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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구질구질하게 살지 말아라.”

동원그룹 창업자 김재철 명예회장의 말입니다. 삶과 경영을 대하는 태도는 이 한 문장에 담겨 있습니다. “산더미만 한 파도, 거센 풍랑을 만나면 죽음이 눈앞에 와 있음을 느낀다. 사투 끝에 죽음의 영역을 벗어나면 이런 생각이 든다. 한 번 더 사는 인생, 구질구질하게 살지 말아야겠다.” 원양어선 어부로 시작해 평생 바다와 함께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는 결심대로 산 듯합니다. 1990년 ‘세금 다 내는 사람은 바보’라는 사회 분위기 속에도 세금을 완납하고 자식들에게 지분을 넘겨 신문에 나기도 했습니다. 2000년대 초 “김재철 회장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비자금을 줬다”고 주장한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명예훼손 소송까지 벌여 승소했습니다. 국내 어부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며 연안에서는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않았습니다.

1934년생인 김 회장이 91세에 새로운 책 ‘인생의 파도를 넘는 법’을 냈습니다. 과거 그의 은퇴 기사를 썼던 인연으로 책을 정리하는 데 참여했습니다. 리더들이 귀 기울일 만한 노 회장의 발언을 추려봤습니다.

최근 사회와 기업을 엉망으로 만든 리더들을 보니 “구질구질하게 살지 말라”는 그의 말은 더 울림이 있습니다. 어떤 경영자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 “정도를 걷다 간 경영자로 남고 싶다”고 답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리더의 무게에 대해 그는 “폭풍권에서 사투를 벌일 때 선원들은 파도를 보지 않고 선장의 얼굴을 본다”고 했습니다. 선장 얼굴에 확고한 자신감이 보이면 선원들은 안도하고 명령을 따르지만 불안감이 어른거리면 선원들은 불안에 떨게 됩니다. 지난 몇 년간 리더의 얼굴을 쳐다본 한국인들이 본 것은 그의 부인이었을 것입니다.

김 회장은 이런 말도 합니다. “이제 지분으로 경영하는 시대는 끝났다. 실력과 희생이 있어야 믿고 따른다.” 경제적, 사회적으로는 위임받은 권한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법이 정한 범위를 넘어 권한을 마음껏 휘두르는 경영자와 관료, 정치인이 넘쳐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김 회장은 이어 “리더는 희생하는 자리다. 희생할 수 없다면 리더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리더에게 가장 중요한 위기대응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태풍이 몰아칠 때 정면으로 맞서 뚫고 가야 한다. 태풍을 피해 배를 뒤로 돌리면 결국 태풍의 눈속으로 빨려들어가 배는 침몰하고 만다.” 지금 대한민국호를 이끄는 선장 아닌 선장 대행은 태풍에 맞서고 있을까, 아니면 태풍의 눈속으로 안내하고 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수많은 죽음의 고비와 경영의 위기를 넘긴 그는 위기 극복의 결과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1, 2차 석유파동과 외환위기를 거치며 살아남았다. 위기가 나쁜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난관이 경쟁자를 걸러줬다.”

디테일의 중요성도 강조합니다. 그는 “배가 아무리 커도 작은 구멍 하나면 예외 없이 침몰할 수 있다. 사소한 것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업장을 가면 쓰레기장으로 향하는 이유도 설명했습니다. “사업장 쓰레기장에는 불량인 제품들이 모여 있다. 불량품을 보면 어떤 문제가 있는지 대략 감을 잡을 수 있다. 의사들이 대변을 가지고 검사하는 것과 비슷하다.” 디테일과 이면을 보는 것의 중요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방법도 알려줍니다. “참치는 수면 깊은 곳에 있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다. 그래서 참치배를 갈라 먹이를 연구했다. 멸치나 전갱이 등이다. 그리고 먹이 취향이 비슷한 바다갈매기, 가마우지 등 바닷새가 떼지어 있는 곳을 찾는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이 있습니다. “사람의 위장은 때가 되면 배고픔을 느끼지만 사람의 뇌는 지식과 정보를 채워줄 때가 되어도 허기를 느끼지 못한다.” 허기를 느끼지 못하면 채우지 않고, 그러면 뇌는 비어간다는 얘기입니다. 어떻게 하면 뇌가 허기를 느끼게 해줄까. 답은 이랬습니다. “뇌가 배고픔을 알게 만드는 원초적 에너지는 호기심이다. 어떤 이는 아이디어를 붙잡고, 어떤 이는 스쳐보낸다. 그 차이는 호기심이 만들어내는 에너지에 있다.”

대통령 선거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구질구질하지 않고, 희생할 줄 알며, 태풍을 정면으로 뚫고 나갈 수 있는, 뇌의 허기짐을 느끼는 리더를 만날 수 있을까요?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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