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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30일 열린 플랫폼·특수고용·프리랜서 노동자들의 할말 잇 수다, “이것은 왜 임금이 아니란 말인가” 간담회 참석자들이 사례 발표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근로기준법 제3조는 “이 법에서 정하는 노동조건은 최저기준이므로 노동관계 당사자는 이 기준을 이유로 노동조건을 낮출 수 없다”고 규정한다. 근로기준법은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해놓은 최저기준이자 최소한의 장치지만, 이 법이 적용되지 않는 사람들에겐 이 ‘최저기준’은 의미가 없다.

최근 노동시장에 ‘가짜 3.3%’ 노동자가 늘어나고 있다. 실질적으로는 노동자로 일하면서, 계약서 상으로는 3.3% 사업소득세를 원천징수하는 개인사업자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사업자가 노동자를 사업소득자로 위장 등록해 4대보험이나 근로기준법상 의무를 피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임금 노동자는 2023년 기준 862만명에 달한다.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비임금 노동자는 2019년 669만명, 2020년 704만명, 2021년 789만명, 2022년 847만명, 2023년 862만명으로 연평균 48만명씩 늘었다. 이 추세대로라면 2030년 이후엔 정규직 임금노동자(1369만명) 규모를 넘어설 수 있다. 성별로 보면, 여성이 52.6%, 남성 47.3%다. 여성의 연간 평균 소득은 1150만원으로 남성(2306만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플랫폼노동희망찾기, 할말 잇 수다 기획단은 노동절을 하루 앞둔 30일 ‘플랫폼, 특수고용, 프리랜서 “할말 잇 수다”’ 행사를 열었다. 웹툰작가, 대리기사, 배달라이더, 학습지교사, 프리랜서PD 등이 직접 나와 이들이 노동의 대가로 받는 돈이 ‘임금’이 아니어서 겪는 문제를 증언했다. 이들은 돈을 떼여도 노동청에 ‘임금체불’로 신고할 수 없다. 이들은 “특수고용이라고, 플랫폼 노동이라고, 프리랜서라고, 3.3% 노동자라고 새벽부터 밤까지 죽어라 일하고 돈을 받지 못해도, 우리들이 떼인 돈은 임금체불이 아니라고 한다”며 “14개월동안 ‘0원’ 명세서를 받아도 임금체불이 아니라는 노동청에 묻는다. 도대체 왜, 우리가 받아야 할 돈은 임금이 아니란 말이냐”고 했다.

근로기준법 제2조 1항 1호는 “‘근로자’란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을 말한다”고 규정한다. 근로기준법 제2조 1항 5호는 “‘임금’이란 사용자가 근로의 대가로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모든 금품을 말한다”고 규정한다. 근로자가 되기 위해선 임금을 받아야 하고, 임금을 받기 위해선 근로자여야 하는 셈이다. 이들은 “근로자가 먼저냐, 임금이 먼저냐”며 “일해서 정당하게 받는 돈인데 왜 임금이 아니란 말이냐”고 했다.

15년 동안 다양한 방송국에서 프리랜서 PD로 일해온 김기영씨는 “올림픽, 월드컵, 추석과 설, 계엄, 산불 등으로 특별편성을 할 때는 기존 프로그램은 방송이 나가질 않는다. 특별편성이 되는 기간 동안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2~3달 동안 돈을 못 받는다”며 “매주 방송을 만드는 저연차 피디나 작가가 원래 월 200만원 조금 넘게 번다면, 2주간 방송이 죽으면 한달에 100만원여 정도 밖에 못벌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작에 참여했으면 방송 여부와 무관하게 기본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데, 전혀 그런 것이 없다”고 했다.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 사업장에서도 적정 임금과 안정적 일자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노동시간을 무리하게 단축하거나, 초단기 계약으로 노동자의 일자리 불안을 가중시키기도 한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은 “근로기준법은 ‘최저기준’이기 때문에 이 최저기준이 무너지면 그 경계에 위태롭게 서 있는 노동자들도 불안정해진다”고 말했다.

대구에 사는 60대 여성 A씨는 얼마 전 자신이 10년 넘게 일하던 20명 규모의 동네 중형 마트에서 해고됐다. 8시간 풀타임으로 일했지만 사측은 2019년 7시간으로, 2024년엔 4시간까지 더 단축하겠다고 통보했다. 월급도 반토막났다. 마트 측은 당시 60대 이상 여성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장사가 안 되고 경영이 어렵다”며 “근무시간을 줄이거나 정리해고 중에 선택하라”고 했다.

대부분 해고되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노동시간 단축을 수용했지만, A씨는 부당하다며 변경된 노동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하루 4시간 월급으로 생계를 책임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얼마간 버티며 눈치를 보고 불안한 생활을 이어가던 중 그는 결국 퇴사했다. 표면상 정규직이었지만 노동자에게 불리한 내용의 노동계약 변경이나 해고가 쉽게 발생한 것이다.

이 마트의 여성 노동자들은 연차가 쌓여도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에 머물렀고, 승진이나 근속수당도 없었다. 근무시간이 줄면서 월급이 줄었지만, 동료 직원들이 나간 자리를 채우느라 업무강도는 더 높아졌다. 반면 남성들은 관리직으로 들어와 연차에 따라 진급했다.

일하는 여성은 늘고 있지만 고용의 질은 악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2024년 여성 노동자는 전년보다 20만9000명 증가했는데, 증가분 모두 비정규직이었다. 늘어난 비정규직 중 대다수인 28만5000명은 시간제 일자리였다. 전체 여성노동자 중 시간제 여성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26.2%에서 2024년 29.5%까지 높아졌다.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중 58%가 시간제 노동자다.

기술 발전으로 등장하는 새로운 일자리의 상당 부분이 플랫폼 노동이다 보니 일하는 사람의 일자리 불안정성을 높이는 단기계약직이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점도 문제다. 2021년부터 약 3년 반동안 인공지능(AI) 데이터라벨링 업무를 해온 40대 여성 B씨는 그간 몇개월 단위로 회사와 단기계약을 맺으며 이직을 거듭해왔다. 그는 “2개월, 4개월, 5개월, 6개월 이런식으로 단기계약을 해왔다”고 말했다. 데이터라벨링 업무의 경우 프로젝트에 따라 짧으면 2주나 한달짜리 계약도 있다고 했다. 계약 기간이 종료되면 기존 회사와 연장을 하거나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곤 한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경우도 있는데, 프리랜서의 경우 업무 할당량을 채우지 못할 경우 급여나 단가가 깎이기도 했다고 B씨는 전했다.

여러 차례 회사를 옮겨 다녔던 그는 직장 내 괴롭힘과 부당해고 등을 겪고 현재는 해당 일을 그만둔 상태다. B씨는 “일한지 한달 정도 됐을 쯤 회사 측이 채용 공고 페이지에서 급여가 잘못 표기됐다며 계약서를 다시 쓰거나 아니면 나가라고 했다”며 “면담하고 항의도 했지만 회사는 재계약할 수 없다고 했고, 직원들에게 부당해고가 아닌 권고사직 처리로 끈질기게 회유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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