 만난 지 50일이 넘었다는 20대 여성 A씨는 1일 "남자친구는 제가 올린 '자본주의: EBS 다큐프라임'을 보고 엽서를 보냈다"고 밝혔다.

이어 "둘 다 책을 좋아하고 경제에 관심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같이 카페에서 독서를 했는데 그때 첫눈에 반해 지금까지 만나고 있다"면서 "연애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가치관을 공유하고 맞춰가는 행위인 만큼, 삶과 생각이 녹아든 독서 취향은 중요한 요소"라고 설명했다.

고도현 북블라 대표는 "기술 발전으로 사람들과 연결되는 게 쉬워졌지만 표면적일 뿐 내면을 소통하는 관계는 적다"며 김신지 작가의 '제철 행복'을 통해 이어져 내년에 결혼을 준비하는 커플도 있다고 소개했다.

북블라 이용자가 올린 약 6천권의 책 중에는 소설이 가장 많고 인문·사회, 에세이, 자기 계발, 경제·경영, 과학이 뒤를 이었다.

소설에서는 양귀자의 '모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최진영의 '구의 증명' 순으로 많이 등록됐다. 인문·사회에서는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자기계발서로는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이 최다 등록 서적이다.

고 대표는 "가입자 비율은 여성과 남성이 42대 58로 다른 데이팅 앱에 비해 성비가 고른 편"이라며 "'MBTI'(성격 유형 검사)로는 'I'(내향형)과 'N'(직관형)이 상대적으로 많아 책을 좋아하는 이용자 특성을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또 "책을 최대한 많이 등록하고 단순하게 '재밌었어요'가 아니라 감상을 자세하게 적을수록 매칭률이 높아진다"고 전했다.

집회에서 만나, 하얼빈' 보고, 밥을 먹는
[유튜브 '썰플리' 캡처. DB 및 재판매 금지]


탄핵 집회서 짝 만나기도
정치적 집회 장소가 오작교가 되기도 한다.

대학원생 전모(26) 씨는 지난 3월 윤석열 전 대통령 관련 집회에서 특이한 손팻말을 들고 있던 옆 사람과 대화를 주고받다가 현재 연인으로 발전했다고 밝혔다.

전씨는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정치 성향이나 같은 사안에 분노하는 기질이 그 사람을 말해주는 것 같다"며 "광장에서 만나 연애하는 게 웬만한 소개팅보다 낫다"고 말했다.

지난 3월 27일 유튜브 '썰플리'에도 비슷한 내용의 영상이 올라왔다. 가수 이석훈이 동국대에서 길거리 인터뷰를 하던 중 정치 집회에서 우연히 만난 지인과 연인으로 발전했다는 역사교육학과 학생의 사연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유사한 경험담이 속속 올라온다.

엑스(X·전 트위터) 이용자 'gyo***'는 "내 친구 커플도 시위에서 만나 완전 천생연분"이라고 했고, 'Wfo***'는 "소개팅 이후에 '애프터'(다음 만남)로 시위에 갔다"고 썼다.

'91o***'는 "'윤석열 투표하셨어요? 국민의힘 지지하세요? 탄핵 반대 집회 참석하신 적 있으세요?'가 소개팅 필수 질문"이라고 썼고, 'dre***'는 "소개팅하면 'MBTI' 다음으로 정치 성향에 관해 물어야 한다"고 적었다.

'소개팅 필수 질문'
[엑스 캡처. DB 및 재판매 금지]


아예 유튜브 구독 목록이나 인스타그램 추천 콘텐츠 등을 상대와 터놓는 MZ들도 있다. 대화만으로 상대를 파악할 수 없고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더 정확하다는 것이다.

직장인 오모(30) 씨는 최근 구독한 유튜버와 '좋아요'를 누른 내역을 연인과 공유한 뒤 비슷한 성향임을 확인해 안도했다고 밝혔다. 만약 연인이 극우·극좌 유튜버를 구독하거나 혐오를 조장하는 '사이버 레커'(온라인 사건·논란을 퍼 나르는 유튜버)를 즐겨봤다면 헤어질 결심도 했을 거라고 덧붙였다.

오씨는 "개인적인 메시지를 보여달라는 게 아니지 않냐"면서 "연인의 '진정한' 모습은 평소 보는 콘텐츠나 SNS 추천 알고리즘이 더 정확하게 보여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직장인 박모(28) 씨는 "상대가 아무리 완벽해도 정치 성향이 다르면 타협의 여지 없이 만날 수 없다"면서 "소개팅에 나가면 무조건 취향과 가치관을 확인할 질문을 던지면서 자연스럽게 상대를 파악하곤 한다"고 밝혔다.

