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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안보 정책은 반쪽짜리 안 되도록
대선 주자들, 국제 문제에 이해도 높여야
문 정부 - 윤 정부 외교를 반면교사로
26일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프란치스코 교황 장례 미사를 계기로 바티칸에서 회동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제공, 바티칸=AP 뉴시스


교황 장례식이 열린 성 베드로 광장의 침묵이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가 등장하면서 작은 환호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엄숙한 장례식에 적절하지 않을 박수까지 보냈다. 악의 세력에 대항하는 용기와 희망, 단결을 상징하는 순간이자 프란치스코 교황의 평화 메시지가 연대하는 또 하나의 장면이었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게 이는 통하지 않은 것 같다. 장례 미사 이후 트럼프와 만난 젤렌스키는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을 대체로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젤렌스키를 몰아세우던 트럼프는 이제 러시아 대통령 푸틴을 압박, 우크라 전쟁 막바지 중재에 들어갔다. 협상은 우크라 영토 일부를 러시아에 넘기는 방향에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종전으로 국제사회가 공존의 질서로 전환될 것이란 기대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유럽의 방패막이 역할을 해온 우크라의 평화 보장도 힘의 논리 앞에서 무기력해져 있다. 트럼프의 거래적 접근이 더해진 현실주의 외교는 이렇게 실망스럽게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총과 버터를 모두 움켜쥐겠다는 트럼프의 집권 100일은 세계 지정학과 경제에 불확실성을 증폭시켰다. 도처에서 억제되던 것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갈등의 시기에 접어든 것처럼 보인다. ‘쇼군’이 워싱턴에 있는 것 같다고 할 만큼 미국 이익에 헌신적인 일본조차 분위기가 이전 같지 않다. 유사시 미국이 도와줄 것이란 믿음에 일본인 77%가 회의적 응답을 했을 정도다. 아세안은 시진핑 중국 주석에게 레드카펫을 펼치며 친중 진영에 속속 들어가고 있다.

우려스러운 대목은 트럼프에게 다음 협상 대상이 북한인 점이다. 벌써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해 내부 협의에 들어가면서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주변 상황은 복잡하게 얽히고 있다. 게임 테이블에 북한을 칩으로 놓으려는 중국도 움직일 수밖에 없고, 이를 의식한 러시아는 북한군 파병을 공식화하며 밀월관계를 과시했다. 북한도 곧 30년 된 낡은 각본으로 돌아가 트럼프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 위기 압력을 키울 것이다. 강대국 패권 경쟁이 격화하는 현실에서 지정학에 신경 쓰지 않는다면 평화와 번영은 도래하기 어렵다. 강대국이 힘의 균형을 추구하면 지역 갈등은 불가피해지는 측면까지 있다. 정치가 외교안보에선 소모적 갈등과 대립을 걷어내고, 성숙된 역량을 보여줘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에서 외교안보만큼 정권마다 상반되는 정책도 없다.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의 경우 한마디로 실험적이었다. 한쪽은 북한에 대해 희망적 기대에, 다른 한쪽은 미국에 대한 이상적 사고에 머물렀다. 세계의 다극화 추세와 미중 패권경쟁 심화를 각기 반영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 결과는 극단적으로 달랐다. 북한과 중국은 우리의 협력 대상이었다가 악마가 되었고, 파트너였다가 적대적 대상으로 현기증이 날 만큼 바뀌었다. 정권 색깔에 따라 상반된 외교정책을 국제 정세를 충분히 고뇌하고 만들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번 대선에 나온 주자들도 국제 문제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아 보인다는 점에서 이런 흐름이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 법리에 밝을지 모르나 제대로 국정 비전들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래선 정파적 이해나 대통령 귀를 잡은 측근에 흔들리는 반쪽 정책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최종안에 빠졌으나 1차 대통령 탄핵안에 한미일 협력 강화 정책이 포함된 것만 해도, 프레임을 씌우는 도구로 외교안보가 전락해 있는 게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후진국에서 자란 부모와 선진국에서 태어난 자녀의 문화와 정체성 차이가 세대갈등의 이유로 주목받는 현실이지만, 두 세대는 지정학적 운명이 동일한 공간에 놓여 있다. 강대국의 지정학적 게임에 휩쓸린다면 앞선 세대처럼 자녀의 삶도 난폭하게 위협당할 수 있다.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들의 허전한 마음에 공감하게 되면서 드는 생각이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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