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콘클라베 시작 모습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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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새 교황을 뽑는 콘클라베(추기경단 비밀회의)에 관한 오래된 격언 하나가 있다.
"교황으로 콘클라베에 참석하면 추기경이 돼서 나오고 추기경으로 콘클라베에 참석하면 교황이 돼서 나온다"가 바로 그것이다.
교황 후보로 꼽혔던 추기경은 정작 교황이 못 되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추기경이 교황이 된다는 뜻이다. 이 격언은 콘클라베를 설명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교황 선출은 예측 불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도 없기 때문이다.
차기 교황 후보 중 하나로 거론되는 유흥식 추기경(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역시 최근 연합뉴스를 비롯해 한국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금까지 언론이 맞힌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역사적인 사실"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콘클라베를 앞두고 언론에서 많은 예상을 내놓겠지만 틀림없이 모두 빗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콘클라베의 투표 구조를 고려하면 틀린 말은 아니다. 콘클라베에는 출마 선언이나 공식 후보 등록이 없다. 이번 콘클라베에 참석하는 133명의 추기경(원래 135명이지만 2명이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 선언)이 전원 후보인 동시에 유권자다. 콘클라베의 투표 구조 자체가 새 교황이 누가 될지 정확히 맞히기 어렵게 설계된 것이다.
하지만 지난 100년간의 콘클라베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격언이 모두 들어맞진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5년이다. 요한 바오로 2세의 후계자를 뽑는 콘클라베에서 독일 출신의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은 가장 유력한 후보로 손꼽혔다. 그는 1981년부터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20년 넘게 봉직하며 요한 바오로 2세의 최측근이자 가장 중요한 조언자로 활동했다.
정통 가톨릭 교리를 지지하는 다수의 추기경에게 정통 보수파인 라칭거 추기경은 안성맞춤의 선택이었다. 실제로 콘클라베는 시작 24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4차 투표에서 라칭거를 베네딕토 16세 교황으로 선출했다. 언론은 이를 두고 "이변은 없었다"고 평가했다.
그보다 앞선 1963년 콘클라베에서는 이탈리아의 추기경이자 밀라노 대교구장인 조반니 바티스타 몬티니가 모두의 예상대로 바오로 6세 교황으로 선출돼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개혁 과제를 이어갔다.
1939년 3월에는 이탈리아 출신의 에우제니오 파첼리 추기경이 제2차 세계대전의 먹구름 속에서 단 3차 투표 만에 비오 12세 교황으로 선출됐다. 20세기 콘클라베 중 최단 시간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은 그해 9월에 발발했다. 전쟁의 불안 속에서 추기경들은 가톨릭교회에서 가장 노련한 외교관이자 교황청 국무장관인 그에게 몰표를 던졌다, 모두 교황으로 유력하게 손꼽혔던 추기경이 실제로 교황이 된 사례다.
2013년 콘클라베에서 새 교황이 선출된 뒤 광장을 꽉 채운 신도들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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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2013년 콘클라베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는 이탈리아의 안젤로 스콜라 추기경이었다. 그는 밀라노 대교구장이라는 거물급 직위와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과 밀접한 관계가 강점으로 부각됐다.
하지만 스콜라는 1차 투표에서 득표수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반면 아르헨티나 출신의 추기경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는 1차에서 기대 이상의 득표를 하며 이후 투표에서 반전을 일으켰다. 그가 바로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이 교황으로 선출될지는 꿈에도 몰랐다고 한다. 그는 올해 초 펴낸 자서전 '희망'에서 자신은 '킹메이커' 정도로만 여겨졌고, 당시 유력 후보는 밀라노 대교구장 안젤로 스콜라, 보스턴 대교구장 션 패트릭 오말리, 상파울루 대교구장 오질루 세레르, 캐나다의 마르크 우엘레트 추기경 등이었다고 술회했다.
하지만 투표가 거듭될수록 분산됐던 표가 점점 그에게 모였고, 결국 프란치스코 교황이 탄생했다.
이렇듯 차기 교황을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은 절반의 사실일 뿐이다. 분명한 것은 때로는 준비된 인물이, 때로는 뜻밖의 인물이 선택된다는 점이다.
오는 7일 시작되는 콘클라베를 앞두고 현재 피에트로 파롤린·마테오 주피(이상 이탈리아),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필리핀) 추기경 등이 유력 후보로 손꼽히고 있다.
이들이 1차 투표에서 두각을 나타낸다면 대세론을 형성하며 무난히 차기 교황에 당선될 수 있지만 만약 1차 투표에서 저조한 득표에 그친다면 의외의 인물이 선출될 수도 있다.
이탈리아 최대 일간지 코리에레델라세라가 차기 교황 유력 후보 12명 중 하나로 거론한 유 추기경은 '다크호스'로 분류된다. 한국은 교세 면에서 세계 가톨릭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긴 하지만 그의 자질이나 평판, 프란치스코 교황이 추구한 개혁 노선의 연속성, 아시아 대표성 등으로 이를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곧 시작될 콘클라베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유흥식 추기경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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