'책으로 만났어요'
[북블라 제공.]


이러한 분위기는 우리 사회의 극심한 양극화를 반영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3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사회통합 실태진단 및 대응방안'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갈등 정도는 4점 만점에 3.04점으로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특히 '진보와 보수' 이념 갈등이 3.52점으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어 '지역 간 갈등'(3.06점), '정규직-비정규직 갈등'(3.01점), '노사 갈등'(2.97), '빈부갈등'(2.96) 순으로 조사됐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계엄 사태를 겪으며 심화한 정치 양극화 양상은 심리적 내전 상태라고 봐도 무방하다"면서 "정치 성향이나 가치관이 짝을 찾는 데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는 시대"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진영 대결과 양극화가 일상에까지 스며들었고 디지털 세상에서의 평판도 실제 관계에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라면서 "기술의 변화로 새로운 관계 맺기 방식은 끊임없이 개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도 "동질적인 연애 상대를 찾는 건 자기합리화나 편향적 사고가 아니라 정치·경제관·젠더 이슈 등이 우리 삶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학습한 젊은 세대들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려는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라고 짚었다.

[email protected]

연합뉴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46587 韓대행 "국가안보 앞에 타협없다…외교안보부처가 잘 챙겨달라" new 랭크뉴스 2025.05.01
46586 권영세 "SKT 사고 대응, 최악 중 최악…문 닫아도 안 이상해" new 랭크뉴스 2025.05.01
46585 음주 상태로 과속 운전하다 2명 사상…30대 운전자 2심서 징역 6년 new 랭크뉴스 2025.05.01
46584 정대철 헌정회장 "한덕수 출마 결심‥국민적 지지가 계기" new 랭크뉴스 2025.05.01
46583 [속보]‘4000억원대 투자 사기’ 아도인터내셔널 대표, 징역 15년 확정 new 랭크뉴스 2025.05.01
46582 [속보] 美 관세 여파 본격화...4월 대미 수출 6.8% 줄었다 new 랭크뉴스 2025.05.01
46581 [단독]댓글조작 범죄자까지 자회사 사장 임명…인천공항 ‘알박기·낙하산 인사’ 진행 중 new 랭크뉴스 2025.05.01
46580 '26조 체코 원전' 韓 수주 확정…바라카 원전 이후 16년 만 new 랭크뉴스 2025.05.01
46579 한덕수 총리, 오늘 오후 사퇴 뜻 밝힐 듯‥내일 출마 가능성 new 랭크뉴스 2025.05.01
46578 조용한 승부사 한덕수, 경제·통합·안심으로 대선판 흔드는 ‘게임체인저’ [박영실의 이미지 브랜딩] new 랭크뉴스 2025.05.01
46577 트럼프 "한국과 합의 가능성…군대 돈 대는데 무역서 우리 이용"(종합) new 랭크뉴스 2025.05.01
46576 우크라, 결국 광물협정 서명…美 "러, 우크라 침공" 공식 언급 new 랭크뉴스 2025.05.01
46575 확 늘린 '캄보디아' 지원‥김건희 '선물' 고리? new 랭크뉴스 2025.05.01
46574 '문수 코인' 어디까지 오를까…저가 매수 의원들 '활짝' [캠프 인사이드] new 랭크뉴스 2025.05.01
46573 이재명, 오늘 사법리스크 ‘마지막 관문’…오후 3시 대법 선고 new 랭크뉴스 2025.05.01
46572 한덕수 "안보가 근간" 당부…오늘 사퇴, 내일 출마 선언할 듯 new 랭크뉴스 2025.05.01
46571 트럼프 "한국·일본·인도와 무역협상 합의 가능성 있다" new 랭크뉴스 2025.05.01
46570 트럼프 “삼성 관세 때문에 美에 대규모 시설 지을 거라 들었다” new 랭크뉴스 2025.05.01
46569 북극곰 쫓으려다 필사의 탈출…노르웨이 호텔 돌발 상황 [잇슈 SNS] new 랭크뉴스 2025.05.01
46568 [속보] 트럼프 "한국·일본·인도 관세 합의 체결 가능성 있다" new 랭크뉴스 2025.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