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 후보 사법리스크 조기 판단, 불확실성 제거 뜻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대장동 배임·성남에프씨(FC) 뇌물 등 혐의’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email protected]
대법원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을 예상보다 훨씬 이른 5월1일에 선고하기로 한 배경에는 정치적 파장을 최소화하겠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볼 수 있다. 6·3 대선의 후보 등록 기간은 다음달 10~11일이고 12일부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다. 이 때문에 대법원의 선고가 일러도 다음달 8~9일쯤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지만, 실제 선고기일은 이보다 1주일 더 앞당겨졌다. 이 후보 상고심 심리에 참여한 대법관 전원이 적어도 ‘조기 선고’에는 의견 일치를 본 것이다.
이 후보의 선거법 위반 상고심 심리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었던 ‘속도전’이었다. 대법원 소부에 사건이 배당된 지난 22일 전원합의체 회부와 동시에 1회 합의기일이 열렸고 이틀 뒤 2회 합의가 진행됐다. 통상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합의기일은 매달 셋째 주 목요일에 열리고 4월 합의기일도 이미 지나간 상황이었지만, 대법원은 이 후보 사건 심리를 위한 합의기일을 이틀 간격으로 따로 열었다. 전원합의체는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대법관 전원이 참여해 결론을 내기 때문에 의견 조율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이 후보 사건에는 예외가 적용된 셈이다. 이로써 대법원은 이 후보 사건을 항소심 선고로부터 36일 만에 결론을 내게 됐다. 대법원 관계자는 29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선거 사건 상고심은 세달 안에 처리한다는 공직선거법 원칙에 따라 조희대 대법원장 취임 뒤 선거 사건은 대법원 접수 후 평균 90일 안에 결론이 나왔다. 이번 사건은 평균보다 결론이 빨리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대법원이 유력한 대선 후보의 사법리스크에 대해 최고법원으로서 빨리 판단해줘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게 작용한 것”이라고 짚었다. 또 다른 부장판사는 “대법관들이 이 사건 쟁점을 간단하다고 본 것이다. 만장일치 결과를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오래 걸릴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전합에서는 표결을 통해 과반수로 결론을 낸다. 이번 사건에는 중앙선거관리위원장으로서 회피 신청을 한 노태악 대법관과,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대법관 11명, 그리고 재판장인 조 대법원장까지 12명이 참여했다.
대법관 7명 이상이 상고를 기각하면 이 후보는 무죄가 확정된다. 반대로 항소심 판결에 문제가 있다는 게 다수의견이면 대법원은 무죄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내게 된다. 이럴 경우 이 후보는 파기환송심을 거쳐 다시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받아야 한다.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이나 징역형이 확정되면 이 후보는 이번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대법원에서 아예 유죄 판결을 하고 형량까지 확정하는 파기자판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수도권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이 사건은 항소심에서의 공소장 변경 등의 사정변경이 있었기 때문에 (1심의 판단을 따라) 자신감 있게 파기자판할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대법원이 사건을 파기환송하고 최종 결론이 대선 전까지 나오지 않았는데 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이 후보 선거법 사건의 재판이 중단돼야 하는지를 두고 논란이 생길 수 있다. 현직 대통령에게는 불소추 특권(헌법 84조)이 있는데, 이 조항이 기존 재판에까지 적용되는지를 두고 의견이 갈리기 때문이다.
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이 후보의 무죄가 확정된다고 해도 이 후보에게는 아직 4개 사건의 재판이 남는다. 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돼도 논란이 여전할 수 있는 상황인 셈이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이 후보 선거법 위반 상고심 심리를 신속하게 진행한 대법원이 판결문에 보충의견 등의 형태로 헌법 84조에 대한 해석을 담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