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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현 서울대 교수, 파니니 박사 인터뷰
직접 배 타는 연구실, 외국인이지만 완벽 적응
영어로 연구실 회의, 언어 문제 해결
연구실 밖은 달라, 아래한글 문서에 막혀

한국 경제의 진짜 위기는 이공계 인력에서 시작될 수 있다. 이공계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 수는 1999년 86만5668명에서 2050년에는 42만7457명으로 반 토막이 날 전망이다. 사람으로 먹고산 한국 경제에 첨단 산업의 미래 일꾼인 이공계 인력 감소는 심각한 문제다. 전문가들은 해외 인재 유치가 당장 가능한 몇 안 되는 대안이라고 입을 모은다. 조선비즈는 ‘우리 연구실 찰스’ 시리즈를 통해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연구자를 소개하고, 이들이 국내에서 자리 잡은 비결과 더 많은 외국인 연구자를 유치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 개선 방안을 모색하려고 한다.[편집자 주]

지난 17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행정동 교무부처장실에서 남성현(오른쪽) 지구환경과학부 교수와 외국인 제자인 파니니 박사가 이야기하고 있다./조인원 기자


남성현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배를 타고 바다에서 연구하는 해양과학자다. 한반도 연안뿐만 아니라 전 세계 거의 모든 바다가 남 교수의 활동 영역이다. 한 번 배를 타고 나가면 한 달씩 연구하다 보니 팀워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외국인을 쉽게 받기가 어려운 환경인 셈이다.

그럼에도 남 교수의 연구실에는 인도에서 온 과학자 2명이 박사후연구원 과정을 밟고 있다. 파니니 다스굽타(Panini Dasgupta), 사란야(Saranya J. S) 박사가 그 주인공이다. 둘 다 아무런 어려움 없이 적응하고,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말도 통하지 않고 음식 문화나 생활 환경도 다른 한국에서 파 박사와 사 박사는 어떻게 해양과학자의 꿈을 이어가고 있을까.

작년 크리스마스 때 남성현 교수 연구실에서 열린 파티 모습. 파니니(맨 앞줄 오른쪽 첫 번째) 박사와 사란야(맨 앞줄 오른쪽 두번째) 박사가 연구실 동료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파니니 박사

연구실 공용어는 영어…언어 장벽 없애
지난 17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캠퍼스에서 남성현 교수와 파니니 다스굽타 박사를 만났다. 사란야 박사는 인도양에서 진행 중인 승선 조사 때문에 인터뷰에 참석하지 못했다. 남 교수는 둘을 부를 때 이름의 앞 글자를 따서 ‘파 박사’와 ‘사 박사’라고 친근하게 불렀다.

남 교수와 파 박사는 국적 상관없이 끈끈한 팀워크가 구축된 비결로 ‘언어’를 꼽았다. 파 박사는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했다. 그래도 문제가 없는 건 연구실 회의의 공식 언어가 영어였기 때문이다. 남 교수는 “연구실 미팅 때 진행하는 학술 발표는 질의응답까지 모두 영어로 하도록 했다”며 “한국인 학생과 연구자가 더 많지만, 파 박사와 사 박사가 참여할 수 있도록 영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파 박사도 같은 의견이었다. 그는 “연구실의 모든 미팅이 영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언어적인 불편이 크지 않다”며 “어차피 과학적인 연구는 모두 영어로 이뤄지기 때문에 한국에서 공부하려는 외국인이 있다면 언어에 대한 고민을 너무 깊이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했다.

파 박사와 사 박사는 부부이다. 사 박사가 3년 전에 먼저 남 교수 연구실에 합류했고, 이후 파 박사가 지원했다. 남 교수는 “사 박사가 합류하고 6개월 정도 지나고 한국인 박사과정생이 한꺼번에 졸업하면서 박사급 인력이 부족해진 적이 있었다”며 “박사후연구원 공고를 냈는데 인도에서 누가 지원을 해서 찾아보니 사 박사의 남편인 파 박사였다”고 말했다.

