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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생, 잘사]
<2>노년과 죽음의 입구, 50·60대를 잘 보내려면
‘5060 마음 가이드' 김현숙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인터뷰

편집자주

잘사는 것 만큼이나 잘 죽는 것이 과제인 시대입니다. 행복하게 살다가 품위 있게 늙고 평온한 죽음을 맞으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최문선 논설위원과 함께 해법을 찾아봅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김현숙 인천 연수구 마음과마음 의원 원장. "마음을 깊이 들여다 보는 의사"로서 방황하는 5060세대의 마음 길잡이가 되기로 했다. 하상윤 기자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하는 노래 가사가 새삼 절절하게 들리는 나이, 50대와 60대다. 젊음과 건강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요, 직장, 직업과도 작별할 시간이다. 가장 고통스러운 건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별. 자식은 품을 떠나고, 부모, 형제자매, 친척, 친구는 정해진 순서도 없이 세상을 떠나기 시작한다. 삶과 나의 돌이킬 수 없는 이별, 죽음도 가까워진다. 그러나 상실과 쇠퇴가 50대와 60대의 전부는 아니다.

1960년대 한국인 평균수명은 남성이 51.1세, 여성이 53.7세였다. 당시 50대와 60대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흘려보내는 삶의 기간이었다. 2023년 기준 평균수명이 남성 80.6세, 여성은 86.4세로 늘면서 50대와 60대의 의미도 달라졌다. 남은 30~40년을 어떻게 잘 살지를 스스로 설계해야 하는 중대하고도 도전적인 시간이 됐다. 2030년쯤 한국 인구의 절반이 50대 이상이 된다니, 보편의 과제이자 고민이 던져진 셈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김현숙(58·필명 김녹두) 인천 마음과마음 의원 원장은 사람들이 나이 들어 가는 걸 수없이 지켜보고 그들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봤는데도 스스로 50대를 맞이하기가 쉽지 않았다. “다 끝났는데…” 하면서 방황했다. 동화작가이기도 한 그이지만 10년 가까이 글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어느 날 다시 펜을 든 건 같은 이유로 헤매는 사람들을 돕는 것이 의사의 사명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5060세대의 마음 성장에 관한 책 ‘우린 새롭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를 쓴 이유다. “50대 이후의 삶은 축복이자 숙제”라는 그를 만나 50대와 60대를 지혜롭고 생산적으로 보내는 법을 물었다.

◇"나이 듦은 불가항력이지만 어떻게 나이 들지는 선택할 수 있어요"



Q: 5060 시기를 잘 보내는 것이 왜 이전보다 중요해졌나요.


“경제가 발전하고 정보가 넘쳐나면서 노년의 삶은 더 이상 획일적이지 않아요. 미용, 재테크, 건강, 여가 정보까지, 선택지가 끝도 없으니까요. 어떤 모습으로 나이 들고 싶은가에 대한 방향과 철학이 없으면 이리저리 휩쓸리며 시간만 보내게 돼요. 주체적으로 나답게 나이 들 준비를 해야 합니다. 준비 정도에 따라 이후 삶의 질과 만족도가 엄청나게 달라져요. 사람은 스스로 믿는 대로 나이 들어요. 세월에 속수무책으로 나를 맡겨선 안 돼요.”

Q: ‘인생의 온갖 상실이 시작되는 시기’라는 점만으로도 우울한데요.


“사람은 평생 뭔가를 상실해요. 청소년이 되면 의존의 특권을 잃고, 결혼하면 자유를 잃는 식이죠. 50대 전엔 성취와 성공을 좇느라 상실을 의식하지 못할 뿐이에요. 나이 들어 겪는 상실에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는 거죠. 상실과 성장은 동전의 양면처럼 삶 전체에 걸쳐 끊임없이 일어나요. 젊을 때는 상실을 보지 못해서 교만하고, 나이 들면 성장을 보지 못해 우울하죠. 크고 작은 상실을 잘 견뎌내왔듯 계속 잘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믿어야 해요. 상실은 그저 쇠퇴가 아니라 또 다른 가능성이에요. 상실 안에서 새로운 성장점을 찾아야 합니다.”

