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유인해 가해자 만드는 수법
피해자 대부분 10대 초중반 여성
피해자 대부분 10대 초중반 여성
2024년 9월21일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앞 대학로에서 열린 ‘딥페이크 성착취 엄벌 촉구 시위: 만든 놈, 판 놈, 본 놈 모조리 처벌하라’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채운 기자
텔레그램에서 성착취 범죄를 벌인 혐의로 10대 청소년이 경찰에 붙잡혔다. 성착취물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하며 가해 강도를 점차 높이고, 일부는 범행에 가담하게 하는 범죄 방식은 앞서 수백명의 피해자를 낳은 ‘텔레그램 자경단 사건’과 유사했는데, 피해자 또한 대부분 10대 초중반 여성이었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29일 텔레그램에서 ‘판도라’라는 닉네임을 쓰며 2024년 7월부터 피해자 19명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제작, 유포한 혐의(아동청소년의성범죄에관한법률 위반 등)로 지난 25일 ㄱ(17)군을 구속해 송치했다고 밝혔다. 애초 ㄱ군에게 피해를 입다가 다른 피해자를 유인하는 등 범죄에 가담하게 된 ㄴ(16)양 등 3명도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 설명을 들어보면 ㄱ군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성적 호기심을 보인 피해자를 물색한 뒤 ‘텔레그램에서 딥페이크 영상이 유포되는데 유포자를 알려주겠다’고 접근해 개인정보를 탈취했다. 대조를 통한 피해 확인을 명분 삼아 신체 사진을 요구했고, 이를 보내면 성착취 범죄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한다. 영상과 사진 ‘유포’를 빌미로 협박하며 피해자를 ‘지배’해 점차 강도 높은 성착취 범죄로 이어지는 식이었다.
ㄱ군은 일부 피해자에게는 ‘5명을 낚아 오면 해방시켜주겠다’고 회유해 다른 피해자를 끌어들이는 식으로 범죄에 가담하게 만들었다. 애초 피해자였던 여성 3명이 경찰에 붙잡힌 이유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가 피의자로 전환돼 형사책임 판단이 복잡해지고, 피해자 보호와 처벌 간의 불균형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이런 방식으로 ㄱ군은 피해자 19명을 대상으로 34개의 성착취물을 제작했다. 피해자는 모두 10대 초중반 여성이었다.
ㄱ군의 범죄 방식은 앞서 ‘자경단’으로 불린 최대 규모의 텔레그램 성착취 조직을 이끈 혐의로 기소된 김녹완(33)과 유사하다. 다만 자경단이 5년 동안 범행을 벌이며 261명의 피해자를 낳았던 것에 견줘 범행 기간과 피해 규모는 제한됐다. 경찰은 일부 피해자의 용기 때문이라고 했다. 경찰은 “피해자들이 신속하게 피해 신고를 해줘 조기에 수사를 착수해 2개월 만에 피의자를 특정해 검거했다. 추가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서울경찰청은 지난해 8월28일부터 올해 3월 말까지 허위영상물 범죄 일제단속 기간 동안 ㄱ군을 비롯해 사이버 성폭력 피의자 222명을 붙잡았다. 2019년부터 2024년까지 텔레그램에서 ‘작가’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며 청소년 2명에 대한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직장 동료 등에 대한 허위영상물(딥페이크)를 만든 ㄷ(52)씨 등이 구속됐다. 1584회 불법촬영을 하고 이를 게시한 남성 2명도 구속됐다. 경찰은 “피해자의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리는 사회적·인격적 살인범죄인 사이버 성폭력 사범들에 대해 무관용 원칙으로 엄정대응할 것”이라며 “피해 발생 시 수사기관이나 상담기관을 방문해 피해 사실을 알려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