바다로 승선조사를 나선 남성현(왼쪽) 서울대 교수와 파니니 박사./파니니 박사

연구선 보고 한국 선택…“생활 모두 만족”
사 박사와 파 박사는 왜 한국을 택했을까. 파 박사는 해양과학의 특수성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인도에서는 연구선을 여러 해역에 보내는 경우가 많지 않다”며 “대학 연구실에서만 컴퓨터로 가상실험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남성현 교수의 연구실은 직접 바다에 나가서 관측을 할 수 있어 선택했다”고 말했다.

남 교수도 두 사람과 사정이 맞는 상황이었다. 그는 “국내 학령인구가 계속 줄어들고 있고, 이공계 전문 인력을 키워야 하는데 내국인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해외에서 우수한 연구자를 최대한 많이 데려오는 게 대안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외국인 학생이나 연구자를 받는 데 소극적이었다고 했다. 한 달씩 배를 타야 하는 특수한 조건도 있고, 아라온호 같은 연구선에 외국 국적의 연구자가 타려면 사전에 거쳐야 하는 행정 절차도 까다롭다. 그럼에도 이제는 외국인 연구자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인도의 젊은 부부 과학자가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을까. 파 박사는 바로 “아주 만족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서울대에서 제공하는 가족 생활동이 있어서 생활이나 주거에 불편 없이 지내고 있다”며 “채식만 하다 보니 음식에 대한 걱정이 있었지만 이제는 한국에서도 채식을 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파 박사의 살이 쏙 빠진 건 한 달씩 나가는 승선 조사 때였다. 채식을 위한 식재료를 구하기 어렵다 보니 인도양에서 한 달을 보내는 동안 체중이 10㎏이나 빠지기도 했다. 한국 아니라 어느 나라에 가도 같은 조건인 셈이다.

2024년 학위과정별·출신국가별 이공계 국내 외국인 유학생 현황./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연구실 밖은 장벽…서류에 아래한글 고집
남 교수는 “국내 학생을 해외로 보내는 아웃바운드(outbound) 사업은 제법 자리를 잡았는데, 해외 우수 인재를 국내에 데려오는 인바운드(inbound) 사업은 정부나 대학의 노력이 너무 부족하다”며 “학생도 중요하지만 연구를 바로 할 수 있는 박사후연구원이나 조교수급을 많이 데려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려면 외국 연구자들을 가로막는 장벽을 없애야 한다. 파 박사는 연구실 안에서는 언어로 어려움을 겪는 게 없다고 했지만, 연구실을 나서면 상황이 달라진다. 단적으로 연구비 지원을 받기 위한 각종 행정 작업부터 난관이다.

남 교수는 “연구비 신청 문서가 대부분 아래한글 형식인데, 파 박사는 쓸 수가 없다”며 “연구비 지원을 위한 지침이나 형식도 한국인인 내가 봐도 이해가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다 보니 이런 행정적인 작업은 내가 직접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무리 연구 성과가 좋아도 이런 행정 작업을 못 하면 독립적인 연구자로 생존할 수 없다. 남 교수는 “지금 우리나라 환경에서는 외국인 연구자가 PI(책임연구자)급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연구비 지원 서류의 언어 장벽은 이미 여러 전문가가 지적한 바 있다. 김현철 연세대 의대 교수는 지난 2월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연구비를 받으려면 한국연구자정보(KRI), 범부처통합연구지원시스템(IRIS) 같은 곳에 논문 업적을 하나하나 다 올려서 검증 받아야 하는데 영어까지 지원이 안 되다 보니 굉장히 불편하다”고 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은 한국에서만 사용하는 아래한글 프로그램 활용이나 주요 사업공고와 연구자 정보 시스템 입력이 한국어로만 이뤄지는 부분을 개선할 방안을 검토 중이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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