50대와 60대의 상실을 무기력한 쇠퇴로만 받아들이지 말자. 상실은 누구에게나 끊임 없이 일어난다. 상실 안에서 성장의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Q: 소중한 사람과의 사별에서 성장을 찾다니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해 보죠. ‘죽음이란, 인생이란 이런 거구나, 엄마는 열심히 살다 가셨구나, 엄마를 이런 모습으로 기억해야겠구나, 언젠가는 내 차례도 오겠구나…’ 그런 생각들이 닥쳐오겠죠. 죽음을 기점으로 내 삶과 관계들을 돌아보는 거예요. 사별을 겪으면 저마다 죽음에서 뭔가를 깨달아요. 사회적 지위, 학력 수준과 상관없어요. 슬픔 속에서도 ‘내가 이렇게 아프구나, 이렇게 큰 슬픔이 있구나’를 헤아리면서 감정 처리법을 배워 나가는 거예요. 그게 근육운동만큼 중요한 마음 공부의 과정이에요.”

Q: ‘이 나이에 뭐 하려고’ 같은 허무함은 어떻게 견디나요.


“사람이 꼭 뭐가 되기 위해서 살아야 하나요? 도전만으로도 훌륭해요.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어요. 젊음을 정의하는 건 나이, 외모가 아니에요. 새로운 걸 배우면서 즐겁고 설렌다면 젊은 거예요. 나이 들면 다 체념하고 살 것 같은가요? 요즘 정신의학과 병원엔 80, 90대 노인들도 오세요. 노년의 삶도 꽤나 역동적이고 즐겁답니다. 젊음의 연장만이 성공적 노화라고 믿고 젊은이들과 경쟁하려는 사람들이 있어요. 미용시술 등에 에너지를 소비하느라 정작 나이 든 사람만의 맛과 기쁨은 놓치죠. 결국 유연함이 중요해요. 환경이 바뀌면 옷을 갈아입듯, 나이 듦의 변화를 수용하고 인생의 새로운 문턱을 넘어야 해요.”

Q: 열심히 살아왔음에도 지금 내 삶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요.


“‘다시 시작할 기회도 없으니 차라리 삶을 버리고 싶다’는 환자가 있었어요. 자책하고 후회하는 그런 마음마저 받아들여야 합니다. 내 감정에 내가 공감해 주는 거예요. 나이 들수록 스스로에게 관대해져야 해요. 내가 나의 친구이자 보호자가 되는 거죠. 나와의 화해랄까요. 그래야 타인, 세상과도 화해할 수 있어요. 삶의 성적표를 받아들이고 어떻게 나이 들어갈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해요. 과거에 집착하는 ‘퇴행하는 노화’ 대신 남은 인생을 잘 사는 ‘성장하는 노화’로 가야죠.”

◇"50대의 좋은 관계가 80대의 건강과 행복을 만듭니다"



#. 미국 하버드대는 1938년부터 당시 10대 724명의 삶을 추적해왔다. 80년 넘게 쌓인 데이터의 결론은 노년의 행복도는 콜레스테롤 수치도, 교육·재산 수준도 아닌 단단한 인간관계가 좌우한다는 것. 50대에 양질의 인간관계를 누린 사람이 80대에 건강하고 삶에 만족할 확률이 높았다. 외로움과 고립은 독이었다.


Q: 관계가 그렇게 중요하군요. “마흔 넘어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친구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친구를 덜 만났으면 내 인생이 더 풍요로웠을 것”이란 김영하 작가의 말이 화제가 됐는데요.


“애착으로 맺어진 좋은 관계는 나이 듦의 슬픔을 해독해 주고 건강에도 도움이 됩니다. 치매 예방 효과도 있어요. 나쁜 관계 탓에 병이 나서 병원에 오는 분들이 실제로 있습니다. 김 작가는 살면서 많은 관계를 경험해 봤기에 그런 말을 할 수 있었겠죠. 하지만 의미 없는 관계는 없어요. 사람들과 주고받은 친밀함과 감정 교류가 지금의 나를 만든 거니까요. 과거의 그들에게 감사해야 하죠. 관계는 과정이에요. 관계가 소용없다는 건 ‘죽을 건데 왜 열심히 사나’ 하는 것과 같아요.”

나이 들면 감정의 위기가 수시로 찾아온다. 감정을 처리하는 법을 알고 있어야 한다. 김녹두 원장은 "마음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하상윤 기자


Q: 50대 이후의 인간관계는 이전과 달라지나요.


“남은 인생이 유한하다는 생각 때문에 시간과 에너지를 보다 의미 있는 관계에 집중하고 싶어 하죠. 관계의 수는 줄고 친밀함은 깊어져요. 스스로 관계를 조율할 수 있게 되죠. 그렇다고 깊지 않은 관계를 일부러 정리할 필요는 없어요. 나이 들면 가까운 사람들이 떠나갑니다. 상대적으로 얕았던 관계가 그 공백을 채울 수도 있어요. ‘정서적 예비 자원’이라고 생각하고 되도록 여러 관계를 돌보고 끈을 유지하세요. 특히 비혼일 경우에요.”

