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서울 광진구 자양동 ‘양꼬치 거리’에서 청년들이 혐중 노래를 부르고 있다. 자유대학 유튜브 갈무리
신영전 | 한양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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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극우 청년들이 국내 체류 중국 동포와 중국인이 밀집한 거리를 행진하며 “짱×, 북괴, 빨갱이들 대한민국에서 빨리 꺼져라” 등 혐오 발언을 하며 소란을 벌였다.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빈곤층, 특정 지역 출신, 난민, 이주자, 탈북자 등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혐오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6년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과 같이 한 개인이 저지른 혐오 행동은 지금도 간헐적으로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내란 정국하 혐오 행동은 더 큰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첫째, 이 혐오 주도 세력이 ‘공식적인’ 제도권 정치세력과 연계되고, 둘째, 일정 규모를 가진 조직화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셋째, 이들이 음지에서 나와 공공장소에서 집단적 행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범죄학의 권위자인 매슈 윌리엄스는 일반적으로 인간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가할 때 힘들어하는데, 실례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많은 군인이 목표를 조준하지 않았고, 약 70%가 총을 단 한발도 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20년 뒤 베트남 전쟁에 참여한 병사 중 90% 이상이 총을 쐈는데, 이는 개인이 큰 집단의 일원이 되는 순간 자기 책임에서 벗어나는 ‘탈개인화’, 높은 계급의 사람이 죽이라고 명령할 때 죄책감이 줄어드는 ‘전치’, 적을 하등 동물이라 여기는 ‘비인간화’라는 심리기법이 동원되었다는 것이다. 또 그는 한 개인이 편견에서 혐오 행동과 범죄로 넘어가는 ‘극적 전환점’이 존재한다고 했는데, 혐오 세력의 정치권과의 결합, 조직의 거대화, 집단적 공개 행동 양상은 이 조건에 부합한다. 문제는 이 지점을 넘는 순간, 이제 혐오는 테러, 대량학살, 내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2000년 이후 한국 사회에서 혐오가 만연하고 있는 이유로 불평등의 심화, 지위 불안정성 증가 등을 들고 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는 것은 정치적 분열과 그것을 조장함으로 자신의 정치력을 키워나가는 정치인들이다. 또한 온라인 공간의 확대다. 실제로 2021년 ‘한국 사회 혐오차별 인식조사’에서 차별적 언행을 보고 들을 수 있는 공간으로 ‘온라인’(62.0%)을 지목했다. 권력자와 한 몸이 된 대자본이 만들어낸 광활한 네트워크가 혐오 조장자에게 쉽게 숨어 행동할 공간과 수단을 제공한 것이다. 무엇보다 인터넷의 알고리즘은 편파적인 이들끼리만의 성을 만들어 편향된 정보를 공유하고 비뚤어진 자기 확신을 증폭시킨다.
이 혐오의 시간은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개개인은 스스로 혐오의 말을 삼가고, 왜곡된 주장에 증거를 요구하며, 심한 혐오 발언이나 행동을 신고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우리는 모두 혐오의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를 오가는 존재다. 이 사실을 망각할 때 우리도 쉽게 가해자가 된다. 하지만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혐오는 그 두려움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이번 내란 대응에서 보여주었듯 한국 민주주의의 뿌리는 깊다.
사회 수준의 대응도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혐오 행동이 심할수록 적절한 법 제도의 마련과 엄격한 집행이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우선 몇년째 표류하고 있는 ‘차별금지법’이 하루속히 제정되어야 한다. 또한 혐오가 자라는 토양을 제공하는 사회 불평등을 해소하는 일을 최우선 정책 목표로 삼아야 한다. 무엇보다, 혐오가 지배하는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혐오 행동의 토양이 되는 경쟁, 우열, 성과주의, 약육강식의 이데올로기를 새로운 이념으로 대치해야 한다. 나는 이 새로운 이념의 핵심이 ‘온존’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온존’은 질병, 장애 유무뿐만 아니라 성적 지향, 나이, 출신 지역, 인종, 종교, 경제 수준과 상관없이 인간 본연의 바탕 그대로 고스란히 ‘온전’하게 ‘존재’하는 상태를 말한다. 무엇보다 온존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취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임을 전제하고 따라서 연민, 상호 의존과 연대가 불가피함을 인정한다. 이는 다시, 인권, 동물권, 생명권을 넘어 모든 존재가 온존할 권리를 가진다는 ‘온존권’으로 확장된다.
지난 21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돌아가셨다. 전 재산 14만원과 함께 남긴 유언장 마지막 줄에는 ‘평화’와 ‘형제애’란 단어가 자리하고 있다. 살아생전에도 이 시대 혐오의 대상이 되는 가난한 자, 난민, 이민자들에 대한 배척을 개탄하고 차별 없는 환대를 호소했다. 그러나 찰스 콜턴의 말처럼, 세상에는 신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겠다는 이는 많지만 신의 뜻대로 ‘사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혐오가 만연하는 또 한가지 이유다. 오호통재라.