Q: 은퇴 후 관계 맺기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이 많아요.


“관계를 직장을 중심으로 유지했던 남성들이 주로 그래요. 직위, 명함, 법인카드가 없으면 못 견디죠. 자존심을 잘 내려놓지도 못해요. 왜일까요. 나라는 존재를 지탱하는 교각이 여러 개라면 하나가 무너져도 버틸 수 있지만, 사회적 성취라는 교각만 있는 인생이라서 그래요. 권위의식을 버리고 관계 맺기에 서툴다는 인정부터 해야 해요. 동네 도서관 무료 강연에 가는 것부터 시작하세요. 전문가에게 상담 받는 것도 추천합니다.”

"배우자는 최후의 보호자…나이 들수록 소중해져요”



Q: 부부 사이 관계도 나이 들면서 달라지나요.


“집 밖에서 할 게 없는 남편이 집으로 은퇴를 하고는 갑자기 아내가 소중하다고 해요. 아내는 집에서 은퇴해서 다른 즐거움을 찾고 싶어하고요. 그러다 싸우죠. 이혼이 편한 선택지처럼 보이지만, 50대 이후엔 배우자가 서로에게 더 중요해져요. 평균수명이 늘면서 부부 관계 수명도 늘었고, 사회생활 폭이 줄어드는 노년에 배우자는 동지, 친구이자 생존을 위한 최후의 보호자거든요. 화해, 사과, 용서, 감사, 연민이 결혼 후반부 혼수라고 생각하고 관계를 새로 가꿔 나가 보세요. 같이 산 만큼 서로를 잘 아니까 수월할 수 있어요.”

친밀함의 유대가 가장 두껍고 깊을 수 있는 관계가 부부 사이다. 세월이 쌓이면서 연인에서 동지로, 친구에서 서로의 보호자로 의미가 달라진다. 게티이미지뱅크




Q: 자식 걱정은 끝나지 않아요. 자녀가 다 성장하면 ‘빈 둥지 증후군’을 겪기도 하죠.


“자식은 타인이에요. 뜻대로 되지 않아요. 자녀는 내 노력으로만 키운 게 아니에요. 유전적 요소, 집 밖에서 맺은 여러 인연 등이 어우러져서 지금 그 아이로 자랐어요. 그러니 자녀의 성공을 내 성공이라고 여기지도 말고, 실패했다고 자책하지도 마세요. 너무 엄마, 아빠로만 살아왔기에 자식이 커서 떠나간 자리가 유난히 슬픈 거예요. 그 자리를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다른 것으로 채우세요. 자녀를 향했던 모성으로 나를 돌보면 어떨까요.”

Q: 50대 이후엔 부모님과의 사별을 피할 수 없어요. 어떻게 준비하고 견뎌야 하나요.


“누구나 언젠가는 겪는 일이에요. 내 순서도 오는 것뿐이죠. 스스로를 믿고 ‘나는 충분히 어른이야, 감당하는 거야’ 하고 이겨내야 합니다. 돌아가시고 나면 마음으로 만나면 돼요. ‘엄마, 나 지금 어떻게 할까’ 하고 불러내 보는 거죠. 부모님은 물리적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 안에 남아 계세요. 육신의 관계는 유효기간이 있지만, 정신적 관계엔 없어요. 비행기 많이 태워드리는 게 효도라는 식의 강박도 내려놓으세요. 효도의 본질은 좋은 감정을 나누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겁니다.”

Q: 나 자신의 죽음도 시시각각 다가오는 시기죠. ‘좋은 죽음’이란 게 있을까요.


“죽음을 고민하는 건 스스로를 더 깊이 이해하는 과정입니다. 내가 뭘 소중하게 여기는지, 죽기 직전에 뭘 후회할지, 그러니까 지금 뭘 해야 할지를 자문하며 삶을 재정비하는 거죠. 장례식 때 운구할 사람을 걱정해서 다이어트를 결심한 환자도 있어요. 인생을 돌아보며 아쉬움이 남더라도 ‘이 정도면 괜찮았다, 나 잘해냈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좋은 죽음이고 좋은 삶이 아닐까요. 인생은 그저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매일의 선택과 행동이 만드는 거예요. 잘 살아온 사람이어야 잘 죽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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